노해정 기고가
노해정 기고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습니다!”<영화 가버나움 중에서>

[뉴스퀘스트=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 ‘자인’은 12세로 추정되는 소년이다. ‘자인’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식들의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고 키운다. ‘자인’과 남매들은 길거리에서 약을 탄 쥬스를 팔면서 생계에 보탬을 준다. ‘자인’의 부모는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하자, 동네 슈퍼마켓 주인인 ‘아사드’에게 팔아버리듯이 강제로 시집을 보내려 한다. 이에 반발한 ‘자인’은 동생 ‘사하르’를 데리고 집을 나가려 하나 이를 눈치챈 부모는 ‘사하르’를 슈퍼주인 ’아사드‘에게 강제로 보내버린다.

집을 나온 ‘자인’은 이디오피아 난민인 ‘라힐’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가정부 일을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쫓겨난 신세이다. ‘라힐’은 아직 젖도 때 지 않은 아기 ‘요나스’를 품고 다니면서 일을 닥치는 대로 하던 중에 만나게 된 ‘자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고 ‘자인’을 먹여주고 함께 지내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자인’은 ‘요나스’의 베이비시스터 역할을 맡게 된다.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당국에 체포되자 ‘자인’은 얼마간 ‘요나스’를 대신 키우면서 버티지만, 결국 ‘요나스’를 달라고 채근하던 이민 브로커에게 ‘요나스’를 넘기게 되고, ‘자인’은 국외로 탈출하기 위해서 브로커가 요구하는 출생서류를 챙기러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인’은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 ‘사하르’가 죽게 된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분노한 ‘자인’은 슈퍼주인 ‘아사드’를 칼로 찌른다.

‘사하르’는 아직 어린 몸으로 아기를 가진 탓에 심한 하혈을 하게 되었는데, 응급상황에서 실려간 병원에서 출생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어린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결국, ‘자인’은 5년 형을 받게 되고 소년교도소에 수감 된다. 여기에서 접한 생방송 TV프로그램에 간수의 도움으로 전화를 걸게 되는데, 수화기에 대고 ‘자인’은 외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습니다!”

법정에 불려간 자인의 부모들은 항변한다. 자인의 아버지가 말한다.

“결혼을 했지만 변변한 침대도 없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너무 힘들어요, 이 같은 생활이 결혼이라니…, 마치 지옥과도 같은…, 정말 결혼한 것을 후회해요”
자인의 어머니가 격정의 사자후를 토한다.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서 설탕물을 먹이는 심정을 아세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자살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이들 먹여 살리려고 참 열심히 노력하면서 힘들게 버티며 살아왔어요!”

자인의 부모들인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이러한 환경과 이 같은 모습으로 태어났겠는가? 또한, 당신들은 지금 느끼는 갈등과 상황을 원망해 본 적이 없는가?

자인을 면회 온 엄마가 ‘자인’에게 말하는 대목이 이 영화의 압권이다.

“자인아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반드시 하나를 되돌려 준단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신이 무엇을 되돌려 주나요? (자인은 신이 과연 있기나 한건지 라고 말하는 듯 허탈한 표정을 보인다.)

“엄마가 임신을 했어! 아기를 가졌단다. 딸을 낳기를 바래.”

한참을 멍한 표정을 짓던 ‘자인’이 힘없이 말한다.

“ … … 엄마의 말이 마치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다시 법정에서 판사 앞에 선 ‘자인’, 판사는 ‘자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묻는다.
“하고 싶은 말을 해보렴!”
“엄마가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게 해주세요!”

‘자인’이 돌봐줬던 아기 ‘요나스’는 엄마 ‘라힐’이 강제로 출국을 당할 때, ‘라힐’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된다.

영화는 ‘자인’이 신분증에 각인될 사진을 촬영하면서 밝게 웃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결국, 죄를 범한뒤 교도소에 갇히고 나서야 ‘자인’은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로 세상에 던져졌고,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생명들이 세상에 내던져지고 있다. 마치 ‘자인’처럼, 또는 ‘사하르’처럼…, 그곳은 레바논 어딘가의 빈민가일 수도 있고, 쿠르드족의 주둔지역일 수도 있고, 아프리카 어딘가의 굶주린 마을일 수도 있다.

당신은 과연 ‘자인’의 부모나 슈퍼마켓 주인에게 자신 있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그들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돌봐주지 못할 바에는 왜 애를 낳느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낙태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낙태에 따른 처벌이나 비난보다 아이를 낳는 것이 더 낫다. 한국 또한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이유로 낙태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서 자식을 팔아넘긴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고, 근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물질의 가치를 인간존중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존재했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 대한민국은 2차대전 후 최근까지 전 세계 해외 입양의 약 40%에 달하는 20만명 이상을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영화 속에서 ‘자인’이 동생 ‘사하르’를 지켜주기 위해서 발휘했던 의기(義氣), 그리고 이디오피아 여성 ‘라힐’의 아기인 ‘요나스’를 돌봐주던 따뜻한 마음은 비록 ‘처절한 세상에 던져졌을지라도’ 세상에서의 그 존재 이유를 ‘밝은 가치로 비추는’ 즉 사람이 지닌 ‘근원적 아름다움’이 아닐까? (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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