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일행들과 전주(全州)에서 하룻밤 잔다.

완산(完山)이라 불렀지만 통일신라시대부터 전주라 하였다. 완(完)과 전(全)은 온전하여 다 아우르는 의미다. 어젯밤 골목의 추억은 뒤로 하고 햇볕을 피해 오목대 마루에 앉아 역사이야기를 한다.

풍남동의 작은 언덕을 오목대라 하는데 아래는 전주천, 한옥마을, 한벽루 등이 있다. 고려 우왕 때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가 잔치를 베풀며 뒷날을 암시한 곳이다. 개국 후 정자를 짓고 오목대(梧木臺)라 했다.

오동나무가 많은 언덕이라는 것. 시원한 바람 부는 정자에 앉아 “벽오동 심은 뜻은 ~” 한 수 읊는다.

태조 이성계가 지은 정자, 오목대에 올라

명나라 주지번이 여러 번 과거 낙방해 공부를 하는데 마침 사신으로 간 조선관리가 그곳에 묵었다.

비결을 알려주자 급제해 조선사절로 온다. 은혜를 갚고자 전라관찰사에게 현판을 써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전주객사의 풍패지관(豊沛之館). 한고조 유방(劉邦)이 풍현(豊縣) 패읍(沛邑) 출신이었다는 데서 풍패라 했다. 왕의 고향을 이르는 말이다.

오목대와 느티나무 아래 한옥마을.
오목대와 느티나무 아래 한옥마을.
오목대와 느티나무 아래 한옥마을.
오목대와 느티나무 아래 한옥마을.

이성계는 함경도 출신이지만 선조가 전주 사람이다.

고조 이안사는 기생 문제로 다퉈 외가인 삼척으로 간다. 얼마 뒤 다투던 관리가 부임해 오자 간도로 이주, 원나라 다루가치(지방관)가 된다.

증조, 조부도 두만강 지역에서 원나라 벼슬을 했고, 부친 이자춘은 접경지 병마사가 되었다.

이성계는 아버지를 이은 동북면 병마사로 원나라·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중추세력으로 등장했다.

특이하게 조선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삼은(三隱)1)은 경상도 출신들이다.

오목대에서 이파리 푸르게 덮인 나무계단을 내려오면서 빽빽이 들어선 한 한옥들을 바라본다.

“저 많은 기와집에 누가 살까?”

“…….”

“결국 자기 것은 하나도 없어.”

“세상은 주인이 없다.”

천하(天下)를 공물(公物), 나라는 백성들 아래 있다고 한 정여립의 주장은 프랑스·미국독립혁명에 영향을 끼친 루소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사회는 구성원 동의 없이 체제 유지가 불가능하며, 합리적인 계약으로 모순을 바꾸면 빈부격차 등 다양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거꾸로 부자연스런 사회에서 시민은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정여립은 원래 서인이었으나 동인이 돼 율곡을 비판한다.2)

선조의 미움을 받아 낙향한 뒤에도 신망이 높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를 만들어 활쏘기 모임을 갖는 등 힘을 기르며 죽도선생이라 불렸다. 세력이 커지자 밀고 당해 아들과 죽도에서 자결한다.

반대파가 조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때 처형된 사람이 1천여 명, 동인이 몰락하는데 기축옥사3)라 하고 전라도는 반역의 땅이 된다. 죽도가 있는 천반산은 다음으로 기약한다.

한옥마을, 전동성당, 풍남문…….

시내를 걸어 전라감영을 둘러본다. 녹두장군이 호남일대를 장악, 전주로 무혈 입성해 혁명지휘소를 차렸던 곳이다.

전라도 고을에 농민 자치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걷는 남문시장은 관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이다.

한 잔 기울이니 민초들의 함성이 울리는 듯하다. 배고픔을 달래주던 조상들 애환이 깃던 막걸리, 손으로 쓱 닦으며 발길을 옮긴다.

김양순 선덕비와 관광단지 등산로 입구.
김양순 선덕비와 관광단지 등산로 입구.
김양순 선덕비와 관광단지 등산로 입구.
김양순 선덕비와 관광단지 등산로 입구.

나는 이곳 출신 정여립과 동학혁명의 연관성을 말하지만 시대 차이 난다고 한다.

“300년 동안 풀잎은 바람에 쓰러져 있었던 거지.”

“그래서 질긴 생명의 풀, 민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개혁가로 평가했어.”

“…….”

비빔밥 대신 나는 국수를 시켰다. 전주의 음식 맛은 최고다. 그러나 비빔밥은 이율배반적이다. 왕조의 뿌리가 남아선지 육회까지 얹어 이제 서민음식이 아닌 듯하다.

<탐방길>

● 금산사(정상까지 4.8킬로미터, 3시간 정도)

일주문 → (55분)청룡사 갈림길 → (5분)연리지 → (15분)심원암 삼거리 → (30분)북강삼층석탑 → (40분)북봉(제2헬기장) → (5분)정상 삼거리 → (25분)정상

● 모악산 관광단지(정상까지 3킬로미터, 1시간 30분 정도)

주차장 → (30분)대원사·천일암 갈림길 → (30분)수왕사 → (15분)상학능선 → (15분)정상

* 2~8명이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시간이 다름).

<주석>

1) 포은 정몽주, 영천(영일 정씨), 목은 이색, 영덕(한산 이씨), 야은 길재, 선산(해평 길씨).

2) 기대승 문하에서 과거 급제. 서인으로 이이와 성혼의 총애를 받음. 당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을 건의하지만 여의치 않자 동인으로 옮겼다.

3) 송익필(宋翼弼 1534~1599). 자는 운장(雲長), 호 구봉(龜峯). 정철의 서인세력 막후 조정자로 기축옥사를 일으킨 인물로 알려졌다.

*삼노팔리(三奴八吏) : 종 출신 세 집안, 아전 출신 여덟 집안. 삼노는 정도전·서기·송익필, 팔리는 동래정·반남박·한산이·흥양유·진보 이·여흥이·여산송·창녕서씨. 처음에는 종·아전이었으나 양반이 됐다는 데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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