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공갈못 노래비, 공갈못 노래가 상주 모심기 노래다.
상주 공갈못 노래비, 공갈못 노래가 상주 모심기 노래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우리 민요들 중에는 노랫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민요가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온 것이므로 노랫말의 일부가 사어(死語)가 되어 요즘은 쓰지 않는 말일 경우도 있고, 와음(訛音)이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어려운 한자어의 경우 쉬운 말로 고쳐 부르다가 뜻이 완전히 변하여, 뜻이 통하지 않게 되자 이를 뜻이 통하게 엉뚱하게 완전히 고쳐버린 경우도 있다.

말을 사용하는 언중(言衆)이 변화하면서 이해를 못할 때도 있다. 지방의 방언일 경우도 있다. 때문에 원래의 뜻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를 몇 가지 예로 나누어 원래의 뜻을 추적해 보자.

1. 방언(사투리)의 이해

경상도 민요에 「상주모심기노래」라는 것이 있다. 국립국악원이 제공한 국악정보에는 그 노랫말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능청능청 저 비 끝에 시누 올케 마주 앉아

나두야 죽어 후생가면 낭군 먼저 섬길라네

이 노래는 중학교 1학년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노래인데, 그 뜻을 풀이하면 “능청능청 비가 오고 있고, 시누와 올케가 마주 앉아 있는데, 갑자기 죽어서 후생(後生), 즉 다음 생(生)에 가면 낭군을 섬기겠다”는 것이다. 비약이 심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노랫말은 이 노래와 관련된 경상도 지방의 전설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된다. 경상도의 전설에 의하면 시누와 올케가 벼랑 위에서 동시에 강에 떨어졌는데, 이때 오빠가 자신의 누이동생이 아니라 아내(올케)를 먼저 구하는 바람에 누이는 강에서 죽었다고 한다.

즉 이 노래는 누이가 자신을 먼저 구하지 않은 오빠를 원망해서 부른 노래인 것이다. 그러니 죽어서 후생에 가면 낭군을 먼저 섬긴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라는 말이다. 경상도 방언으로 절벽, 벼랑(낭떠러지)을 ‘비리’라고 한다. 즉 ‘저 비리(壁) 끝에’를 잘못 표준말로 음차하여, ‘저 비(雨) 끝에’로 부르는 것이다.

때문에 완전히 엉뚱한 뜻으로 변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된 경우다. 

아래는 서도민요 <긴아리>의 노랫말 중 하나다(<긴아리>는 <아리랑>처럼 노랫말이 많다).

낫날은 무디면 갈면 서지만

갈두새 무디는 이 마음 일세

낫의 날이 무디어지면 숫돌에 갈면 날이 서지만, 까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럼 ‘갈두새’는 무슨 뜻일까? 혹 ‘갈수록’이 아닐까? ‘갈수록’이라고 해석하면, 마음은 갈수록 무디어 진다는 뜻은 무슨 말일까? 같은 <긴아리>의 노랫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모래나 새암은 파두새 나구

임에나 생각은 하두새 난다

여기서도 ‘-두새’가 나오는데, 이 노랫말로 보면 ‘-두새’는 ‘-수록’의 의미가 확실하다고 보겠다. 즉 평안도 ‘-두새’는 평안도 방언으로, ‘-수록’의 의미다.

그러면 위의 “ 갈두새 무디는 이 마음 일세”는 표준어로 옮기면, “갈수록 무디어지는 이 마음일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서 간다는 건 간다(行)의 듯이 아니라 칼을 간다는 뜻의 연마(鍊磨)의 의미다. 미루어 짐작하면 사랑의 감정은 갈수록 무디어 진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은 대개 시간이 가면서, 감정에 시달리면서 무디어지기 마련이 아닌가? 이런 노랫말은 ‘두새’의 의미만 알면 해석이 가능해진다. 같은 <긴아리>에 이런 노랫말도 있다.

언두앗 창대에 무릿달 뜨면

참외도 익지요 왔다 가소래

언두앗은 얼핏 보면 ‘어느덧’의 뜻으로 읽힌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느덧달이 뜨니, 참외도 익으니 왔다 가시지요.”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언두앗’은 ‘원두막’의 평안도 사투리. ‘창대’는 창문을 뜻한다. ‘무릿달’은 달무리가 있는 달. 원두막에 달이 뜨면 참외도 익으니까 오시라는 뜻이다.

이렇게 민요가사는 사투리가 적용된 경우가 많기에 그 해석에는 사투리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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