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멀어지는 유러피안 드림

[트루스토리] 한밤중에 큰 걱정없이 음식을 먹고 영화를 관람고 쇼핑을 즐길 수 있는 ‘24시간’ 풀가동되는 유일한 곳, 바로 대한민국이다. 경찰서나 병원처럼 공공의 목적이 있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많은 대형마트, 영화관, 미용실, 공장, 퀵서비스, 음식점 등이 야간연장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사람들은 “편리하다”며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의 증가와 좀 더 싼 제품의 구입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야간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고통이 존재한다.

야간교대노동은 첫째 공공 서비스 사업으로서 전기, 가스, 운수, 수도, 통신, 병원 등 공익적 사업을 중지할 수 없는 경우, 둘째, 생산기술이나 업무의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로서 철강, 석유화학 등 생산과정이 연속되어 작업을 중단할 수 없는 경우, 셋째, 경영효율성을 위해 생산설비 완전가동이나 기업 간 경쟁 등의 사유로 조업 및 영업시간을 길게 하는 경우에 실시된다. 이 중 교대제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첫째와 두 번째이다. 그러나 셋째의 경우 오직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일뿐,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야간노동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바로 세 번째에 해당한다.

야간교대노동은 개인적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밤에 불을 훤히 밝혀 수면을 줄이고 장시간 일을 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닭의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닭장 안을 24시간 내내 훤하게 밝혀놓는 것처럼, 한국 사회도 효율성과 생산성을 위해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현재 평균 야간 수면시간은 6.9시간인데, 이는 최근 100년 사이에 20%가 줄어든 결과이다. 적절한 수면시간은 8.2시간이지만 평균 낮 근무자는 약 1.3시간 잠이 부족하며 만성적, 부분적인 수면부족이 일상적인 사건이 되었다. 노동부의 “근로시간 실태조사”에 의하면 교대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이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의 39.9%를 차지하며,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전세계 노동인구의 약 20%가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는 통계와 비교했을 때, 국내 교대노동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음을 알 수 있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제로 인한 건강 장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24시간 생체주기의 파괴에 있다. 교대근무 노동자들은 24시간 공장 가동과 주야 연속교대제에 의해서 밤낮의 주기가 바뀐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됨에 따라 24시간 생체주기가 파괴되고, 이로 인해 암(유방암·직장암·대장암·전립샘암), 뇌심혈관계 질환(돌연사·심장마비·뇌졸중·고혈압·협심증·심근경색·콜레스테롤의 과도한 증가), 수면장애 및 교대부적응증후군(수면박탈·불면증·만성피로·각성도 감소·집중력 감소·생리적 리듬의 부조화로 인한 교대시차증후군), 소화기계 질환(위염·위궤양·간장질환), 내분비계 질환(당뇨병)을 앓게 된다. 

독일 수면의학협회에 따르면, 야간 교대노동자의 80%가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반 노동자의 신경장애 비율은 25%인 반면 교대노동자는 60-70%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건강 장애는 종국에 야간교대 노동자의 수명에 영향을 주는데, 대체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직군에 속한 노동자의 평균수명이 78세인 반면,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65세에 그치고 있다. 야간교대 노동자의 어린 자녀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별거나 이혼 확률이 2~6배 높다는 연구를 떠나, 야간근무가 노동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야간 교대근무의 부작용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공보건(public health)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 24시간 생체주기가 파괴됨으로써 여성호르몬 분비기전에 장애를 일으켜 재생산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월경주기가 파괴되며, 자연유산이 증가하고, 저체중 출산과 조산이 증가하며, 유방암이 증가한다. 최근 덴마크에서는 야간교대근무를 ‘공공보건’ 문제로 다루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20~30년간 일주일에 최소 1일 정도 야간근무를 했던 스튜어디어스의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린 것이다. 잠잘 때 나오는 멜라토닌은 여성호르몬의 분비를 돕고 유방암 세포의 작용을 억제하여 유방암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유방암에 걸린 여성들의 멜라토닌 수치가 낮다는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덴마크에서는 야간교대근무와 유방암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지는 못했을 지라도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결과와 정황에 입각해 유방암 발병에 야간근무에서 노출된 인공조명이 영향을 주었다고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이를 보상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한국에서는 2010년 말 자동차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의 수면장애를 야간교대근무로 인한 업무상 재해로 일부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교대근무를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그룹 2A)로 지정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야간노동은 그 자체로 자동차의 배기가스나 유해물질인 다이옥신(IARC 지정 그룹 2B)보다 한 단계 높은 발암요인이다. 따라서 불필요하고 과도한 야간노동을 공공보건의 관점에서 규제하고 금지해야 한다.

실제 한국은 총노동시간이 너무 길다.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또한 2위인 그리스와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거의 유일하게 연간 200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노동시간은 생활시간의 일부이면서도 생활시간과 충돌하는 삶의 영역이다. 한국과 독일의 노동시간을 비교하면 연간 약 9백 시간 이상이 차이가 나는데, 이는 4~5개월 정도 더 적게 삶을 향유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노동자들은 삶을 즐기기 보다는 일을 하기 위해 삶을 통째로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심야에 문을 열었던 편의점, 찜질방 등 이외에도 놀이동산, 미용실, 영화관, 옷가게 등이 야간연장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24시간 영업하는 미용실이나 퀵 서비스 업체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대형 마트들 역시 24시간 영업을 하는 점포들을 확대하고 있으며 백화점도 기존의 영업시간을 밤 10시까지 연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편리하고 좋네”라며 언제고 이용할 수 있는 시설과 서비스의 증가를 즐거워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편리하고 좋네”를 연발할수록 ‘유러피안 드럼’은 더욱 멀어진다.

편리함에 대한 기준과 생활방식과 습속이 24시간 속도사회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저녁 8시에 문을 닫는 백화점에서는 연장영업이 필요하지 않다는 소비자가 많지만,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백화점에서는 유독 연장영업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우리의 ‘편리하고 좋네’가 지화자로 끝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면 건강보험료는 높아지고 핵폐기물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욱 위험해지고 동네 자영업이 문 닫을수록 중산층은 사라지는 세상의 이치 때문이다. 비용만이 아니라 누군가는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 고통을 껴안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당은 온전히, 개인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에 따르면, 연간 소득 만 불이 넘어가면 경제성장이 되더라도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 삶의 질이란 크게 네 차원으로 정의되는데, 건강과 여유, 인격존중과 평등, 정이 넘치는 공동체, 훼손되지 않은 자연 생태계라고 한다. 4가지 차원의 삶의 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노동시간과 생활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에는 노동시간이 생활시간을 포획함으로써 개인의 행복을 망치고 (가족을 위해 일을 많이 했는데 정작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여유도 없어진 현실), 그러한 경향이 강화됨으로서 사회적 웰빙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야간노동을 포함한 장시간 노출에 노출된 병원 현장에서 일했던 제주의료원 간호사 8명이 유산을 경험했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장시간, 야간 노동 문제는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 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개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안녕하는 ‘슬로우라이프’를 위해서 노동시간의 단축과 야간노동 규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슬로우라이프’ 담론은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가진 소수의 관념론적인 지향에 머무른다.

고금숙 /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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