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서울 근교로 이사한 고향 친구가 내게 사진을 찍어 보내 묻는다.

불암산에서 진달래를 보았다고, 우리 어릴 때 꽃 꺾어 놀던 진달래가 왜 색이 바랜 채 이제야 꽃을 피운 거냐고, 아픈 건 아니냐고.

나는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 그건 진달래가 아니고 진달래랑 형제 식물인데, 일찍 꽃 먼저 피는 진달래와 다르게 늦봄에 잎을 다 내밀고 옅은 분홍색 꽃을 피우지. 그게 바로 '철쭉'이야.

철쭉. 한자로 머뭇거릴 척(躑)에 머뭇거릴 촉(躅)이 변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약간의 독성이 있는 철쭉을 뜯어 먹은 양들이 똑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대는 모습을 본 중국의 유목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항간에서는 꽃이 발걸음을 붙잡는다고 해서 척촉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만큼 꽃이 너무 예쁜 식물.

예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고 뭐랄까 차분한 색감 때문에 다소 우아한 분위기가 있고, 잎을 다 내밀고 느긋하게 피어서인지 여유로움이 근사하게 배어나는 꽃나무가 철쭉이다. 

철쭉. 진달래와 같은 혈통의 진달래속(Rhododendron) 식물. 봄에 꽃이 먼저 피는 진달래와 달리 늦봄에 잎 다 나오고 난 뒤에 옅은 분홍색의 꽃이 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내가 근무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바투 마주한 옥석산에는 올해 582살 된 철쭉 한 그루가 있다.

세종대왕 재위 시절부터 그 산을 지키고 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2020년에는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었다. 

경북 봉화군 옥석산 수령 582살을 자랑하는 철쭉.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분류학적으로 철쭉은 진달래속(Rhododendron, 로도덴드론) 식물이다.

우리 산에 자라는 철쭉과 산철쭉과 진달래를 비롯하여 로도덴드론에 속하는 지구상의 종은 자그마치 1000여 종에 이른다.

아파트나 집 정원에 즐겨 심는 왜철쭉과 영산홍도 로도덴드론이다. 

로도덴드론하면 특히 서양인이 사랑하는 나무인데 예로부터 정원을 아름답게 해서 그렇다.

장미처럼 꽃이 예쁘다는 'Rhodo'에 나무를 뜻하는 'dendron'을 합쳐 지은 속명이 로도덴드론(Rhododendron)이다.

나무 한 그루가 한 정원을 책임질 정도로 아름다운, 이 정원 이 나무가 다했네, 의 주인공이 바로 로도덴드론이다.

그중에서도 상록의 로도덴드론 종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원 분야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꽃이 좋을뿐더러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초록을 뽐낼 수 있어서다. 

세계에서 정원 역사가 가장 깊은 영국은 자국의 정원 문화를 바꾸어 놓은 나무로 로도덴드론을 든다.

알프스산맥과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화려한 상록의 로도덴드론이 다양하게 분포한다.

과거에 영국은 알프스 일대에 널리 사는 로도덴드론 종류에만 익숙했었다.

하지만 17세기 초 ‘동인도회사’를 기지로 삼으면서 영국은 아시아의 다양한 식물을 접하게 된다.

그 경로를 통해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살던 네팔과 인도의 로도덴드론이 영국에 도입되었다.

중국의 로도덴드론도 빠질 수 없다.

아편 때문에 양귀비를, 홍차 때문에 차나무를 구하기 위해 당시 영국은 식물 수집가를 중국에 파견했다.

그 프로젝트에서 주요 임무를 맡았던 인물이 영국왕립식물원에서 일하던 로버트포춘(Robert Fortune, 1812~1880)이다.

1884년 중국에 도착한 포춘은 3년에 걸쳐 중국 대륙의 험준한 산맥을 오가며 여러 종류의 로도덴드론을 채집해서 영국으로 보냈다.

그의 채집품을 분석한 영국의 식물학자 John Lindley(1799-1865)에 의해 중국의 대표 로도덴드론인 '운금만병초(Rhododendron fortunei)'가 1859년 신종으로 발표되며 세계에 알려졌다. 

영국 식물학자에 의해 세계에 알려진 중국의 대표 로도덴드론 운금만병초. [사진=GBIF세계생물다양성기구]

영국은 1915년 로도덴드론협회(The Rhododendron Society)를 만들었다.

'알프스로도덴드론'과 중국의 '운금만병초'와 그 외 각국에서 수집한 여러 종류의 만병초를 토대로 다양한 재배품종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수출도 했다.

이에 뒤질세라 미국은 미국로도덴드론협회(American Rhododendron Society)를 만들고 1947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분기별로 로도덴드론 저널을 발간하고 있다. 

알프스와 히말라야에 가지 않아도, 영국과 미국의 굴지의 식물원과 수목원에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에는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지는 산정과 울릉도에 상록의 로도덴드론이 산다.

만병초다.

만병을 다스리는 영험한 풀이라는 뜻.

이름 때문에 몸에 좋을 거란 기대로 과거부터 채취 당하다 보니 지금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름이 '초'로 끝나지만 어른 무릎 높이쯤 자라는 나무다.

만병초와 형제 식물인 노랑만병초는 설악산에 산다. 대청봉 주변은 남한에서 노랑만병초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땅이다.

다행히 북한에는 만병초와 노랑만병초가 많이 산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백두산에 함께 갔을 때, 리설주 여사는 백두산을 대표하는 식물이 만병초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 모습을 중계하던 화면 배경으로 비친 식물이 노랑만병초다.

백두대간의 산정과 울릉도에서 사는 만병초.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오월은 한반도의 로도덴드론이 제철인 때다.

그 꽃들이 저지대에서 만개했거나 산정에서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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