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이 들려주는 미래 이야기] “미래를 알 수 없는 미래가 온다”(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1970년대가 시작된 이후, 로봇이 엄청난 수적 공세로 공장의 작업현장에 들이닥치면서 제조환경을 변화시겼다. 이와 반대로 병원, 요양시설, 상점, 주택에서 서비스 로봇은 아직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컴퓨팅 및 재료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진정으로 인간을 닮은 로봇을 위한 길을 열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목석처럼 행동하는 대중연설자들에게 "로봇 같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이것은 로봇이 ‘자연스러운 동작’을 마스터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준다. 실제로 로봇임을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정밀하고, 기계적이고, 심지어는 다소 퉁명스럽기까지 한 움직임이다.

미국의 유명 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모방한 '스칼렛 요한슨' 로봇. 로봇공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로봇에 인간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반려동물보다 더 큰 권리를 보장해야

원래 로봇이 인간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전과제는 인간처럼 직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계를 창조하는 목표를 예상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처리 능력에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물론 인간두뇌의 뉴런 구조와 기능을 모방하는 신경망의 획기적인 발전은 로봇의 "사고" 부분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IBM의 인공지능시스템 왓슨(Watson)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실제로 컴퓨터가 인간과 흡사한 인지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일 만큼 로봇을 만드는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처럼 쉽게 물건을 이동하고 다룰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다소 벅차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것은 대개 로봇에서 근육기능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는 수력학과 장치 때문이다. 그로 인해 덜커덩거리는 동작은 `디지털`인 반면, 인간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아날로그`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시계가 초가 바뀔 때 끊어지듯이 움직이는 방식에서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아날로그 시계가 부드럽고 매끄럽게 초침을 움직이는 것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시계는 초가 바뀔 때 끊어지듯이 움직이는 방식에서 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연산 및 재료 과하 분야에서의 새로운 발전 덕분에, 로봇의 움직임은 조만간 개선될 것 같다.

로봇의 인공 근육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방식은 더욱 부드럽고, 인간에 가까운 동작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에 대한 한 가지 방법이 뉴질랜드에 위치한 오클랜드 생물공학연구소(Auckland Bioeneering Institute)의 생체모사 연구실(Biomimetics Lab)에서 개발되고 있다.

새로 개발된 로봇 근육은 젤리처럼 흔들리는데, 전기활성 고분자(electro-active polymer)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근육은 300퍼센트 이상 늘어나는 유연한 절연성 중합체 필름으로 분리된 카본 그리스 역할을 하는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근육은 로봇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다부지게 느껴지도록 만들겠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특유의 딱딱하기 짝이 없는 기계적인 로봇 부품 없이도 인간과 유사한 손재주를 가진 로봇을 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구분이 전차 없어지는 시대

캘리포니아 주 서니베일에 위치한 아티피셜 머슬(Artifcial Muscle)이라는 회사는 전기활성 고분자 기반의 모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뭔가 닿으면 촉각 피드백을 활용해서 반응하는 터치스크린 화면을 설계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휴대폰 터치스크린을 두드릴 때 실제 버튼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촉각 피드백 기술을 로봇에 응용하면 인간과 더욱 흡사한 모습이 될 것이다.

텍사스대학 댈러스 캠퍼스 과학자들 역시 보다 부드러운 동작을 할 수 있는 로봇 근육을 개발하고 있다. 그들의 방법은 `형상기억합금`이라 불리는 탄성을 지닌 금속을 활용한다. 전류도 동력을 공급받는 대부분의 로봇 근육과 달리 이 근육은 화학에너지로 움직이는데. 흥미롭게도 인간 근육을 모방한 것이다.

형상기억합금은 근육 역할을 할 수 있는 특이한 성질을 보여준다. 열을 가하면 팽창하는 것이 아니라 수축한다. 이런 움직임을 활용하기 위해 연구진은 소재에 알코올의 발화를 야기하는 촉매제를 입혔다. 알코올의 첨가하면, 발화는 열을 발생시키고, 힘을 쓰기 의해 근육이 수축하는 것처럼 소재가 수축한다.

알코올의 흐름이 차단되면, 근육은 팽창한다. 형상기억 합금의 팽창 및 수축은 전적으로 온도에 기초한다. 수석 연구원 레이 보먼(Ray Baughmam)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인공 근육은 인간의 근육보다 사이클 당 100배 이상 더 빨리 움직입니다. 인공근육은 실제 근육보다 100배나 강합니다."

로봇공학자 이삭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주장해 첨단 로봇 시대를 예견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짐 데이토 교수가 주장한 로봇권리장전, 우리나라는 로봇윤리헌장 제정

한편 로봇의 발전과 함께 로봇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자는 주장 또한 강하게 일고 있다.

권리장전은 역사나 세계사 시간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왕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군림하는 절대왕정에 대해 노예나 다름없이 핍박받던 민초들이 반기를 들고 결국 성공해서 왕으로부터 얻은 일종의 인권보장 선언서라고 할 수 있다.

1689년 영국에서 명예혁명의 결과 나온 이 선언은 영국 헌정사상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국에서 왕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치하는 절대주의가 사라지고 의회정치가 자리 잡게 된다.

이 선언은 다시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의 인권선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민주주의 정치의 틀을 다지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이제 이 말은 일반화되어 대부분 헌법에 규정된 인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일컫는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권리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2장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권리장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권리를 로봇에게도 인정하라는 주장이 바로 로봇권리장전이다. 다시 말해서 로봇에게 인간다운 살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로봇에 인격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이야기는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로봇은 일종의 컴퓨터에 불과하다. 얄궂게 표현하자면 컴퓨터에 일종의 사람 모양의 옷을 입혀 사람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또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로봇은 각종 칩과 회로들과 쇳덩어리의 산물에 불과하다. 컴퓨터를 뜯어보면 그저 복잡한 회로와 실리콘 칩과 같은 기계들이 있을 뿐이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다. 이런 로봇에 인간과 똑같이 취급해야 하는 권리장전을 부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엉뚱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로봇권리장전은 법적으로 로봇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로봇을 때리면 `폭행죄` 성립이 가능하며, 물론 상황과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로봇을 파괴한다면 ‘살인죄’로 처벌할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이다.

로봇을 함부로 다루면 법에 저촉

뿐만이 아니라. 로봇을 노예처럼 학대할 수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도 없다. 하루에 일하는 노동시간도 준수해야 한다. 사고를 좀 더 확대한다면 로봇을 함부로 사고 팔 수도 없으며 신경질 나고 스트레스 쌓인다고 해서 함부로 큰 소리로 욕을 할 수도 없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동물 수준 그 이상이다.

요즘 로봇을 주제로 한 SF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공격 목적의 로봇에서부터 인간에 대해 감정은 느끼면서 사랑까지 나누는 로봇에 이르기까지 각종 로봇들이 우리들의 상상을 자극시킨다.

또 현실적으로도 인간의 명령을 듣고 그에 따라 잔심부름을 하는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봇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조만간 인간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예언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러면 “로봇에 왜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어야 하느냐?” 하는 원초적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로봇이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공지능과 같은 로봇이 앞으로 탄생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로봇에 권리장전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종의 생명체, 그것도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생명체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녹아 있다.

로봇은 분명 프로그램대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의 작용에 따라 움직일까? 답은 뇌의 명령이다. 뇌 속에 있는 수십 억 개의 신경세포 뉴런에 의해 움직인다. 뇌 세포보다 더 많은 칩을 가진 인공지능에 가까운 로봇이 나올 수도 있을까?

전문가들은 첨단 로봇 공학이 섹스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로봇을 인간과 동일하게 보려는 시도 강해

판단은 물론 사랑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들이 뇌세포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면 뇌 세포보다 용량이 더 많은 반도체 칩이 개발될 수 있다. 인간지능보다 우수한 로봇,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부정하는 학자들은 별로 없다. 다만 시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로봇과 인간의경계가 모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물론 인격체로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로봇권리장전 제정을 통해 인간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하게 다가오는 로봇을 보호하는 법적 제도장치를 설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의미다.

지난 2007년 말 당시 산업자원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봇윤리헌장을 제정했다. 인간이 로봇을 학대하거나 로봇이 인간을 학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로봇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우리로서 다른 나라에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래서 로봇에 대한 개념을 달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정한 로봇윤리헌장은 강제성은 없지만 훗날 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기준으로 활용하게 된다. 일단 로봇에 대해 이 정도 해놓고 나중에 상황을 보면서 윤리헌정을 기본으로 로봇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도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짐 데이토 교수의 로봇 권리장전 주장은 남들보다 조금 앞섰을 뿐이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아주 설득력 있는 미래예측이다. 그리고 먼 미래도 아니며 아주 가까운 미래 예측이다. 로봇을 단순히 노동력의 대치물이라는 생각에서 아주 진보적인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제정한 로봇 윤리헌장의 기본 골격은 미국 과학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가 1942년 제시한 로봇 3원칙을 따르고 있다. 로봇3원칙은 ▲ 사람에 대한 공격 금지 ▲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 그리고 ▲ 로봇의 권리인정이 주 내용이다.

공상과학소설가 아시모프 박사가 1967년 전 이 주장을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비웃었다. “기계덩어리는 사람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어떤 감정이 있어서 사람을 공격하겠는가? 로봇에 감정과 분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시에는 비웃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아시모프의 주장을 비웃는 사람을 비웃는 시대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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