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박영식 기자 = 국가정보원은 지난 24일 비밀 생산·보관 규정상 2급 비밀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기밀 분류를 해제하고,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기습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정치개입 및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국정원이 일방적으로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고, 초법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계속되고, 엄연한 법적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여야 할 대통령기록 관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용되고 있는 현실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충격적이다. 또한 국정원이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기관으로 또 다시 전락한 상황은 마치 시계가 이명박 시대 아니 박정희 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다. 

일련의 흐름들은 국정원 개혁이 시급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할 명분도 법적인 근거도 전혀 없음에도 기밀해제 심의위원회를 열고 남재준 원장의 재가를 거쳐 전문을 공개했다. 관련 문건이 대통령기록물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국회에서 정쟁화 되고 있는 민감한 상황에서 국정원이 그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자체가 월권행위이자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대화록을 공개하라는 새누리당 요구에 대해 대통령기록물이니 공개할 수 없다고 했던 스스로의 판단을 번복하면서까지 대화록 공개에 나선 것은 또 다른 국기문란 행위이다. 따라서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잇따르는 정치적 행태로 국기를 훼손하고 국익에 해를 끼친 국정원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당장, 남재준 국정원장의 즉각적인 사퇴가 필요한 이유다. 국정원의 대선정치개입 사건과 함께 이번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본질적으로 따지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을 무너뜨리는 사건이다. 국기문란 행위를 또 다른 국기문란 행위로 덮으려는 처사나 다름없는 것이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 아니라 최고의 범죄기관으로 전락한 상황에 국민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국회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선거개입 사건에 이은 대화록 공개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깊이 깨닫고, 합의한 국정조사에 즉각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 기본권이 처참하게 무시되는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한창 정쟁화된 민감한 사안을 공개하면서 국정원 단독으로 결정했을리 만무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간여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크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를 차단하는 과정으로 보이는 바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직접 나서서 사태를 조기 수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우선 이번 공개의 지시여부와 보고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며, 국민적 혼란을 야기한 사건인 만큼 법적·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게 맞다.

무엇보다 정략적 집단이라는 것을 자임한 국정원의 개혁에 시급히 나서 다시는 국내정치 관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국제관계에 악영향은 물론, 외교적 신뢰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또한 정상회담 회의록에는 NLL발언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당시 남과 북 사이의 가장 큰 현안들이 모두 들어 있어, 회담 내용 공개로 가뜩이나 경색된 남북관계 또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부담은 박근혜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2013년 6월, 국정원이 또 다시 정치개입에 나서는 불행한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지금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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