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4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세계 60억 지구촌의 축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막됐다. 15일부터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시작돼 24일까지 열리는 이 대회에서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종목은 남자 육상 100m레이스이다. 육상의 꽃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 탄환’을 가리는 100미터 달리기이다. 또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 역시 인기 종목이다.

육상이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육상은 모든 스포츠 종목의 기본으로 달리기 능력은 운동선수들이 갖춰야 할 공통적인 필수 요소이다.

김형근 논성위원 과학평론가

육상은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 모든 스포츠의 기본

이렇게 보면 육상은 가장 원시적인 스포츠일 수도 있다. 또 달리기는 가장 평등한 스포츠이며, 인간체력의 한계를 실험하는 자연 실험장이기도 하다.

펜싱처럼 특별한 도구나 복장이 필요하지 않고 체조처럼 집중적인 지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를 기억한다. `맨발의 기관차` 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당시 신발도 신지 않았으며 코치도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국에서 마라톤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는 남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달렸을 뿐이다. 그에게 신발은 달리는 데 거추장스러운 도구였다.

스포츠는 이제 과학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이런 이론이라면 올림픽 달리기 시상대에는 많은 인종과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선수들이 올라서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 선진국인 영미권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단거리 달리기 종목은 `기록 깨기의 달인` 이라고 할 수 있는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이끄는 자메이카 팀이 휩쓸었다.

카리브 해 연안의 작은 나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놀랄 만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자메이카 팀이 유별난 것도 아니다.

“인종에 따라 강하고 약한 스포츠 따로 있어”

지난 몇 년 동안 보츠와나 등 서아프리카 국가와 미국, 자메이카, 그레나다,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서아프리카계 선수들을 내세운 국가들은 뛰어난 단거리 주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유럽과 아시아 출신 선수들을 합친 수보다도 훨씬 많았다.

같은 종족이라도 생김새와 신체 크기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체형과 생리적 특징은 그들의 조상이 다양한 환경적 어려움에 적응하며 진화한 결과다. 정책적으로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엘리트 스포츠가 그 차이점을 잘 설명해준다.

달리기 종목의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특종 인종에 편중되어 있다. 뉴스위크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남자 달리기의 경우 100미터부터 마라톤에 이르기까지 주요 종목의 모든 기록을 아프리카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싹쓸이에 가깝다.

예를 들어 지난 일곱 번의 올림픽에서 남자 100미터 달리기 결승에 진출한 선수 56명 모두가 서아프리카 계통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100미터 상위 기록 500위 안에 드는 선수 가운데 비(非) 아프리카계는 단지 두명에 불과하다.

한 명은 패트릭 존슨이다. 그는 호주 원주민과 아일랜드계의 혼혈인이다. 아시아 선수나 동아프리카 선수들 가운데는 발 빠른 뛰어난 주자가 없다.

단거리는 서아프리카, 장거리는 동아프리카가 강해

장거리는 어떨까? 이 분야에서는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선수들이 강세다. 이 부문에선 서아프리카 선수들이 명함도 못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아프리카이지만 이처럼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아프리카 선수들은 왜 달리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통설은 우선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달리기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이유다. 따라서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후천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전통적인 백지이론(tabula rasa theory, 白紙理論)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에게는 천부적으로 주어진 본유관념(本有觀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관념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룩된다는 존 로크(J. Locke)의 학설이다.

'세계에서 가장 뻐른 남자' 우사인 볼트는 자메이카가 유전적으로 육상 강국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진=위키피디아]

인간의 마음은 문자 그대로 태어날 대 백지와 같이 아무런 관념도 없다. 우리가 알거나 혹은 생각하는 모든 사물들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우리의 지식도 감각적 경험을 통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반영된 것을 반성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 많이 통용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믿지 않는다. 특히 생물학적 분석체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펜하겐의 근육연구소 벵거트 살틴(Bengt Saltin)소장 "선수의 능력에서 후천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차지하는 비율은 기껏해야 25퍼센트에 불과하다 "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유전적 요인에 달렸으며 종족마다 각기 다른 이점이 있다고 말해 메달 가능성은 바로 유전자에 있다는 주장이다.

‘후천적 환경’이 차지하는 비율은 25%도 안돼

그러면 다른 종족들은 어떨까? 아시아인들은 보통 팔다리가 짧고 상체가 길며 키가 작다. 4만 년 전 북아시아로 이주한 현생인류가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결과다.

중국인은 다양한 이유로 많은 올림픽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들은 다이빙과 체조, 피겨스케이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라시아의 백인은 팔다리가 비교적 짧고 상체가 두터우며 근육이 발달되어 있다. 이런 체형은 단거리나 마라톤에 적합하지 않고 스피드보다 힘이 중시되는 스포츠에 유리하다. 역도와 레슬링, 투포환, 해머던지기 같은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그렇다.

특히 런던올림픽 역도 종목에서는 북한 선수 한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라시아 백인들이 메달을 휩쓸었다.

우리는 세계 프로 축구경기에서 두각을 보이는 선수들이 대부분 브라질을 포함해 아프리카 흑인들이라는 것을 안다. 점차 백인들이 무대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도 목격하고 있다.

또한 영미 계통의 선수들에게 맞지 않는 스포츠라는 말도 자주 접한다. 선수의 능력이 유전자에 달려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양궁대표팀에서 늘 선두를 차지지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활과 같이 해온 한민족의 저력, 그리고 집중력이라는 유전자가 우리 선수들의 세포 속에 알알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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