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고려 무신정권 때부터 시작된 팔경의 유행은 조선 개국 초 정도전에 의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정도전, 조준 등의 신흥사대부 세력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라는 맹자의 말을 모토로 삼아 왜구의 침입, 권문세가의 착취, 토지제도의 모순 등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자 이성계를 앞세워 역성혁명에 성공한다. 당시 역성혁명파의 성리학은 실용적 경세지학이었던 것이고, 그들은 곧 새로운 국가 수립에 착수한다.정도전은 당시 새로운 수도 한양 건설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정도전은 경복궁, 근정전, 숭례문 등의 한양 도성의 궁궐이나 사대문 이름을 짓고 한양 주변의 도성을 설계하고 공사 책임을 맡았다. 한양을 5부로 나누고 52방의 동네로 구획하여 여러 관청을 들어서게 하고 52방의 이름을 지은 것도 바로 정도전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가회동이니 안국동이니 하는 지명이 바로 그때 탄생했다.이성계와 건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에는 심청이가 공양미 3백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 ‘범피중류’와 ‘소상팔경’ 대목이 나온다. ‘범피중류’는 중국의 여러 경승지를 노래하는 대목이고, ‘소상팔경’은 억울하게 혹은 안타깝게 죽은 중국의 여러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는 대목이다. ‘범피중류’는 사람을 물에 제물로 바치러가면서 한가하게 경치 타령이나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체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장면이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는 가끔 등장하는 것이다. ‘소상팔경’은 단가로도 부르는데, 한 대목은 이렇다.격안어촌(隔岸漁村) 양삼가(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일고파조귀래(罷釣歸來) 배를 매고 유교변(柳橋邊)에 술을 산 후애내성(欸乃聲) 부르면서 흥을 겨워 비겼으니소림(疏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설워 울고벽파(碧波)에 뛰는 고기 빗긴 볕을 맞어 노니어촌낙조(漁村落照) 이 아니냐이 대목을 쉽게 풀이하면, “강안 민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일고 낚시하다 돌아와 배를 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