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최혜인(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달빛이 내리는 대나무 숲 속에 고사(高士)가 홀로 앉아 있다. 고사는 거문고를 타고 있고, 뒤에서 다동은 찻물을 끓이고 있다. 부채에 그려져 운치를 더하고 있는 이 작품은 김홍도의 선면 이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은거하는 고사와 함께 차를 준비하는 다동(茶童)이 자주 그려지는데,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이 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가 지은 『망천집(輞川集)』 중 17번째 작품인 「죽리관(竹里館)」 을 화제로 그린 작품이다. 『망천집』은 왕유 자신의 은거지인 망천장( 輞川莊)에서 뛰어난 경치 20곳을 선별하여 각각의 아름다움을 시로 지은 후 엮은 시집이다. 후대의 많은 문인들이 이 문집에 감동하였으며, 그림 주제로도 인기였다.다시 그림을 살펴보자. 화폭 오른쪽에 「죽리관」이 적혀 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요한 대숲 속에 홀로 앉아, 獨坐幽篁裏거문고를 타고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깊은 산 속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모옥(茅屋) 한 채가 보인다. 그 안에서 고사(高士)는 조촐한 식사를 하고 있고, 마당에 놓인 커다란 괴석 옆에는 다동(茶童)이 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뛰어난 화원 화가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산정일장병》중 제4폭〈맥반흔포도〉이다. 가만히 감상하고 있으면, 찻물 끓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따금씩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평온해진다.《산정일장병》은 총 8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남송대 문인 나대경(羅大經, 1196~1242)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거편(山居篇)」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산거편」은 나대경 자신의 산 속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써내려간 짧은 산문으로, 관료문인들이 원하는 은거(隱居) 모습을 잘 담아내어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다.이는 회화의 주제로도 매력적이었다. 「산거편」의 첫 머리에서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고요하고 깊은 산 속,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보름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차를 마시는 상상을 해보자. 평온하면서도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현대에는 상상으로 그려보는 자연 속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이가 있다. 바로 조선 중기의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이다. 차를 통해 내면적 자유와 여유로움을 그려냈던 그의 그림 를 살펴보려고 한다.이경윤은 성종(成宗)의 8번째 아들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 1488~1552)의 증손으로, 방계이기는 하지만 왕실 출신의 문인화가이다. 이경윤이 차에 대해서 알고 있고, 차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린 것은 종친의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점이 일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차 그림인 이경윤의 는 달빛이 비치는 고요한 밤에 홀로 거문고를 타는 문사와 그 뒤에서 차를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우리나라에서 차 문화는 고려(918~1392)시대에 들어 활짝 개화했다. 7세기 도당구법승(渡唐求法僧)들에 의해서 소개된 선종 수행승들의 차 문화는 신라 말~고려 초에 구산선문이 개창되면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태조 왕건 이래 불교가 국교로 숭상됨으로써, 차는 국가와 사찰을 중심으로 수요가 더욱 확산되었다. 최승로(崔承老, 927~989)의 「시무28조」를 보면 국가가 주관하는 대규모 불교의식에서 왕이 직접 차를 준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차가 종교를 넘어 국가 권력의 상징물로서 인식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왕실이 차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고려는 차 문화가 성행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라는 그림이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아름답게 드리우고 대나무가 둘러 있는 곳에 6명의 인물들이 둥그렇게 모여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소나무 아래 붉은색 탁상에는 여러 기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