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함은혜(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조선시대의 문인들 모임에 우아한 모임을 뜻하는 ‘아회’라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 이 아회의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그림 속에서 차는 어떤 의미일까.‘아회(雅會)’란 3인 이상이 모여 다양한 풍류 행위를 즐긴 우아하고 고상한 문인모임이다. 문인들은 복잡한 세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우면서 우아하고 고상한 삶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고자 이 아회를 즐겼다. 이러한 아회를 ‘아집(雅集)’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벗들과 모여 청담(淸談), 전다(煎茶, 차 달이기), 탄금(彈琴, 거문고 연주), 위기(圍棋, 바둑), 고동기(古銅器) 완상, 시·서·화(詩·書·畵) 창작 및 감상 등의 풍류를 함께 즐겼다. 이 행위들은 아회 문화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임과 동시에 아회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이 중에서도 전다 행위로 대표되는 차는 청담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써 등장하게 된다. 아회에서 술과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것이 차와 이에 대한 품
봄이 되니 사지가 나른해지는데,차 끓는 머리맡엔 향이 그윽하네.글 보지 않아도 나름대로 맛이 있으니,창에 가득한 솔 그림자 아래 책 주머니 베고 눕는다.[뉴스퀘스트=함은혜 연구원] 이 시의 제목은 「잠자기」로, 1818년 자하 신위(申緯, 1769~1847)가 50세에 지은 것이다. 신위는 차를 애호했던 인물로, 은거 생활 중에 차의 정취를 느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감회를 읊은 시이다. 한가로운 낮, 소나무 아래의 모옥에서 책을 읽다 잠이 든 선비의 모습과 그 옆에서 찻물을 끓이고 있는 다동의 모습이 상상된다. 이 상상 속 장면은 조선 후기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의 다화인 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오수(午睡)’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낮잠과 관련된 내용의 그림이다. 이 작품에는 서재에서 독서를 하다가 책을 베고 잠든 선비와 바위 아래에서 차를 준비하는 다동, 그리고 소나무 밑에서 노닐고 있는 한 쌍의 학이 등장한다. 화면의 왼쪽에는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깊은 산 속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모옥(茅屋) 한 채가 보인다. 그 안에서 고사(高士)는 조촐한 식사를 하고 있고, 마당에 놓인 커다란 괴석 옆에는 다동(茶童)이 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뛰어난 화원 화가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산정일장병》중 제4폭〈맥반흔포도〉이다. 가만히 감상하고 있으면, 찻물 끓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따금씩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평온해진다.《산정일장병》은 총 8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남송대 문인 나대경(羅大經, 1196~1242)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거편(山居篇)」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산거편」은 나대경 자신의 산 속 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써내려간 짧은 산문으로, 관료문인들이 원하는 은거(隱居) 모습을 잘 담아내어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다.이는 회화의 주제로도 매력적이었다. 「산거편」의 첫 머리에서
[뉴스퀘스트=함은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고요하고 깊은 산 속,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보름달 아래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차를 마시는 상상을 해보자. 평온하면서도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현대에는 상상으로 그려보는 자연 속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그림으로 표현한 이가 있다. 바로 조선 중기의 이경윤(李慶胤, 1545~1611)이다. 차를 통해 내면적 자유와 여유로움을 그려냈던 그의 그림 를 살펴보려고 한다.이경윤은 성종(成宗)의 8번째 아들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 1488~1552)의 증손으로, 방계이기는 하지만 왕실 출신의 문인화가이다. 이경윤이 차에 대해서 알고 있고, 차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 그린 것은 종친의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점이 일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차 그림인 이경윤의 는 달빛이 비치는 고요한 밤에 홀로 거문고를 타는 문사와 그 뒤에서 차를
[뉴스퀘스트=최혜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연구원] 우리나라에서 차 문화는 고려(918~1392)시대에 들어 활짝 개화했다. 7세기 도당구법승(渡唐求法僧)들에 의해서 소개된 선종 수행승들의 차 문화는 신라 말~고려 초에 구산선문이 개창되면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태조 왕건 이래 불교가 국교로 숭상됨으로써, 차는 국가와 사찰을 중심으로 수요가 더욱 확산되었다. 최승로(崔承老, 927~989)의 「시무28조」를 보면 국가가 주관하는 대규모 불교의식에서 왕이 직접 차를 준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차가 종교를 넘어 국가 권력의 상징물로서 인식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왕실이 차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고려는 차 문화가 성행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라는 그림이 있다. 커다란 소나무가 아름답게 드리우고 대나무가 둘러 있는 곳에 6명의 인물들이 둥그렇게 모여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소나무 아래 붉은색 탁상에는 여러 기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