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이사회 특정 성별 독식 막는 개정 자본시장법 발동
보여주기식 행보 우려도..."적절한 여성 인재 찾기 어려운 실정"

올해 8월 특정 성별이 이사회를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도입된다. [픽사베이]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올해 국내 기업들의 주주총회 화두는 단연 '여성 이사 모시기'였다.

8월 시행이 예고된 개정 자본시장법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상장사 이사회를 특정 성이 독식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외부 인사(이하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는 재계 움직임이 활발했다.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린 이들은 대학교수부터 법학계 전문가까지 다양하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보여주기식 행보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나오고 있다.

◇ 여성 사외이사 '첫 선임' 행렬

그룹 계열사들은 주력 사업에 의견을 제시할 관련 업계 전문가, 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여성 인물들을 발탁했다.

대표적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은 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회사의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ESG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 교수의 노하우를 접목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로템이 첫 여성 사외이사로 안보·국방 전문가인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를, 현대위아가 이규진 명지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영입했다.

상명대 국방예비전력연구소 소장 등을 거친 윤 교수는 회사의 방위사업 성장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수는 자동차·기계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아의 경우 신현정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를 선임하며 2년 연속 여성 사외이사를 뽑았다.

신 교수는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 이사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LG그룹에서는 LG화학이 이현주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와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이 교수는 UC버클리대 박사 후 과정 등을 밟은 화학 전문가, 조 교수는 과학기술한림원(정책학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학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강정혜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LG이노텍은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학계 인물들을 첫 여성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외 BNK금융지주,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지주(HD현대) 등도 첫발을 뗐다.

제약업계에서는 한미약품이 황선혜 숙명여대 영문학 명예교수를 여성 이사로 합류시켰다.

업종을 불문하고 국내 핵심 기업들이 여성 이사를 선임하는 데 열을 올린 셈이다.

(왼쪽부터) 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신현정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이현주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각 홈페이지 갈무리]

◇ 실효성 의문...사내이사 선임 과제도

여성 사외이사를 늘리고 있는 기업들의 행보가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회사 발전에 기여할 만한 전문가를 발탁하는 게 아니라 최소 1명만 앉혀 놓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관성이 다소 모호한 인사를 이사회에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개정법 대응과 지배구조 재정비를 위해 부랴부랴 여성을 이사회에 합류시키고 있지만 실효성은 아직 입증됐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선임과 같은 흐름이 자칫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능력 위주의 원칙을 중시해야 한다는 반발만 낳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성 사외이사 확대가 법 강제에 따른 기업들의 생색내기라는 지적도 있다.

그 근거로는 저조한 사내이사 선임이 꼽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신규 사내이사 96명과 사외이사 151명 가운데 여성 사내이사는 2명, 사외이사는 58명 수준이다.

회사 경영진을 이사회에 앉히는 사내이사 선임에 있어 유리천장이 아직 두껍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기업들은 앞으로 여성 이사 문화가 정착할 때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는 "재계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는 열기가 뜨거워졌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마땅한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우수한 여성 인재를 육성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등 다양한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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