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핵심역량 통합 후 전문가 중용...'고객 경험' 등 비전 제시
신사업·기술 확장에도 매진...이차전지·수소·ICT 전문가 대거 포진

지난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참여기업 대표들. (왼쪽부터 정면 기준)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인터넷 기업이 스마트폰을 만들고, 스마트폰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고, 자동차 기업이 반도체를 만드는 시대.

지금 전 세계 산업은 그야말로 ‘빅 블러’(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에 빠져 있다. 한 분야에 매진하는 것만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진 탓이다.

이처럼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자 재계는 새 판을 짜야 하는 과제를 직면하게 됐다. 기존사업도, 신사업도 다 잘해야 하는 ‘만능 전략’이 필요해진 셈이다.

때문에 주요 기업들은 정기 인사를 통해 향후 추구할 방향성을 다시 수립하고, 각 조직을 개편하는 데 주력했다. 핵심 사업 간 시너지를 극대화할 전문 경영인 또한 대거 선임했다.

(왼쪽부터)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X 부문장,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 사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사진=각 사]

◇ ‘고객 경험’에 꽂힌 삼성전자, ‘혁신’이 필요한 롯데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사업의 대변신을 예고한 대표적인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소비자가전과 모바일 사업을 한 개의 부문으로 합치고, 고객 경험을 중시하자는 취지로 통합 부문의 명칭을 ‘DX(Device eXperience)’로 변경했다.

DX 수장 자리에는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이름을 올렸다. 1988년 VD사업부에 입사한 한 부회장은 근래 삼성TV를 15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린 가전 전문가다.

삼성전자는 최근 별도의 개편을 통해 한 부회장 직속으로 중국사업혁신팀을 새로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업 등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고객 경험을 강조한 또 다른 기업은 LG전자다. 큰 틀의 개편은 없었지만, 새 최고경영자(CEO)에 해외통인 조주완 사장을 올린 것.

조 사장은 최근 새해 핵심 키워드로 “한발 앞서고(First), 독특하며(Unique),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New) 고객 경험’(이하 F.U.N)을 꼽기도 했다.

롯데의 경우 기존 비즈니스 유닛(BU) 체제를 없애고 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 등 계열사를 6개 사업군으로 묶고, 이 중 식품·쇼핑·호텔·화학 사업군을 총괄 대표가 있는 헤드쿼터 조직으로 개편했다.

그러면서 그룹의 주춧돌인 유통 사업의 파격 변신을 예고했다. 롯데는 네이버쇼핑과 쿠팡 등 신흥강자에 맞서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새 전략을 짜야 하는 과제 앞에 놓인 상태다.

이에 이커머스 사업을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대표직에 유통 전문가인 김상현 전 DFI 리테일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을 선임했다. 1979년 롯데쇼핑 설립 이후 외부 인사가 대표를 맡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는 내년도 임원 인사에서 철강사업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김학동 사장(맨 왼쪽)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사업 강화를 위해 추교웅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장·전자개발센터장(왼쪽 두번째)과 김흥수 미래성장기획실장·EV사업부장(맨 오른쪽)을 부사장에 승진 임명했다. [사진=각 사]

◇ "패러다임 전환 속 살아남자"…현대차·포스코의 ‘신사업 드림’

세계 주요국에서 친환경 흐름이 대두되면서, 기존 사업을 재편하는 것을 넘어 새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 기업들도 있다.

그 선두에는 현대차그룹이 있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공개된 그룹의 신규 임원 승진자 중 연구개발(R&D) 부문의 비율은 37%, 이들 중 다수는 인포테인먼트와 자율주행, ICT 등 핵심 신기술 분야에 포진됐다.

일례로 현대차의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장 추교웅 전무와 EV(전기차)사업부장 김흥수 전무, 수소연료전지사업부장 임태원 전무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은 모두 부사장으로 승진·배치됐다.

그룹은 인재 중용과 함께 체질 변화도 예고했다. 연구개발본부 내 파워트레인담당 조직을 전동화개발 담당으로 전환하고, 배터리 개발센터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내연기관 개발 조직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동화 중심으로 조직의 방향성을 재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내년부터 본격 지주사 체제로 변신하는 포스코는 산업계 변화에 발맞춰 조직 구조를 뜯어고쳤다.

포스코 또한 미래사업 육성에 집중했다. 이차전지 소재부터 수소,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연구개발(R&D)을 주도할 미래기술연구원을 발족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를 외부에서 대거 영입한 것이다.

이에 미래기술원 산하 이차전지소재연구소장에 포스코케미칼 김도형 상무를 보임했으며, 수소·저탄소 연구소장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윤창원 박사, 연구위원으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전문가인 미국 KBR 출신 윤주웅 박사를 영입했다.

글로벌 흐름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할 방안도 내놨다. 포스코는 ESG 경영 강화를 위해 2050 탄소중립 추진 및 산업 보건 관리 조직도 신설하기로 했다.

저탄소공정연구소와 탄소중립전략그룹, 전기로 사업 추진 태스크포스(TF)팀도 세웠다. 포스코는 내달 임시 주총 이후 지주사 체제로 전환이 확정되면 후속 정기 인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9월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사장. 각 대표들은 수소기업협의체에 참여해 국내 수소경제 실현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2021년 한 해가 저물면서 재계는 하나둘씩 내년도 도약을 위한 채비를 마치고 있다.

이에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기업의 마인드가 변화하고 있다"라며 "영향력이 있고 능력이 있는 인사들을 적극 기용하는 등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과 같은 불확실성을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총수들의 발도 바빠질 전망이다.

이들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 해외 출장을 재개하며 경영 보폭을 넓혀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년 초 해외 출장에 다시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검은 호랑이의 해'(임인년·壬寅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를 맞아 새 조직과 리더들을 갖추게 된 기업들이 어떤 경영 행보를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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