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 등 정기인사 마침표...3040으로 세대전환
기존 지휘봉들 퇴진...'오너 맞춤형 세대교체' 진단도 나와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애플의 팀 쿡,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아마존의 앤디 재시, 트위터의 퍼라그 아그라왈.

지금의 회사, 혹은 이전 회사에서 30·40대에 고위 임원직에 올라 중책을 맡은 수장들의 이름이다.

이처럼 젊은 인재 중용은 글로벌 시장에서 특별한 일이 이니다. 이들 기업들은 기업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연공서열이 아닌 성과 중심의 인사를 택하고 있다.

국내 재계도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흐름에 발을 맞추며 세대교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정기 임원 인사를 마친 그룹들은 성과와 잠재력을 토대로 젊은 인재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대대적인 변화에 나섰다.

(왼쪽부터) 김찬우 삼성전자 부사장,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장, 신정은 LG전자 상무 [사진=각 사]

◇ 주류 꿰찬 3040 세대...'30대 부사장님'도 나왔다

LG와 롯데를 시작으로 SK·삼성·현대차까지 임원 인사를 마치면서 국내 5대 그룹의 내년도 경영진 그림이 완성됐다.

기업들에게 세대교체는 낯선 단어가 아니지만 이번 인사 결과에서 주목할 부분은 '연령대'다. 이전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50대 이하의 리더들이 등장한 것이다.

각 그룹들은 직급이나 연차와 관계없이 성과를 내거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리더들을 배출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삼성전자는 40대 부사장과 30대 상무를 대거 발탁하며 이목을 끌었다. 그중 부사장에 오른 가장 어린 인물은 김찬우 부사장(45·DX부문)이며, 이외에도 대다수의 신임 부사장들이 47세~49세였다.

30대 상무에 오른 가장 어린 인물은 박성범 상무(37·DS부문)다. 이외 소재민 상무(DX부문)와 김경륜 상무(DS부문)는 38세, 심우철 상무(DX부문)는 39세다.

현대차그룹은 사상 최다 규모로 203명의 신규 임원을 선임한 가운데, 이중 40대가 3분의 1을 차지했다.

SK그룹에서는 40대 사장과 30대 부사장이 등장했다.

일례로 SK하이닉스의 노종원 부사장(46·경영지원담당)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신임 부사장 자리에는 이재서 담당(39·전략기획)과 신승아(44·미래기술연구원) 담당 등이 올랐다.

LG그룹도 젊은 인재를 선임하며 주목을 받았다. 신임 상무 132명 중 40대는 62%다. 대표적으로 신정은 상무(41·데이터융합서비스태스크 리더)는 LG전자의 최연소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윤여철 현대차그룹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 물갈이 속 물러나는 옛 지휘봉들

이러한 흐름에 선대 회장 때부터 최전방을 지켜온 경영진과 임원들은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윤여철 부회장과 하언태 대표이사 사장, 이원희 품질담당 사장, 이광국 중국사업 총괄 사장 등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들의 후임과 관련해 부회장 및 사장 승진 인사는 없었다. 이로써 그룹 내 부회장단에는 정의선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만 남게 됐다.

LG그룹은 구광모 대표의 카운터파트로 활약한 권영수 부회장(64)을 LG에너지솔루션 수장으로 옮기고, 신임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에 권봉석 전 LG전자 사장을(58·현 부회장)을 올렸다.

삼성전자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뉴 삼성'을 함께 추진했던 김기남·고동진·김현석 대표이사 3명이 모두 물러났다.

반도체 사업 등 DS부문을 이끈 김기남 부회장(63)은 회장으로 승진, 삼성전자종합기술원으로 터를 옮겨 미래기술 개발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기로 했다. 

때문에 그룹 총수들의 나이가 어려진 만큼 '오너 맞춤형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아버지 세대 혹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경영진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젊은 총수가 나이가 많은 임원진을 두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라며 "그들은 (총수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가교 역햘을 해왔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 상황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황 교수는 "요즘은 총수들 사이에서 '나도 충분히 전문 경영인만큼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총수들이 경영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보다 조금 어리더라도 함께 향후 전략을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구광모 LG 대표는 이른 2022년도 신년사를 통해 "가치 있는 고객 경험에 우리가 더 나아갈 방향이 있다"라며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등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LG]

업계에서는 이미 기업들의 새 판짜기가 당연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다만 일부 젊은 직원들은 변화를 반기면서도, 세대교체의 핵심인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경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A그룹사 직원인 30대 김민정(가명)씨는 "지금까지도 성과를 내야 고과를 평가받고, 그래야만 승진이 가능했던 터라 성과주의 인사로 전환했다고 해서 크게 와닿는 부분은 없다"면서 "(다만 세대교체 흐름에 따라) 함께 일하는 직원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승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앞으로 더욱 두려워질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B그룹사에서 일한 지 약 6년이 되었다는 30대 직원 박성현(가명)씨도 "50대 중·후반의 직장 상사들 사이에서는 자칫하면 '버려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라며 "기업이 아닌 개인의 시각으로 볼 때 세대교체의 이면이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을 종합해 볼 때 당분간 기업 안팎에서 세대교체에 따른 진통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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