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과점체제 깨기 위해 저축은행→지방은행→시중은행 전환 등 논의
"외환위기 은행권 부실... 부담은 또다시 국민에게" 우려 고려해야
실효성 의문도... 포퓰리즘 벗어나 정교한 논의 나서야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실효적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 사진은 주요 시중은행.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를 깨기 위해 실효적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 사진은 주요 시중은행.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남지연 기자】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이라는 말이 있다. 언덕에서 한번 미끄러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어떤 사소한 행위나 제도를 허용할 경우 연쇄적인 인과(因果) 작용이 발생, 당초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 결과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산업의 과점(寡占) 폐해가 크다"는 발언으로 촉발된 은행권 과점체제 개혁 논의를 보면서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이 떠올랐다.

아직 당국의 구체적인 은행 경쟁확대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규제가 한번 완화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간 실질적 경쟁체제를 위해 타업권의 은행 진입, 챌린저뱅크 도입,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은행은 경쟁 체제다.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기업은행, 지방은행 6곳, 인터넷 전문 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일반 소비자를 고객으로 하는 은행 개수로만 보아도 15곳이다.

물론, 문호를 넓혀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유도하고 은행 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은행의 본분은 국민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데 있다. 돈을 맡기는 사람 관점에서는 ‘신뢰’와도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정부의 인가를 필요로 하는 규제 산업이다.

과점체제 개혁을 이유로 쉽게 규제를 완화할 경우 은행권 부실과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와 같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이미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때 은행권 경쟁체제의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현재 올해 3월 기준 우리나라의 시중은행은 총 18개지만, 과거 외환위기가 일어났던 1997년 이전에는 약 11개 가량의 은행이 더 존재했다. 29개였던 시중은행이 18개로 줄어든 까닭은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금융회사의 부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다.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당시 정부는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의 부실을 정리했다. 지난해말 기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 기업 등의 재기를 위해 투입한 자금 규모는 168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서 절반 가량인 86조9000억원이 은행의 회생을 위해 투입됐다.

현재 대부분의 공적자금은 상환된 상황으로, 은행들은 이제야 공적자금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영을 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미 IMF 사태 때 경쟁력을 상실한 은행들이 파산에 이르렀다”면서 “은행 등 기업의 재기를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이 모두 지게됐다.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달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잘못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도입할지 말지의 여부는 별도의 사안이지만, 은행의 과점체제로부터 나오는 문제점은 챌린저 뱅크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와 학계의 중론이다. 결국 이들이 메기효과를 내지 못하면 금융개혁 취지는 무색해진다.

인터넷 전문 은행 3사가 출범했을 때도 기존 금융사와 다른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영향력은 미미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점유율은 여신(예적금) 74.2%, 수신(대출) 63.4%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들과 금융당국의 은행권 영업·경영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등의 조치는 그저 국민의 표만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해석이 잇따른다. 포퓰리즘이란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행태를 말한다. 

남지연 기자
남지연 기자

실제로 이를 방증하듯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은행 공공재' 발언을 꺼낸 후 줄곧 30%대 중후반을 기록했던 지지율이 반등해 2월 셋째 주, 넷째 주에 40% 선에 올라섰다.

당국이 포퓰리즘에 사로잡혀 은행과 시장에 대한 정교한 이해없이 이자장사, 고액의 성과급 논란을 해결하겠다고 불필요한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당국이 좀더 근본적으로 과점체제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은행권 경영권 행태 개선 방안에 대해 고심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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