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행동주의 펀드 5곳, 삼성물산에 1조 2364억원 주주환원 요구
KT&G·삼양그룹·현대엘리베이터 등 주총 앞둔 주요 기업들도 공격 대상
“소액 주주 가치 높인다”는 평가와 “시세 차익 노린 행동” 비판 엇갈려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무리한 주주환원 정책 등을 요구하면서 자칫 기업 성장 잠재력까지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 전광판. [사진=연합뉴스]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들이 무리한 주주환원 정책 등을 요구하면서 자칫 기업 성장 잠재력까지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 전광판.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온 이후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총회를 앞둔 기업들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만,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 체력에 비해 너무 과도한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해 속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낮은 지분율로 거의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액 주주들을 대변한다는 논리는 뒷전인 채 맹목적 수익 창출을 노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행동주의 펀드는 이른바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1999년 미국계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 지분 확보 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끝에 약 6300억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또 2018년에는 현대차그룹이 엘리엇으로부터 8조원대 고배당 등을 요구받았으나, 적극적인 방어를 펼쳐 큰 손실을 막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 지분을 일정 부분 확보한 후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올해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최근 시티오브런던 등 행동주의 펀드 5곳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자사주 5000억원 매입, 주당 배당액 4500원 상향 조정 등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했다.

이미 삼성물산은 보통주 주당 2550원의 배당을 결정했는데 거의 2배 가까이 배당액을 올려달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셈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기업 간 마찰은 삼성물산 외에도 더 있다.

KT&G는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삼양그룹은 VIP자산운용과, 현대엘리베이터는 KCGI자산운용(강성부펀드)과 주주환원 정책 강화 수위를 놓고 각각 대립하고 있다.

문제는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정책 요구가 과도해질 경우 기업들의 자금 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미래 지향적인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요구하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액은 총 1조 2364억원 규모”라며 “이는 삼성물산의 잉여 현금 흐름을 100% 초과한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게 되면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다른 주주들에게 회사 측 지지를 호소했다.

글로벌 기업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는 기업 73곳을 대상으로 총 91개의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이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일본,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치로 주요 기업들의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 산하 데이터 분석 기관 ‘인사이티아’(Insightia)는 한국의 행동주의 캠페인이 최근 1~2년 새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2020년에는 행동주의 펀드 공격 대상 기업이 10곳에 불과했지만, ▲2021년 27곳 ▲2022년 49곳으로 크게 증가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가 주장하는 주주 권리 강화 또는 주주 가치 제고라는 ‘대의’(大義)에 가려진 이기적인 모습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직까지 비교적 운용자산(AUM) 규모가 작은 신생 운용사가 행동주의 캠페인을 주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일부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수익률, 운용사 홍보 등을 위한 근시안적인 의사 결정을 종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비정상의 정상화 관점에서 주주 행동주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해소에 일조하는 역할은 분명 있다”며 “최근 개인 주주들이 다수의 주주 제안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보이는 점도 행동주의 펀드로 인한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기업들에게 무리한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막대한 차익 실현’이라는 속내는 숨긴 채 기업들을 압박하는 행동은 국내 자본시장과 산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매우 위험 요소다.

최근 누적 관객수 13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부디 행동주의 펀드들이 “실패하면 본전, 성공하면 ‘대박’ 아닙니까?”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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