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일행들과 전주(全州)에서 하룻밤 잔다.완산(完山)이라 불렀지만 통일신라시대부터 전주라 하였다. 완(完)과 전(全)은 온전하여 다 아우르는 의미다. 어젯밤 골목의 추억은 뒤로 하고 햇볕을 피해 오목대 마루에 앉아 역사이야기를 한다.풍남동의 작은 언덕을 오목대라 하는데 아래는 전주천, 한옥마을, 한벽루 등이 있다. 고려 우왕 때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가 잔치를 베풀며 뒷날을 암시한 곳이다. 개국 후 정자를 짓고 오목대(梧木臺)라 했다.오동나무가 많은 언덕이라는 것. 시원한 바람 부는 정자에 앉아 “벽오동 심은 뜻은 ~” 한 수 읊는다.태조 이성계가 지은 정자, 오목대에 올라명나라 주지번이 여러 번 과거 낙방해 공부를 하는데 마침 사신으로 간 조선관리가 그곳에 묵었다.비결을 알려주자 급제해 조선사절로 온다. 은혜를 갚고자 전라관찰사에게 현판을 써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전주객사의 풍패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산 아래 물빛이 금빛으로 번쩍이는데 모두가 금이다.금산(金山)·금평(金坪)·금구(金溝)·김제(金堤), 나도 금, 아니 김(金)이다. 수왕사는 물왕이 절, 물맛이 일품이듯 산골짜기마다 물이 많았다.물은 금을 낳으니(水生金), 저 만경강과 동진강, 광활한 호남평야의 푸른 생명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저리도록 느껴보던 시절, 어느덧 7년이 훌쩍 흘러갔다.병꽃나무 있는 왼쪽으로 다시 계단을 올라서 12시 40분경 갈림길(대원사2.1·정상0.4·주차장3.6·천일암0.5·마고암2.7·신선바위0.4킬로미터). 세 번째 헬기장 남봉에서 해를 머리에 두고 점심이다. 우리가 걸어갈 장군재는 1.4킬로미터(구이관광단지5.1·정상0.4) 거리.오후 1시 30분경 출발해서 20분 지나 장군재 갈림길(배재1.1·정상1.8킬로미터)에 물푸레·신갈·떡갈·굴피나무를 만난다. 모악정은 위험구간 출입통제 구역이라 더 이상 갈 수 없다. 발길을 또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모악산(母岳山)은 전주·김제·완주에 걸쳐 있다.정상 동쪽에 아이를 안은 어머니 모양의 “쉰길바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제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옛날에는 큰 뫼를 상징하는 금산으로 불렸다.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백제시대 세워진 금산사가 있다. 조선말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불교, 증산교 등 신흥종교가 이곳에서 탄생했다.한때 대원사, 귀신사, 수왕사 등 무려 80여 개의 크고 작은 절이 있었다. 산기슭에는 모악산이 후천세계1) 중심지라 믿는 신도들이 마을을 이루기도 했다.백운동·동곡·용화동마을…….특히 김제의 금평저수지 오리알터는 미륵이 내려와 용화세계를 만든다고 올(來)터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한다. 풍운아 정여립, 천주교 박해로 흘러든 사람들, 동학혁명군, 전봉준, 강증산도 이곳을 스쳐갔다.계룡산과 모악산에 새로운 종교가 모여드는 것은 미륵신앙과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본다. 정감록은 계룡산에 이씨를 대신할 정씨왕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