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19세기 초 평양 기생 66인의 사소한 일상사를 다룬 책인 한재락의 『녹파잡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섬양은 나섬의 아우이다. 나는 여러 손님과 경파루 밑으로 그녀를 방문했다....(중략)....그녀가 손님을 배웅하고 난간에 기대 소동파의 와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몇 수를 읊은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녹파잡기』 p.67)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와 이다.는 지금도 서도소리 송서(誦書)로 부르고 있다. 송서란 말 그대로 서책을 읽는 듯이 소리하는 것을 말한다.송서는 청자와 화자 모두 한학(漢學)에 조예가 있어야 하므로 주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식자층과 이들을 고객으로 하는 기방에서 향유되었다.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따르면 안동 기생은 을, 영흥 기생은 를, 함흥 기생은 를 잘 외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송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송서의 출발은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