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열 살 무렵부터 김성일은『소학』,『사서』,『시경』등 유교의 기본경전을 공부하면서 학문의 토대를 쌓았다.열일곱 살 무렵에는 맏형의 부임지에 따라가서 공부를 했으며, 열아홉 살 무렵에는 세 살 아래 동생 김복일과 함께 풍기의 소수서원에 가서 공부를 했다.그때 소수서원에는 퇴계의 제 자 황준량(黃俊良)이 있었다. 황준량은 학식이 높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그에게서 퇴계의 명성을 전해들은 김성일은 퇴계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정진하여 점점 공부가 깊어지던 어느 날, 김성일은 책을 덮으며 탄식을 했다.퇴계의 3대 제자가 되다“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천지만물의 이치와 자기 자신의 본질을 깨우치는 학문을 모르고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김성일은 집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말했다.“우리나라 최고의 스승이신 퇴계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흔쾌히 허락하자 김성일은 동생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임진왜란 초기에 남쪽을 지키던 대부분의 장수와 병사들은 일찌감치 피난을 가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데다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을 당 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때문에 갈수록 전세가 불리해졌고 민심도 흉흉해졌다. 선조가 중국으로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게 되면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가고 마는 것이었다.죽기를 각오하고 왜적과 싸우다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의병들의 궐기였다. 경상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이들은 오로지 내 가족과 내 삶의 터전을 왜적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일념뿐이었다.때문에 사기가 드높았고 죽기 살기로 싸워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의병을 일어나게 하고 그 의병들을 잘 조직해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계기를 마련한 데에는 김성일의 공이 컸다.처음에는 관군과 의병 사이에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병은 급조된 조직이라서 규율이 형편없었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90년(선조 23년) 3월, 천지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서울을 떠나 머나 먼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 일행이 산 넘고 물 건너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다.1479년(성종 10년)에 떠났던 조선통신사가 일본 내부의 사정 때문에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이후 110년 만의 파견이었다.1443년(세 종 25년) 정사 변효문, 부사 윤인보, 서장관 신숙주 등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부터 따지면 147년 만의 일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조선 통신사 파견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임무는 막중했고 어깨는 무거웠다.일본으로 떠나는 세 사람조선 초기 외부로부터의 가장 큰 위협은 북쪽 국경지방에 출몰하는 여진족과 남서 해안에서 노략질을 하는 왜구였다.여진의 침입에 대비해서 세종은 김종서에게 6진을 개척하도록 했다. 왜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 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