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오월의 끝자락에 울릉도에 왔다.근 십 년 만이다.그전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왔었다.내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던 식물분류학연구실은 울릉도와 독도의 식물을 대상으로 섬 식물의 진화를 탐구하던 곳이었다.연구실 입구에는 호실을 알리는 숫자와 ‘울릉도·독도연구소’라는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학위 과정 동안에 울릉도와 독도를 수차례 오가며 그곳의 식물상을 밝히고 독도에 사는 우리 고유식물 3종을 찾기도 했다.이름도 예쁜 섬초롱꽃과 섬기린초와 섬괴불나무를.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강원도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나의 연구 주제는 자연스레 내륙의 식물들에 초점이 맞춰졌다.그러는 동안에 나는 울릉도를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상기된 마음을 좀처럼 가눌 수 없었던 울릉도 첫 입도의 순간을 기억한다.툭하면 뱃길이 끊겨 출항의 기약 없던 그 섬에서 식물 탐사에 매달렸던 시간, 낯선 섬 식물의 종류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위해 고투했던 낮과 밤의 시간……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과 관련된 강연을 하게 되면 수강생들로부터 주로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식물학자는 어떤 식물을 가장 좋아하냐’는 거다.예쁘고 귀한 식물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들 모두를 뒤로한 채 나의 답변은 언제나‘팽나무’다.내가 자란 시골 마을 어귀에는 팽나무 고목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그 큰 나무가 유년의 내게는 마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 같았다. 또래가 귀했던 작은 마을에서 그는 내 유일한 친구였다.그의 덩치가 몇 아름이나 되는지 두 팔을 벌려 한참을 재보거나, 꾸덕꾸덕 떨어진 고목의 나무껍질로 탑을 쌓기도 하고, 제법 달콤한 열매를 따 먹어도 보고, 자잘한 씨앗을 하나둘 헤아리다 보면 금세 저녁이 찾아왔다.기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속상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팽나무 앞에서였다.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팽나무가 누구보다 좋았고 팽나무 곁에서 나는 못 할 말이 없었다. 친구였던 팽나무가 조금 무서워지는 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