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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1 07:42 (화)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⑰] 울릉도 비밀의 숲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⑰] 울릉도 비밀의 숲
  • 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 승인 2021.06.08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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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오월의 끝자락에 울릉도에 왔다.

근 십 년 만이다.

그전에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왔었다.

내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던 식물분류학연구실은 울릉도와 독도의 식물을 대상으로 섬 식물의 진화를 탐구하던 곳이었다.

연구실 입구에는 호실을 알리는 숫자와 ‘울릉도·독도연구소’라는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학위 과정 동안에 울릉도와 독도를 수차례 오가며 그곳의 식물상을 밝히고 독도에 사는 우리 고유식물 3종을 찾기도 했다.

이름도 예쁜 섬초롱꽃과 섬기린초와 섬괴불나무를. 

섬괴불나무는 울릉도와 독도에 사는 우리나라 고유식물이다. 꽃이 옛 의복에 차던 괴불노리개를 닮아서 괴불나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는 꽃이 아귀가 입을 쩍 벌린 모습을 닮았다고 아귀꽃나무라고 부른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강원도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나의 연구 주제는 자연스레 내륙의 식물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울릉도를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상기된 마음을 좀처럼 가눌 수 없었던 울릉도 첫 입도의 순간을 기억한다.

툭하면 뱃길이 끊겨 출항의 기약 없던 그 섬에서 식물 탐사에 매달렸던 시간, 낯선 섬 식물의 종류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위해 고투했던 낮과 밤의 시간……

내가 사랑했던 그 순간과 시간에 대한 기억을 그간 너무 잊고 지냈었다. 

못 본 사이 울릉도는 참 많이 변했다.

울릉도의 해안을 일주하는 도로가 2019년에 완전히 개통되었다. 전과 달리 차가 많아졌다.

택시와 렌트카와 대형 공사 차량이 바쁘게 오간다.

울릉군이 그토록 고대했던 공항 건설 작업이 시작되었고 일주도로의 일부 구간에는 길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저동항과 사동항 사이 해안가에는 카페와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고급 리조트와 근사한 감성 민박집도 울릉도 곳곳에 새롭게 들어섰다.

그 생경한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원래 그 자리에 살던 식물들이 많이도 사라졌네 하고.

식물 공부하는 사람들은 울릉도를 두고 동양의 ‘갈라파고스’라고 부른다.

다윈이 종의 분화를 기록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외딴 섬들처럼 울릉도는 식물의 진화를 보여주는 실험실이자 살아있는 전시장이라는 것이다.

바다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화산섬이 울릉도다.

약 300만 년도 더 전에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아올라 단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었던 섬.

그 고립된 섬 안에서 식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종 분화를 겪었다. 

꽃과 열매가 육지의 것과는 확연히 구분되게 커진 점이 울릉도 식물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래서 울릉도 식물 중에는 접두어 ‘왕’을 붙인 이름이 많다.

왕호장근, 왕둥굴레, 왕매발톱나무, 왕김의털 등이 육지의 것들보다 훨씬 큰 덩치를 자랑하며 울릉도 곳곳에서 왕왕대며 자란다.

‘큰’을 내건 큰두루미꽃와 큰연영초도 내륙의 두루미꽃과 연영초에 비하여 큰 편이다.

몸에 털을 없애거나 반대로 더하거나, 잎에 광택을 칠하거나 가지에 가시를 없애거나, 생식기관의 모양과 색깔을 바꾸는 등 내륙의 것들과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식물들은 울릉도라는 섬에 적응해왔다.

울릉산마늘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고유식물이다. 산채로 인기가 많아서 명이나물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울릉도의 산에 저절로 자라지만 최근에는 밭에서 대량으로  재배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그래서 울릉도에는 울릉도만의 고유식물이 많다.

울릉국화, 울릉장구채, 울릉산마늘, 우산제비꽃, 우산마가목 등 이름만으로도 ‘울릉스러운’ 식물들.

심지어 최근에는 울릉도만의 식물이 새롭게 확인되기도 했다. 두메부추와 우산마가목과 울릉바늘꽃 등이다. 

울릉도에서 저절로 나는 두메부추를 전에는 중국과 몽골과 러시아에 자라는 두메부추와 동일한 식물로 보았었다.

하지만 울릉도의 두메부추는 섬 밖에 자라는 것들과 다르다는 분류학적 견해가 제기되었다.

꽃의 생김새도, 꽃이 피는 시기도, DNA 염기서열도 달라서 그간 국외의 두메부추와 같은 종으로 여겼던 울릉도의 두메부추를 별개의 독립된 종으로 인식하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불과 몇 달 전에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우산마가목도 같은 경우다.

과거에는 내륙의 마가목과 울릉도의 마가목을 같은 식물로 보았었다.

하지만 울릉도라는 섬에 고립되어 살며 내륙의 마가목에 비해 꽃도 열매도 눈에 띄게 커진 것을 ‘우산마가목’으로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몇 해 전 국제학술지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오월이 다 가기 전에 기어코 내가 울릉도에 온 이유는 우산마가목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우산마가목을 품은 그 숲을 만나기 위해서다.

오월 중순은 우산마가목 꽃이 제철인 시기.

십여 미터도 훨씬 넘게 자라는 그 큰키나무에 달리는 꽃을 보려면 목을 한껏 젖혀야 하는데, 그래 봤자 꽃 뒤꽁무니만 올려다보게 되어 약이 오를 때가 많다.

성인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능선에 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이 있으니까. 성인봉의 원시림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게 곁을 내어주던 비밀의 숲이 있다.

거기 우산마가목 군락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아는 나는 그래서 울릉도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성인봉은 산세가 성스럽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의 깊고도 넓은 원시림은 일부 구간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을 정도다.

성인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섬의 동서남북 어디서든 연결된다. 섬의 남쪽 마을에 있는 안평전에서 출발하는 경로를 나는 제일 좋아한다. 

고종이 21년째 집권하던 1884년에 울릉도 개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울릉도의 남쪽 마을에 도착한 전라도 개척단이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고 점한 곳이 안평전이다.

이름처럼 산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평지인 안평전(內平田).

그곳은 비밀의 숲으로 가는 최단 경로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몇 해 전 산사태로 길이 유실되어 안평전-성인봉 간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회 경로를 택해서 성인봉의 9부 능선에 있는 비밀의 숲에 도착했다. 

너도밤나무 원시림이 먼저 나를 반겼다.

울릉도에서는 대형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너도밤나무가 내륙에는 단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다.

섬벚나무와 섬단풍나무와 섬피나무도 내륙에서는 볼 수 없으니 실컷 눈에 담았다.

저 멀리 절벽 바위에 자라는 섬개회나무가 훠이훠이 꽃향기를 내게 보내왔다.

향기에 이끌려 절벽 지대를 딛고 올라서니 기다렸던 풍경이 펼쳐졌다.

산의 한쪽 사면을 덮을 만큼 거대한 우산마가목 군락이 주렁주렁 꽃을 달고 있었다.

개화의 절정. 그 어여쁜 꽃들과 눈을 맞출 수 있는 높이를 숲은 나에게 허락했다.

인적 없는 곳에서 훼손되지 않은 숲이 웅크리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간의 간섭 없이 그들이 마음껏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었다.

오월 중순은 우산마가목 꽃이 제철이다. 울릉도의 우산마가목은 내륙의 마가목에 비해 꽃도 열매도 눈에 띄게 크다. 울릉도에만 사는 우리나라의 고유식물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울릉도는 마치 종을 엎은 모양과 같이 경사가 급한 화산섬이다. 이를 종상화산(鐘狀火山)이라고 한다.

성인봉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해안선에 거의 닿기 때문에 산이 곧 섬이라는 느낌도 든다.

반대로 같은 시기에 탄생한 제주도는 방패를 엎은 모양처럼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울릉도 보다 25배나 큰 면적에 다양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한라산 산정은 경사가 급하지만 그 아래 산록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평지로 이어지는 것. 제주도는 완만한 순상화산(楯狀火山)과 뾰족한 종상화산(鐘狀火山)의 복합체다.

울릉도에는 서로 다른 위도와 고도에 사는 다양한 식물이 그래서 그 좁은 면적 안에 다 모여 살게 되었다.

거기다가 동해의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환경이 독특한 식생을 만들기도 했다.

난대림과 침엽수림과 낙엽활엽수림이 공존하는 그런 오묘한 현상들이 울릉도에 나타난 것이다.

여하튼 한반도 내륙에서 보기 힘든 별 희한한 식물이 울릉도에서 다 자란다. 

진귀한 식물들은 내가 사랑하는 비밀의 숲에 신의 선물처럼 모여 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 사는 양치식물 실사리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 사는 침솔이끼도 이 숲에서 산다.

지구상의 극한 환경을 견디는 것으로 유명한데, 결코 아무 땅에나 자라지는 않는 희귀한 이끼다.

제주도에 자라는 송악이 강원도에서 자라는 만병초와 동거하는 역설적인 공간도 이 숲에 있다.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함께 존재하는 숲의 안온한 풍경을 건너다보니 울릉도의 해안가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 생각이 났다. 

실사리와 침솔이끼. 실사리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하는 북방계 양치식물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밝은 초록색 식물이 실사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 산지의 바위지대에만 산다. 바닥에 깔리 녹회색의 선태식물은 침솔이끼다. 지구상의 극한 환경을 견디는 것으로 유명한데,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도 자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해안의 개발은 그곳에 생존하는 식물의 서식지 소멸로 이어지기 쉽다.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선처럼 좁은 면적에 멸종의 위기에 처한 해안 식물이 국소적으로 분포하는 울릉도에서는 상황이 특히 더 심각하다. 

큰바늘꽃은 울릉도를 제외하면 강원도 일부 지역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식물이다.

울릉도 해안가에 드넓게 퍼져 살던 그들이 해안권 개발 행위로 군락째 사라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울릉도의 큰바늘꽃이 근처에 자라던 돌바늘꽃과 자연적으로 교배하여 생겨난 새로운 종이 을룽바늘꽃이다.

몇 해 전에 국제학술지를 통해 신종으로 보고되었다.

울릉도가 낳은 울릉도만의 고유식물이라는 가치를 제대로 밝히기도 전에 해안의 개발은 그들을 멸종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섬현삼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지구상에서 울릉도의 해안가에만 자라는 섬현삼은 환경부가 법으로 지정한 멸종위기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존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울릉도 해안의 맹목적인 개발이 섬현삼의 서식지 파괴로 이어지고 있으니까.

섬현삼이 포기를 이루어 자라던 곳곳은 도로가 되었거나 도로 확장 공사를 이어가고 있거나 투기가 분주한 땅이 되어버렸다. 

해안만의 문제도 아니다. 울릉도의 절벽에 적을 두고 사는 섬개야광나무를 보니.

섬개야광나무는 환경부가 법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멸종위기종이자 울릉도에만 사는 고유식물이다.

울릉도 도동의 자생지는 일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개발의 압력에서 벗어났다.

보호받지 못하는 서식지가 더 많다는 게 문제다.

남양마을에는 주상절리가 빼어난 산 하나가 있는데 쭉쭉 뻗은 돌기둥이 국숫발을 닮았다고 마을 사람들은 국수산이라고 부른다.

그 산을 마주하고 있는 절벽에는 십 년 전만 해도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섬개야광나무의 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케이블카와 낙조를 감상하는 전망대가 그들 자리를 꿰차고 있다. 

섬현삼이 포기를 이루어 자라던 곳곳은 도로가 되었거나 도로 확장 공사를 이어가고 있거나 투기가 분주한 땅이 되어버렸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울릉도에 있는 나의 소중한 비밀의 숲에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식물이 모여 산다.

아웅다웅 서로 건강하게 경쟁하며 그들의 서식지인 숲을 지킨다.

자연의 질서를 어기지 않고 저마다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하거나 조금씩 차지하면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내게 숲이 속삭였다.

지구라는 별에서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에 가장 서툰 생물은 아마도 인간일 거라고.

나지막하지만 분명히 단호한 어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