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산중에 웬 해당화냐고 착각 할 수 있지만 생열귀나무다. 중부 이북에 자라는데 붉은인가목이라고도 한다.

5월에 장미꽃처럼 피고 6~7월 익는 붉은 열매는 한방에서 자매과((刺莓果)라 해서 생리불순·임질에 썼다.

해당화는 바닷가에 주로살고 꽃피고 열매 맺는 시기도 1~2개월 정도 늦다. 가시는 해당화가 더 길고 많다.

“범의 찔레”로 부르면 얼마나 토속적인 이름인가?

생열귀는 산에서 자라는 아가위나무 산아가위·열귀나무의 함경도 방언, 또는 아가위나무를 당화(棠花). 명자·아가씨나무로 불리는 산당화(山棠花)와는 다르다. 아가위는 아가외에서 비롯된 것. 

호리병같이 생긴 보랏빛 병조희풀, 주홍색 다섯 꽃잎 동자꽃·나리꽃이 한창이고 쥐손이풀도 군락을 이뤘다. 
“동자꽃이 많네.”
“…….”
“스님이 깊은 산 암자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가 폭설로 돌아오지 못하자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 동자가 죽은 곳에서 핀 꽃이다.”
“죽은 동자가 왜 이리 많아.”
“설악산 오세암 전설과 비슷해.”
“……”
모시대·박새·관중, 중대가리풀 닮은 개버무리, 백당나무, 벌은 꽃향유 보라색 꽃에 앉아 세상모르고 꿀을 빨고 있다.

화악산 표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화악산 표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정오에 화악산(華岳山, 花嶽山) 중봉 1,446미터 경기 제일봉, 가평 북면 끝자락이다. 강원 화천 경계로 운악·관악·감악·송악산을 더해 경기5악. 여기서 1킬로미터 남짓한 정상은 군사지역으로 더 갈수 없어 중봉이 정상을 대신한다. 표석에 “한반도의 중심”이라 새겨 놓았다. 38선이 지나가는 중심, 아니 국토의 중심에 있대서 중봉이 아니던가? 풍수(風水)들은 태극의 가운데로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인만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조정에서 제사 지내던 산이었다. 김시습 등 묵객이 거쳐 간 곳으로 우뚝한 바위가 하늘로 솟은 것이 마치 꽃핀 것과 같아서 화악(華岳), 화악산이라 했을 것이다. 안개에 쌓여 조망은 흐릿한데 청시닥나무, 연노랑 꽃을 피운 미역줄나무는 전성기를 맞았다. 

중봉에서 바라본 산들.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중봉에서 바라본 산들.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흐릿한 동쪽을 바라보는데 시계방향으로 촛대봉, 춘천·소양호는 보이지 않지만 멀리 오봉산, 수덕산, 삼악산일 것이다. 뒤로 명지산, 국망봉, 백운산……. 여기 서 있으니 능선경관이 뛰어나고 사방으로 막힘없이 바라보인다.

수많은 산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장엄하면서도 넉넉한 어머니 산이다. 우리가 올라온 남서 골짜기는 관청리쪽 큰골계곡.

남동 오림골, 북으로 조무락골. 계곡마다 크고 작은 폭포가 있어 때가 덜 묻은 산이다. 몇 해 전 춘천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보내며 험상궂던 산, 오늘에야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이정표(화악리 건들내5.9·관청리5.5·애기봉3.6킬로미터) 두고 내려가는 길 따라간다.

12시 15분 쉬땅나무 이파리 커서 고개 숙이고 바라보는데 뒤에 오던 부부가 뭐라고 한다.
“손수건 떨어뜨렸죠?”
“……”
아차, 허리춤에 걸렸던 손수건이 없다.
“감사합니다.”
“인연이네요. 산에서 몇 번씩 만나니……”
“……”

몇 발자국 지나서 갈림길(애기봉3.4·적목리 가림5.5·정상0.2·관청리5킬로미터), 애기봉으로 진행하다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옷은 땀에 젖었는데 해까지 사라져 으스스 춥다. 양말을 벗으니 발이 퉁퉁 불었다.

이산은 숲이 우거져 마치 밀림의 세계, 멀리 시원하게 바라볼 수 없어서 아쉽다. 산당귀·어수리 하얀 꽃, 산조팝나무 꽃은 다 졌다. 오후 1시경 내리막길엔 신갈·당단풍나무가 우점종이다.

달걀버섯.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달걀버섯.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노란젖버섯류.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노란젖버섯류.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산조팝·철쭉·산목련·고광·노린재·미역줄·다릅·고로쇠·물박달·층층·신갈나무, 단풍취·며느리밥풀·산당귀,참취나물 검은 숲에 흰 꽃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갈림길(관청리3.6·중봉1.6킬로미터), 바로가면 애기봉, 하산 길 왼쪽으로 내려간다.

잠시 앉았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는 길 오후 1시 15분. 며칠 전 쏟아진 여름비에 버섯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피었지만 고기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부패된 버섯냄새다. 네로 황제에게 진상하면 똑같은 무게의 황금을 내렸다는 달걀버섯, 바로 옆에 무당버섯 같지만 노란젖버섯류.

군데군데 잣나무, 난티·딱총·다릅·피나무를 지나자 경사가 급해 힘든 내리막길 내려가느라 애를 먹는다.

다릅·산목련나무 오래된 어르신들, 키 큰 피나무는 하늘로 죽죽 뻗어 수형목(秀形木)이다. 바위와 돌이 굴러내려와 쌓인 석력지(石礫地). 이쪽으로 내려오면서 보니 화악산은 바위산(骨山)이 아니라 흙산(肉山)이다.

오후 1시 45분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지루한 내리막길로 간다. 경사가 급해 앞으로 체중이 쏠리다보니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오래도록 고개를 숙이고 발만 바라보며 내려왔으니 아플 만하다. 이 구간은 피로에 지친 사람들도 산도 어설퍼서 참 많이 미끄러지고 엎어졌다. 

오후 2시 계곡물소리 시원하게 들리는 곳에 잣나무 자생지다. 물 빠짐이 좋은 사양토, 양토의 적절한 분포, 토심이 깊고 일교차가 크며 가을철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다는 것 등 적합한 토질과 환경으로 가평 잣은 깊은 향과 맛을 내는 것으로 이름났다.

일제강점기부터 축령산 일대에 많이 심어서 “축령백림”이라 부른다. 잣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피부를 매끄럽게 하고 감기·설사·이질·변비, 혈압을 내리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송무백열(松茂栢悅), 잣나무의 품성이나 성격도 그렇다. 햇빛이 적게 드는 것을 좋아하는 음수(陰樹)인데 소나무가 무성하여 햇빛을 가려주면 살아가기 훨씬 편하다. 잣나무는 언제나 불평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의 의미도 “만족”이다.

영하 수십도 혹독한 추위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상록수다. 재질(材質)이 좋아 “노아의 방주(方舟)”가 잣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한국·일본·중국북동부·우수리 지역에만 자라므로 다른 나무일거라 여긴다. 

잣나무 숲.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잣나무 숲.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잎에 은빛이 돌고 추위에 줄기가 붉어 홍송(紅松), 백자목(柏子木), 해발표고 1천미터 이상의 높은 산에 잘 산다. 이파리가 다섯 개 뭉쳐나 오엽송(五葉松), 소나무는 두 개다.

씨앗에 날개가 있는 소나무에 비해 도토리처럼 잣을 먹는 까치나 다람쥐 등이 씨앗을 퍼트려준다.

까치 작(鵲), 까치가 좋아하는 나무라 작나무, 잣나무가 됐다. 소나무 과(科), 고유한 우리나라의 나무(학명 Pinus koraiensis Siebold & Zucc.)다.

피나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피나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조금 더 내려오니 피나무 고목은 어느 지역보다 생육상태도 좋고 하늘로 곧추서서 일직선이다. 피나무를 염주나무라 해서 절집에선 염주를 만들어 썼다. 10분쯤 내려서니 굴참·신갈·잣나무 군락지, 잣나무 두 팔로 감싸보니 한 아름 넘는다. 

“여기 나무들은 밤낮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자란다.”
“소리도 좋지만 시끄러워 어떻게 살아?”
……”
“그들에겐 자장가.”

화악산 계곡.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화악산 계곡.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밀림 속의 덩굴과 거미줄을 헤치고 내려오니 드디어 계곡(관청리2·중봉3·애기봉3.3킬로미터).

오염되지 않은 물.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염되지 않은 물.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맞은편 명지산.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맞은편 명지산.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후 2시 반, 요란한 물소리에 풍덩 소리도 묻혀버렸다.

계곡에서 한여름 낮의 피서, 이런 호사(豪奢)가 어디 있던가? 바위를 밟다 이끼에 미끄러져 하마터면 다칠 뻔 했다. 물이 넘쳐흐르는 계곡을 나오면서 건너편 바라보니 길게 뻗은 맞은편 산, 명지산이다.

오후 3시 10분 관청리 반야사 입구로 되돌아왔다.

햇볕이 강렬해서 차 문을 열어젖히니 뜨거운 열기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가평으로 30분쯤 달려 500명 넘게 전사한 한국전쟁 캐나다 전투기념비에 들렀다 오후 4시경 여름 해 늘어졌는데 잠잘 데 신통찮아 다시 춘천 팔호 광장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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