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재분배, 소득 격차의 완화, 양극화 축소 등에 대안적 접근 필요해

[트루스토리] 사민주의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개념이자 전통이 있는 개념이다. 독일의 사민당은 생긴 지가 벌서 150년이 되었다. 한 달 전에는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사민주의의 출발은 19세기 중반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독일과 영국, 그리고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 사민당이 시작되었다. 한 150년 전쯤 되겠다. 그때는 노동자들이 아직 조직되지도 않았고 힘이 약했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어 정치세력이라든가 왕정, 자본가연합에 대항해야했다. 그때 노동자의 조직이 만들어졌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던 노동자들은 공평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 불운한 사람들을 위한 연합이 생겼고, 연대의식에 따라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민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그때부터 사민당이 이어져오고 있긴 하지만 많은 변화를 겪기도 했다.
 
중요한 점이 있는데,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 더더욱 중요하리라 본다. 한국과 독일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반공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사민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분명하 차이가 있었다. 마르크스주의가 혁명적인 변화를 꾀했다면 사민주의는 개량주의적 방법을 통한 점진적 변화를 꾀했으며, 노동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했다. 사민당에서 변화를 이끌어나갈 때는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에게 더 많은 힘을 주고 여성들에게 더 평등한 기회를 주면 사회 안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낸다. 더불어 절대적으로 비폭력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초창기에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개혁이 추진되었고 19세기 말경에는 사민당이 더 많은 힘을 갖게 되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60~70년대에는 사민당이 많은 나라들에서 가장 힘있는 당이 되었다.
 
사민주의는 1959년을 기점으로 도약한다. 그 이후부터 새로운 그룹들이 사민당의 지지세력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노동자 중심의 당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전문가, 학자,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사민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60년대 이후에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 데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민주의의 절정은 아마도 60~70년대라고 볼 수 있다. 그 때는 유럽의 경제성장률이 아주 높았던 시기다. 그로 인해 사회적 합의도 가능했다. 그 당시에 사민당은 복지재정을 늘렸고,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경제를 통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제도로서 통제했던 시기였다. 이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갔다. 70~80년대에는 새로운 경향이 출현한다. 바로 신자유주의가 출현한다. 레이건과 대처를 중심으로 복지를 줄이고 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게 된다. 또 민영화와 규제 완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시기다. 이런 신자유주의의 부흥은 금융위기로 종말을 맞는 듯 보였다. 사민주의는 이에 대해 매우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때 출현한 것이 바로 제3의 길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영국에서 이 정책의 대부분이 만들어졌다. 물론 독일에서도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것을 받아들였다. 당시의 적록연정이 제3의 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편으로는 이것을 사민주의의 현대화라고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가치들을 사민주의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국제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사민주의가 받아들인 것이다. 첫 해에는 성장률이 상승했다. 하지만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이때가 아마도 2003~4년 즈음이었는데, 사민당에 위기가 도래한 시기였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사람들이 사민당이 추구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며 지지를 머뭇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지금도 여전히 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당 안에서는 이 위기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150년이 넘는 동안 사민주의 안에는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자유 정의 연대가 그것이다. 이것들 사이에는 우선순위가 없다. 자유 정의 연대는 함께 가야 한다. 그렇게 함께 갈 때에만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자유는 자유주의적 가치와도 맞물린다. 우선 정치적 자유를 들 수 있다. 개인이 정치적 자유를 갖는 것은 어쩌면 미국적 가치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또한 이 자유는 공권력에 의해 침해받지 않을 자유도 포함한다. 하지만 사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것은 정의와 맞물려 설명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있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 이는 공권력에도 마찬가지다. 공권력이 행사될 때는 정의롭고 공평해야 한다. 삶에서 자신이 바라는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한 사람, 또는 소수에게만 그런 기회가 제공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정의로워야 하고 모두에게 기회를 허락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남을 돕는 것, 내 가치를 다른 사람과도 공유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연대로 넘어가게 된다. 연대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융합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연대의 가치가 있을 때 그것이 사회민주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치가 바로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묶어주는 기본 가치다. 약자에게 도움을 주고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지 않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사회가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자를 돕는다는 기본 가치가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을 묶어주고 있다. 물론 둘이 항상 같은 의견을 내는 것도 아니고 같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사민당, 또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큰 조직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원화되고 있고, 다양성이 중시되고 있으며 개인주의적 경향이 더 커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주저한다. 어떤 조직에 속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은 엔지오나 지역기반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큰 조직에 속하거나 오랫동안 일하기보다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 삶의 일정 부분만을 할애하길 원한다. 이것이 지금 제가 판단하기로 사민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 문제 중 한다. 이런 일반적 문제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제3의 길 때문에 잃었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정당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다. 특히 사민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경향은 독일, 영국, 스웨덴 모두 다르지 않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민당들이 모여서 더 많은 토론을 하고 또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사민주의 안에서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위기를 거치면서 지난 10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토론이 있어왔다. 유럽의 많은 사민당들이 실권을 한 직후였다.
 
먼저 금융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2008~9년 무렵이었다. 사민당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를 회복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산업 자원들을 조금 더 생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한 국가 차원이 아니라 유럽과 세계적 수준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시장과 국가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국가는 시장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래서 이 부분도 재정립되어야 한다.
 
유럽 사민당들의 고민 중 하나는 유럽의 부채 위기를 잘 극복하는 일이다. 유럽연합의 사민당들은 어떤 식으로 개혁을 진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지금까지는 경제 중심으로 유럽연합의 통합이 진행돼왔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깊고 끈끈한 통합이 이루어지도록 사회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또 은행과 금융규제를 조금 더 탄탄하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몇 국가들에만 허락된 것처럼 보였던 사회안전망을 유럽연합 전체의 국가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사민당들의 과제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왕도는 없다. 조직적 문제도 해결해야 되고 실용적 관점에서도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도 하다. 그래서 이 정책 안에 있는 신자유주의의 가치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이나 어떤 하나의 해결책을 들고 온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가령, 세금정책을 마련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사민당에서 중요하고 생각하고 있는 지점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사민당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설득력있는 담론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우리의 근본적 과제다. 그래서 나온 말이 Good society, 좋은 사회 담론이다.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21세기의 좋은 사회는 구성원들이 어떤 것을 누리는 사회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모두가 자기 삶에서 바라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 나라 차원의 논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나아가 국제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자원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이 한정된 자원 안에서 국제적 논의가 이뤄질 때에만 지구촌 안의 모든 나라와 시민이 함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대안적 접근이 필요하다. 부의 재분배, 소득 격차의 완화, 양극화 축소, 성장의 재정의,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의 담론을 만드는 것, 지속가능성, 그리고 삶의 질의 문제, 분배를 통해 가난을 줄여나가는 것 등 이런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사실 사민당은 전략적으로 실패한 면이 있는데 노동조합과의 결합이 약화된 것이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사민당 안에서도 전략적 실패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를 모색하며 힘을 쏟고 있다. 동시에 노조 자체가 유럽 안에서 힘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에 사민당은 노조가 아닌 다른 새로운 파트너도 찾아야 한다. 이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크리스토퍼 폴만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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