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 그롤라베어와 카푸치노베어 등장

미국 알래스카주 카크토빅의 이누이트 족이 사는 마을 외곽에서 어린 북극곰 한 마리가 좁은 길을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북극곰들이 카크토빅으로 서식지를 돌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안치용 ESG연구소장 】 북극에 인접한 사람 사는 동네에 북극곰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식이다. 북극곰이 북극지역에서 목격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오히려 점점 더 북극에서 먼 곳에서 목격되고 있다는 게 더 걱정이다.

BBC보도에 따르면 2019년 2월 북극해에 위치한 러시아의 '노바야 제믈랴' 섬의 행정 중심지에 무려 52마리의 북극곰이 떼로 나타나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고 한다.

북극곰이 자신의 서식지를 떠나 인간이 사는 공간에 침입하게 된 원인이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세계자연기금(WWF)은 기후변화로 빙하면적이 줄어들면서 먹이 활동이 힘들어진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육지로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가 북극곰의 생활 터전을 훼손하고 이는 북극 일대 인간의 주거환경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탐사팀이 2014년 미국 알래스카 주 카크토빅에서 찍은 영상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민가로 내려온 북극곰의 모습을 볼수 있다.

카크토빅은 미국 알래스카 주 북쪽 해안에 있으며 겨울에는 영하 50도시까지 떨어지는 알래스카에서 매우 추운 지역 중 한곳이다.

북극권 미국 국립 야생보호구역내에 위치한 카크토빅 마을에는 250여명의 이누이트 족이 산다. 이들은 고래를 사냥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가죽과 지방을 분리한 후 뼈 등 남은 것을 해변에 버린다. 버려진 고래 잔해를 먹기 위해 북극곰이 마을에 내려온다고 주민들은 증언했다.

이 시점에서 8년을 거슬러 올라가 2006년 캐나다에서 인간에게 사냥당해 죽은 곰이 보통의 북극곰과 생김새가 달라 연구대상이 된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곰이 2006년에 처음 발견된 종이며 캐나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위치한 생명과학 회사 WGI에서 죽은 곰은 DNA를 검사한 결과 암컷 북극곰과 수컷 회색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곰이었다고 전했다.

캐나나 정부 산하 환경부의 야생동물 부서에서 일하는 연구원 이언 스털링은 새롭게 발견된 혼혈곰에게 북극곰을 뜻하는 폴라(polar)와 회색곰을 뜻하는 그리즐리(grizzly)를 혼합해 그롤라베어(Grolar Bear)라고 이름을 붙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롤라베어는 북국곰과 회색곰 양쪽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롤라베어의 털은 전반적으로 북극곰과 같은 흰색 털이지만 다리 등에서 회색 털이 섞여 있었다. 몸의 털 모양이 이처럼 라떼에 계피가루를 뿌린 카푸치노와 닮았다고 해서 카푸치노 베어라고도 한다.

몸의 형태와 덩치는 북극곰과 더 유사하지만 얼굴 생김새는 회색곰을 닮았다.

그롤라베어가 발견됐을 때 미국 FWS(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의 알래스카 해양포유류 관리 책임자는 새로운 혼혈곰의 발견이 흥미로운 사건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롤라베어와 같은 새로운 혼혈종의 출현이 지구온난화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고 결론짓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었다.

DNA를 검사한 WGI 또한 어떤 것도 성급히 결론 지을 수 없으며 이러한 이종교배가 일회성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일어날 것인지는 앞으로 더 추적해야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다시 2014년으로 돌아와 이때 내셔널지오그래픽 탐사팀이 카크토빅의 고래 뼈 더미에 접근한 목적은 그롤라베어의 등장이 FWC와 WGI의 반응과 달리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롤라베어 발견 이후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의 서식지 이동과 이종교배 사례가 종종 관측됐다. 2010년에는 수컷 북극곰과 암컷 회색곰의 교배종인 피즐리 베어가 발견됐다.

같은 해 미국 NMML(국립해양 포유류 연구소) 소속의 브랜든 켈리 연구팀은 과학잡지 네이처에 기후변화로 생태계가 파괴됨에 따라 북극 해양포유류 34개종이 이종가능한 교배가 가능한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켈리 연구팀 또한 그롤라베어가 처음 발견된 2006년에는 그롤라베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극에서 탄생한 이종교배종을 연구하면서 기후변화와 이종교배 사이의 연관성이 크다고 확신하게 됐다.

켈리는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서식지의 벽이 허물어져 이례적인 종 간 교배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것은 생태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와 이종교배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들이 등장하고 기후변화로 북극곰과 회색곰 서식지의 변화가 빨라지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탐사팀은 알래스카 지역에서 그롤라베어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원정을 기획했다.

탐사팀은 현지인들을 수소문하여 북극곰와 회색곰이 동시에 마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생김새의 곰을 보았다는 증언을 확보해 추적한 결과 고래뼈 더미를 찾아 마을에 내려온 그롤라베어를 포착했다.

그롤라베어가 2006년에 단순히 일회성으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한 생물 종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북극곰은 북극지역의 북쪽에 회색곰은 북극지역의 남쪽에 살았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북극곰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전통적인 서식지 구분에 변화가 생겼다.

NOAA(미국국립해양대기청)이 발표한 ‘북극성적표 2021’에 따르면 북극은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두배 이상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극 빙하의 감소는 기후변화의 가장 상징적인 지표다.1985년과 비교했을 때 2021년 북극의 해빙 면적은 440만㎢에서 129만㎢로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얼음의 두께가 계속해서 얇아지고 있다.

NOAA는 미국 NSIDC(국립빙설자료센터)의 자료를 인용해 북극 해빙 범위가 10년에 평균 13.2%씩 감소하고 있고 보고했다. 빙하의 넓이가 줄고 두께가 얇아지면서 북극의 해양 생태계는 크나큰 위협에 직면했다.

북극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에서 취약 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북극곰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해빙의 손실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얼음이 줄고 해빙의 감소로 먹이를 사냥하기 어려워지자 북극곰이 먹이를 찾아 인간이 거주한 육지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북극 일대는 육지가 없는 바다여서 만일 바닷물이 얼어 해빙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북극곰은 그곳에서 살수 없다.

북극곰이 헤엄을 잘치기는 하지만 어류가 아닌 포유류여서 부분적으로 육지의 기능을 수행해주는 얼음이 없이는 살아갈 수 가 없다.

가정해서 북극곰이 북극이 아닌 남극 즉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대륙에 살고 있었다면 지구온난화로부터 받은 타격이 덜 했으리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북극곰의 영어표기 폴라베어는 북극과 남극 모두를 뜻하고 흰곰 또는 백곰이라고도 하니 이름만으로도 남극이나 다른 곳에서 살아도 무방하지만 북극곰은 북극에서만 살고 있다. 혹은 동물원...

그롤라베어는 북극곰의 남하와 맞물려 회색곰의 북상이 일어나며 탄생한다. 북극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남쪽에 살던 회색곰은 온도가 상승하자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결국 북극곰과 회색금은 일부 영토를 공유하게 됐으며 교집합 지역에서 두 종이 만나 짝짓기를 하여 그롤라베어가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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