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11시, 천축산을 향해 출발이다.

저 멀리 산들은 이국의 풍경으로 겹겹이 서 있는데 지금부터 흙으로 된 임도길이다.

길을 만든다고 비탈면을 깎아내렸는데 소나무 뿌리는 드러나 있고 흙들도 많이 쓸려가 복구가 필요한 곳이다.

11시 15분, 참나무 겨우살이를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갈림길(골안교0.8·탐방안내소3.5킬로미터).

머뭇거리다 공원관리차량이 다가오는데 탐방안내소 쪽으로 가라고 해서 우리는 골안교 방향을 두고 왼쪽으로 걷는다.

여기서 천축산 까지 6킬로미터로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임도길 내려다보면서 방국장님 말을 새기며 걷는데 능선의 나무계단 길 갔다가 다시 내려와 걷는다. 

11시 30분, 미녀들이 각선미를 뽐내며 숲속에 모두 누워 있다.

하늘보고 늘씬하게 다리를 뻗었으니 미인세상이다. 

“소나무 참 잘 생겼다.”

“땅바닥에 잔잔한 것이 뭐야?”

“쇠물푸레.”

수백 년 묵은 소나무들마다 세월의 연륜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껍데기는 거북등 같이, 어떤 것은 바람무늬로 생긴 듯 여러 가지다.

아래는 둥굴레, 피나물, 삽주, 알록제비꽃……. 등산리본을 찾아 걷는데 나뭇가지는 배낭을 붙잡고 늘어진다.

모자에, 얼굴에 거미줄이 자꾸 걸리고 수첩에 기록하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니 참 바쁘다.

20분 더 지나서 전망 좋은 곳. 아름드리 소나무 옆으로 바람이 얼마나 불었으면 패널로 지은 감시초소가 옆으로 날아갔다. 

정오 무렵부터 밀림지대인데 위층은 소나무, 아래층은 쇠물푸레나무가 자란다.

산길을 표시한 리본을 찾아가면서 산벚·피나무를 지나 한참 만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밥·열무김치·옻순 장아찌로 감식을 했다.

12시 40분에 다시 걸어 전주이씨 무덤을 지나 고사리, 삽주, 활짝 핀 철쭉꽃을 보며 오후 1시 왼쪽으로 하산길인데, 우리는 천축산 정상을 찾아 계속 앞으로 간다.

이산의 숲에 깔린 솔잎 위로 삽주가 많다.

멧돼지가 온 산을 다 파헤쳐놨는데 뿌리를 파먹었을 것이다.

멧돼지가 뒤진 데는 원추리, 둥굴레가 잘 산다. 

삽주.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삽주.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노랑무늬붓꽃.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노랑무늬붓꽃.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삽주는 건조한 산에 잘 자란다. 굵고 긴 마디의 뿌리줄기는 향내가 난다.

곧게 선 줄기에 어긋나게 달린 잎은 윤기 나고 뒷면은 흰빛, 가장자리 톱니와 잎자루가 있다.

여름에 흰 꽃이 핀다.

어린순은 나물로, 뿌리줄기를 창출(蒼朮), 소화불량·위장병·감기·비만 등에 썼고 신선이 되는 약이라 했다. 

1시 반, 노랑무늬붓꽃을 만난다.

귀티 나는 고운 야생화를 한참 바라보니 마음도 귀해지고 가라앉는다.

하얀 꽃은 마치 옥양목 소맷자락처럼 하늘거린다.

오대산, 대관령, 태백산, 강원·경북지역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 여러해살이식물로 그늘지고 비옥한 곳을 좋아한다.

젖혀진 꽃잎의 흰 바탕 안쪽에 노란 줄무늬가 있다.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아서 붓꽃, 환경부 보호야생식물로 1974년 오대산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학명도 오대산(odaesanensis)이다.

북바위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북바위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아쉬운 노랑무늬붓꽃을 뒤로하고 북바위봉이다.

멀리 우리들이 걸어온 길이 아스라이 보이는데 전망 좋은 곳이다.

산 아래 절집 이름이 서쪽산 부처형상 바위가 절 앞의 연못에 비치므로 불영사라고 했는데 바로 이곳이리라.

날이 더워 땀은 줄줄 흐르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땀 냄새도 많이 난다.

쇠물푸레나무 흰 꽃은 이른 시기인지 드문드문 폈다.

1시 40분경 내려가는 길인 줄 알고 잠시 왼쪽으로 갔다 다시 올라왔다.

산 아래 구불구불한 36번국도 사랑바위 근처에 비틀비틀 차들이 지나간다.

36번 도로 준공기념탑.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36번 도로 준공기념탑.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1968년 울진삼척무장공비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내륙에서 동해안으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도로가 없었다.

결국 토벌작전에 차질을 빚었고 희생자도 많았다.

1982년 대통령 지시로 보령·울진 36번국도 마지막 구간(울진·현동 54킬로미터)을 1984년 10월까지 2년 넘게 연인원 50만명 동원, 230억원을 들여 완공하였는데, 경부고속도로 공사비가 429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형공사였다.

협곡을 따라 워낙 험준한 지형이라 야전공병단을 투입, 젊은 군인들 10여명이 희생됐다.

예술성이 결여된 준공기념탑은 당시의 권위주의가 첨탑만큼이나 하늘로 치솟았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콘크리트로 만든 불영정(佛影亭) 근처 도로변에 있다.  

천축산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천축산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강정제(强精制)로 눈이 밝아진다는 석이버섯이 절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오후 2시 10분에 드디어 천축산(天竺山 653미터) 정상이다.

불그스름한 돌무더기를 쌓아둔 곳에  페인트 글씨로 천축산이라 썼다.

세련되지 못한 표지가 오히려 때 묻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와 금강송면 왕피·하원리의 경계지점이다.

금강송면은 이 지역에 금강소나무가 많아 2015년에 행정구역 서면(西面)이 바뀐 이름이다. 

송진 채취 상처투성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송진 채취 상처투성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송진 채취 상처투성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송진 채취 상처투성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멀리 동해바다와 망양정 있는 곳은 흐릿하고 불영사는 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굽은 도로는 하원리 쪽.

통신안테나 탑을 뒤로하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10여분 내려서니 소나무들마다 송진을 빼낸 상처투성이 흔적들이다.

마치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들이 노려보는 듯 상처는 흉측하다.

멀쩡한 나무들은 없고 아직도 아물지 않아 진물이 난다. 

1941년경 미국은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공 군수물자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석유수출을 금지시킨다.

부족한 연료 대체수단으로 일제는 우리나라 소나무 송진을 수탈해갔다.

송진을 정제한 송유(松油)라 불리는 테레빈유는 항공기 연료로, 로진은 화공용으로 썼다.

송진을 송지(松脂)라고도 하는데 에탄올 등에 녹여 수증기를 증류하여 테레빈유를 얻고 남는 것이 로진(rosin)이다.

나무에 상처를 내서 송진을 받는데 해진 곳에 황산을 뿌리면 더 많은 양을 뺄 수 있었다.

테레빈유는 연고제, 도료, 구두약, 고무나 방수제로, 로진은 비누, 건조제, 화장품원료, 살충제, 잉크, 반창고, 약품첨가물 등에 쓸 수 있었다. 

앞서 가던 친구는 송이풀이 많이 나와 송이버섯 많이 날 거라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며느리밥풀 꽃이다.

내려가면서 우산나물을 고깔나물이라 한다.

비슷한 삿갓나물과 혼돈해서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7~9개의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 끝이 다시 브이 자로 갈라지는 것이 우산나물, 독초인 삿갓나물은 잎이 6~8개로 돌려나고 우산나물에 비해 깊게 패였다.

우산나물은 국화과, 삿갓나물은 백합과이다. 

불영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불영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3시 15분, 계곡에서 발 씻고 돌을 건너 하원리 전치 버스승강장이다.

햇살 뜨거운 아스팔트 길 너머 방국장님 차가 또 기다리고 있다.

오늘 산행 6시간 걸렸다.

어릴 적 공부방에 걸린 짐을 진 사람들이 천축산 오르는 페넌트(pennant, 가늘고 긴 삼각기) 그림을 보고 이산에 오고 싶었는데 35년 지나 소원을 이룬 셈이다.

3시 45분 불영정 도로 옆에서 칡즙 한 잔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천축산은 신라 진덕여왕시절 의상대사가 서북쪽을 보니 인도의 천축(하늘 천 天, 대나무 축 竺)산과 비슷하여 이름 지었다.

불영사 연못의 아홉 마리 용을 쫓아내고 절을 지어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뒷산 서쪽 바위그림자가 부처모양으로 못에 비치므로 불영사(佛影寺)라고 불렀다.

선조 때 격암 남사고 선생이 여기서 도를 닦았고 한말 의병들이 훈련하던 곳이다.

불영사 대웅전은 여러 번 불타서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돌 거북을 만들어 기단을 받쳐 놓았다.

거북과 해태는 수신(水神)으로 물의 상징이다. 광화문 앞 해태상과 같은 이치다.

계곡의 시냇물이 굽이쳐 흐르는 것이 금강산 장안사보다 낫고 아름다운 풍경은 유점사보다 고와서 천축산 계곡일대를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차를 타고 다시 왕피천 에코투어 사업단 사무실까지 왔다.

“차 한 잔 하시고 가요?”

“안됩니다. 오늘 폐를 많이 끼쳤는데……”

“……”
“안녕히 계십시오.”

미안해서 차에 올라타며 바쁘게 인사하고 차를 몰았다.

창문 열고 구불구불한 36번 도로를 달리니 훨씬 시원하다. 

“……”

“왕피천 에코투어 사업단 보다 ‘왕피천 생태탐방 사업단’이 낫지 않나?”

“영어가 우리나라에서 나날이 진화하고 있으니 영어권 국가에선 좋아할 거야. 수자원공사가 케이워터, 한국가스공사 코가스, 철도공사도 코레일, 고속철도는 케이티엑스, 토지주택공사도 엘 에이치, 도로공사는 이 엑스……”

“또 있어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에이 티, 한국전력은 케이프코, 농협도 엔 에이치다.”

“……”

“이 참에 우리도 영어이름으로 바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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