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조사에서 크게 밀려… 다음 선거에서 노동당에 정권 내줄 판
보수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 너무 높아
에너지 위기, 물가 폭등 속에서 "부자 감세는 납득 못해"

【뉴스퀘스트=김형근 기자】 리즈 트러스 총리가 이끄는 영국 새 정부의 경제정책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고, 경제 신뢰도가 망가졌다.

트러스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한 감세안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이 불과 몇일 만에 현실로 나타나면서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무너졌고 대외 신뢰도는 더욱 추락했다.

겨울을 앞둔 영국의 에너지 위기에 대한 우려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영국 전역 50여 개 도시에서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와 쿼지 콰텡 재무무부 장관이 보수당 연례회의 참가해 나란히 하고 있다.
보수당 연례회의 참가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오른쪽)와 쿼지 콰텡 재무무부 장관이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여론조사 노동당에 크게 밀리고, 시위도 점점 격화돼

또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노동당에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시위에는 환경과 사회단체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단체도 참여했다. 이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는 치솟는 가스 요금과 전기 요금으로 인한 생활고에 대해 해결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에 앞서 미국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레이 달리오는 영국 금융 시장 불안을 야기한 리즈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이 무능함을 시사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영국 감세안 등의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는 무능함을 시사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3일(이하 현지시간) AP 통신 등은 영국 정부가 결국 금융시장의 혼란을 촉발하고 파운드화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린 재원 없는 감세 계획의 일환으로 최고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하 계획을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쿼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은 집권 보수당 연례 총회 이틀째인 이날 연간 15만 파운드(16만7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한 최고세율 45% 철폐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올렸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정책으로 정부가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한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지 열흘 만의 일이다.

정부의 유턴이 있은 후 이날 파운드화는 1.13달러에 거래되었다. 이는 23일 정부가 부자 감세 정책을 발표했을 때보다 약간 웃도는 수치이다.

부자 감세 정책 패키지는 심지어 보수당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수백만 명이 치솟는 에너지 요금으로 인한 생계비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상위 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은행원의 상여금 상한선을 폐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45% 세율 폐지만으로는 안돼… 보수당의 정책 전면 쇄신 필요

이처럼 정부의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전직 장관들을 포함해 많은 보수당 의원들이 정부의 세금 계획에 대한 강력한 반대가 자리하고 있다.

마리아 콜필드(Maria Caulfield) 토리당 의원은 "간호사들이 청구서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45% 세금 철폐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콰텡 장관은 "기업 지원과 저소득층 세부담 감면 등 우리의 성장 계획은 더 번영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었다"면서도 "45% 세율 폐지는 영국이 당면한 도전에 대처하는 우리의 최우선 임무에서 방해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트위터에 콰텡 장관의 성명을 공유하면서 "이제 우리의 초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 서비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국가 전역에 기회를 창출하는 고성장경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러한 반발은 영국 중부 도시 버밍엄에서 열리고 있는 보수당 연례 회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많은 의원들은 2010년 이후 집권한 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또한 에너지 정책 등 최근 정부의 여러가지 실책으로 제1 야당인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당의 재정 정책 담당인 레이철 리브 의원은 정부의 혼선으로 "영국 경제 신뢰도가 망가졌다"며 "믿을 수 없는 낙수 효과에 기대는 전체 경제 정책을 뒤집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연금생활자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항의해 시위하고 잇다.
영국의 연금생활자들이 치솟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항의해 시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국에서 45%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 구간은 성인 인구의 1%가량인 50만명에게만 해당하지만, 이들이 워낙 고소득층이라 세입 규모는 60억파운드(약 9조6천억원)에 달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로 줄어드는 세수는 영국 정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450억파운드(약 72조원)규모의 감세안 중 20억파운드(약 3조원) 안팎을 차지한다.

“안정성이 없으면 어떤 성장계획도 작동하지 않아”

영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50년만의 최대 규모 감세를 추진하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로 인해 부족해지는 세수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나서 미국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달 26일 사상 최저를 찍었고, 영국 국채 금리도 급등하는 등 금융 시장에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무라 홀딩스의 통화 전략 담당 책임자인 조던 로체스터(Jordan Rochester)는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를 포기한 것은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라며 "큰 줄기는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최고세율 감세 철회만으로는 파운드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기업을 대표하는 영국산업연맹(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을 이끌고 있는 토니 단커 (Tony Danker)는 정부의 유턴 정책이 시장에 안정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안정성이 없으면 (정부의) 성장 계획 중 어떤 것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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