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정상을 향하는 능선길. 

【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억새는 벼과(科)다. 참억새, 물억새 등 아시아, 아프리카, 열대에서 온대까지 십여 종 분포한다. 하지만 아직도 새로 발견되는 종류가 많다.

주로 산에 살지만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가 있기도 하다.

바닷가, 강가에 자라는 갈대, 계곡의 염분이 없는 물가에 달뿌리풀. 이들은 정화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억새는 은색, 갈대는 갈색, 억새와 갈대는 산에 같이 살았지만 냇가로 간 갈대가 돌아오지 않자 억세게 기다리다 억새가 됐다.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 방언이다.

천관산 연대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천관산 연대봉. 

오후 3시30분 연대봉 해발 723m(환희대1・달봉헬기장0.6・탑산사1.6・불영봉1.5・양근암1・장천재-3.2km)에 닿는다.

정상은 “아이스깨끼”를 외치는 사람들과 등산객이 어울려 북새통이다.

원래 옥정봉(玉井峰)인데 이 산에서 최고 높은 봉우리다.

고려 때 봉화대를 설치, 통신수단으로 이용해서 봉수봉 또는 연대봉이라 불렀다.

삼면이 다도해다. 완도가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 팔영산, 도양읍・소록도, 두륜산은 오른쪽 방향이다. 영암 월출산, 담양 추월산, 맑은 날엔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

이 산의 끝자락은 바다로 곧장 뛰어 들었다.

발밑으로 다도해, 황금들녘, 방조제, 섬, 집들, 연륙교, 저수지 멀리 구름, 푸른산, 한 폭의 가을 풍경화를 보는 듯.

키 작은 신갈나무, 진달래, 조릿대……. 사방으로 탁 트여 풍광은 절경인데 겨울철엔 바람이 세차 으스스한 폭풍의 언덕, 억새 윙윙 우는 바람의 산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사진 찍으려 줄서서 기다린다.

“비켜.”

“……”

모두 웃는다.

“죄송합니다.”

표지석 찍으려 렌즈를 맞추는데 친구는 비켜주질 않는다. 

“다 찍었어.”

“그까짓 바위 하나 뭐 중요하다고…….”

“……”

내려가는 길에 신갈나무는 바닷바람에 시달려 떨어지고 이 계절에 새잎이 또 나왔다. 길섶으로 구절초・벌개미취・팥배나무…….

멀리 구정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멀리 구정봉이 보인다. 
가을 역광의 실루엣.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가을 역광의 실루엣. 

내려가며 왼쪽을 바라보니 구정봉 바위는 성벽처럼 우뚝 섰다.

가을햇살은 등뒤에서 계속 따라오며 산 아래로 나를 밀어낸다.

억새, 하얀 구절초를 바라보다 이내 정원암에 오후 4시.

팥배나무 열매는 한껏 농염한 자태로 어느새 빨갛게 단장했다.

양근암(陽根岩)아래 팻말이 재밌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누구더러 어떡하라고. 장흥군.”

“……”

“오죽했으면 이러겠어.”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억새와 구정봉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멀리 다도해가 내려다 보인다.

건너편 중턱 금강굴이 양근암과 마주보고 있으니 절묘한 음양의 조화를 느껴본다.

사람주나무 이파리도 붉은 색깔을 칠해놓았다.

길옆의 푸른 동그라미들 히어리나무 군락.

분홍색 각시며느리밥풀꽃, 쇠물푸레・신갈・진달래・사스레피나무. 키 작은 소나무, 남쪽이라 그런지 신갈나무는 낮은 곳에 자란다. 

산에 오를 땐 햇살을 잘 살펴서 올라야 이산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환희대로 먼저 잘 돌았다.

안 그랬으면 역광 때문에 분위기 덜 했을 터.

산길을 안내하는 숲길등산지도사들은 기본적인 숲길안내 뿐 아니라 자연의 여건, 지형의 성격까지 잘 헤아려야 쾌적하고 안전한 요구에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4시20분 내리막길 긴 계단 사스레피나무 숲을 내려가는데 붉나무・리기다소나무・조릿대 뒤섞여 서로 힘자랑 한다. 거의 다 내려오니 말오줌대.

붉은 열매를 잔뜩 달았고 반짝이는 이파리는 아주 두텁다. 

4시 반에 장천재 삼거리 갈림길(정안사1.2・효자송0.5km) 지나 편백나무 숲길 조금 걸어 주차장으로 되돌아왔다.

모처럼 멀리 왔으니 잠시 정안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정안사(正安祠)는 장흥임씨(長興任氏) 시조・공신의 위패를 봉안한 곳. 고려시대 장흥군은 정안현으로 영암군 소속이었는데, 공예태후(恭睿太后)의 탄생지라 오래도록 흥하라는 뜻에서 장흥부(長興府)로 승격시켰다.

공예태후는 장흥 관산 옥당리 당동에서 임원후의 딸로 태어나 인종왕비, 의종 때 왕태후가 되어 정중부・이의방・이의민 등 무인 난세에 정치력을 발휘하여 고려귀족가문의 발판을 굳혔다.

의종・명종・신종 세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정안사는 1998년 종친에서 세웠다.

정안사에서 올려다보니 천관산이 신비스럽게 보인다.

안개와 구름이 드리워져 흐릿한데 천관보살이 손짓하는 듯하다.

이산에 천관보살이 산다니 하늘빛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태후도 천관의 기운을 받아 여자로서 무신(武臣)들을 물리치고 왕위를 보전한 것 아닌가?

주변의 하얀 은목서 꽃은 퀴퀴한 냄새를 내뿜어 상서로움을 지우고 있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 기생 천관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하루는 술 취한 자신을 천관의 집으로 태우고 간 말을 죽이고 무예를 닦아 통일을 이룬다.

장군은 서라벌에 숨어살던 천관을 찾았지만 자기는 천관보살 화신으로 큰일 할 사람임을 알고 시험했다며 거절한다.

김유신이 같이 가자고 고집을 부려 천관이 주문을 외자 백마가 와서 태우고 사라졌다.

뒤를 쫓았지만 이곳 천관산에 와서 놓치고 말았다. 

천관산은 1998년 도립공원이 되어 지리·월출·내장·변산과 호남5대 명산으로, 수십 개 봉우리가 천자(天子)의 면류관을 닮아 천관산(天冠山)인데 천풍산(天風山)·지제산(支提山)으로도 불린다.

신라 때부터 천관보살의 터로 천관・옥룡・탑산사 등 수십 개의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송광사 말사로 천관사만 남았다.  

오후 5시, 장흥위씨(윤조)가 땡볕에 밭일하던 어머니 휴식을 위해 심었다는 옥당리 효자송(孝子松)을 뒤로하고 영화촬영지 시골길을 지나는데 축사에서 나는 냄새가 진동한다. 

소 한 마리는 사람 11명, 돼지는 2명분의 분뇨를 배출한다.

국내 사육 소 3000만 마리는 사람 3300만 명, 돼지 1000만 마리는 2000만 명분에 해당한다.

5000만명이 살지만 실제 1억 명 사는 국토는 과도한 환경부하와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싱그러운 농촌에 분뇨로 가득한 축산공화국의 들녘, 붉은 저녁하늘 바라보며 칠량면 가우도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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