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
 
어릴 적 부르던 ‘돌과 물’이란 동요입니다. 저는 바윗돌이 돌덩이가 되고, 돌덩이가 돌멩이가, 돌멩이가 자갈돌이, 자갈돌이 모래알이 되는 과정을 노래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내성천에 갔다 오기 전까지는요.
 
모래가 흐르는 강, 내성천. 이 아름다운 강을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저는 간신히 그 모래를 밟고 왔지만, 나보다 늦게 태어난 이들은 아름다운 모래강의 흔적조차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아름다운 내성천의 모습보다 내성천이 망가지고 있는 생채기를 눈에 가득 담아왔습니다. 강의 아름다움보다는 상처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초여름이지만 푹푹 찌는 날씨가 예고된 주말, 지천의 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한 영양의 장파천과 영주의 내성천으로 향하는 진보신당 녹색위 모래강 버스를 탔습니다. 당원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함께 버스를 탄 사람들 중에서도 진보신당 당원이 아닌 분들 몇몇이 눈에 띄어 반갑기도 했지만,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놓였습니다.
 
'모래강 버스' 장파천과 내성천으로 출발

세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산과 강을 건너 도착한 경북 영양군 송하리 마을은 입구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영양댐 건설을 반대하는 깃발이 나부끼는 마을 입구를 지나 ‘장파천 문화제’라는 펼침막이 걸린 학교 운동장에 버스를 대고 내렸습니다. 그리고 곧장 장파천을 만나러 마을 주민들과 해설사 분을 따라갔지요.
 
한눈에 봐도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세수를 하려다가, “마셔도 된다”는 마을주민분의 말에 손바닥만큼 뜬 물을 입에 적시니 물이 참 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마시는 민물입니다. 약수터의 물도 아니고, 수도관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아닌, 그냥 ‘흐르는 물’입니다.
 
마을로 돌아가 매해 열린다는 장파천 문화제가 열리는 현장에 합류해서 장승과 솟대를 마을 가운데쯤 되는 길목으로 옮겼습니다. 영양댐으로 인해 수몰된 위기에 처한 송하리 마을 사람들과 댐을 막아내려는 마을 밖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장승과 솟대를 세웠습니다.
 
경상도 양반 특유의 꼿꼿함이 드러나는 장승제를 지내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솟대에 오색줄을 꼬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막걸리와 음식, 노래가 함께하는 문화제가 이어졌습니다. 노래가사를 영양댐과 부패한 영양군수를 반대하는 내용의 가사로 바꿔부르는 대회가 있었는데 얼마 전, 군청 공무원들과 시비가 붙어 사기가 조금 떨어진 마을 분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장파천 문화제, 댐 막아내려는 마음과 마음 모아 솟대 세우다

마을회관에서 하룻밤을 쉬고, 점심으로 주먹밥을 준비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안동과 예천 사이를 흐르는 내성천을 찾았습니다. 처음 밟아본 모래강의 바닥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도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습니다. 햇빛이 반짝반짝 사금같이 강물에 비치고, 모래알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종아리를 간지릅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서 강을 건너는 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도중에 보이는 강변의 풍경들은 그야말로 살풍경들이었습니다. 원래는 울창했을 나무숲이 석축으로 변했습니다. 물이 넘칠까 쌓아뒀다는 돌들 사이에 드문드문 숨구멍만 겨우 내밀고 있는 나무들이 안쓰러웠습니다. 내성천 주변에도 송전탑이 많이 보였습니다. 거미줄 같은 송전탑! 작은 벌레가 그물에 걸리듯 거대한 전깃줄에도 사람들의 목숨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 무서움을 모르고, 계속해서 허공에 전깃줄을 치려고 합니다.
 
햇살 부서지는 맑은 강물 이제는 볼 수 없다

망가지기 시작한 강의 모래사장은 점차 습지화 된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모래대신 뻘밭이 생겼으니, 햇살 부서지는 맑은 강은 이제 볼 수 없게 되겠지요. 댐은 물길 뿐만 아니라 기찻길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상상도 못할 금액을 들여 지은 새 기찻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모래사장에는 물 마시러 오는 동물 발자국 대신 강을 할퀴러 온 자동차 바퀴자국이 깊게 패였습니다. 그 건너편에는 무너지는 산이 있습니다. 소리 없이 울면서 무너지고 있는 산이 거기 있었습니다.
 
모래강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원래 한강도 모래강이었다’는 박용훈 작가님의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모래강의 아름다움은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라고, 강은 콘크리트 대야에 담긴 물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들에게 마실 물을 주고 더운 여름날 더위를 잊게 해주기 위한, 생명들의 삶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콘크리트 댐이 내성천의 모래를 다 사라지게 하기 전에, 한 번 더 모래를 밟고 싶습니다.
 
글=홍주리 출판노동자
사진제공=생태사진가 박용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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