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명 공무원의 절전투쟁

지난 12~14일, 3일 간은 100만 명 가까운 공무원들이 처절한 ‘절전 투쟁’을 벌였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전기절약 솔선수범 차원에서 청사 냉방을 껐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중시하여 외벽을 유리로 마감하고 창문도 아주 작게 낸 최신 청사들, 즉 관악구, 용산구, 금천구, 용인시, 서울시, 세종시 청사 등은 35도 안팎의 찜통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공무원들은 부채, 선풍기, 물수건, 얼린 생수, 얼음 팩과 얼음 조끼 등 온갖 고전, 최신 도구들을 동원하여 그야말로 영웅적으로 절전 투쟁을 벌였겠지만, 솔직히 35도 안팎의 바람도 통하지 않는 찜통 청사에서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12일부터 3일 간은 대한민국 정부가 소리 없이 마비되고,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더위와 정책에 무자비하게 폭행 당한 날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위! 주적으로 부상하다

7~8월의 찜통더위와 처절한 ‘절전 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가 깨우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추위와 더불어 더위가 사람의 건강과 생산 활동을 위협하는 심각한 주적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럽이나 한반도에서 더위는 추위와 같은 반열의 위협 요소가 아니었다. 단적으로 영국,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에서 에어컨은 가정과 자동차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그런데 해마다 기록을 깨는 이상고온과 전력 공급의 한계, (한국 대도시가 유달리 심한) 자연 통풍 개념을 무시한 건축과 바람 길을 고려하지 않는 도시계획 등이 엎친 데 덮치면서 더위가 사람을 잡는 수준까지 와 버렸다. 기후.환경의 변화와 에너지 혹은 물 공급의 한계가 만나면 물질적 문화적 생활양식 전반이 변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외관(디자인)만 유독 중시하여, 유리로 외벽을 마감한 최신 고층 건물(서울시청사, 세종시청사)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싼 전기 공급이 원활 하지 않으면 거대한 유리 온실로 변하기 때문이다.
 
둘째, 전기요금 체계와 전력 생산.공급 체계의 구조적 모순이 드러났다.

단위 열량당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전기의 원료에 해당하는 석유, 가스, 석탄 보다 최종 생산물이자 청정에너지인 전기가 훨씬 싼 ‘황당 현실’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수장으로 끌어온 강물보다, 복잡한 정수 과정 거친 수돗물이 더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합리한 요금 체계가 주는 기회는 가정 보다는 공장, 농장, 상가가 더 빨리, 더 많이 이용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의 경우 사용량이 증가하면 요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누진요금체계(최대11.7배)를 적용받지만, 애초부터 가격이 낮게 책정된 산업용은 사용량에 비례하는 요금체계를 적용받는다. 중앙일보 보도(2013년 8월22)에 따르면 누진제를 활용하는 나라들이 있지만 통상 누진 단계는 3단계, 가격 차는 1.5배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은 3단계에 1.4배, 미국은 2단계에 1.1배다.
 
당연히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가가치도 적고 고용효과도 적은 석유화학, 비철금속 산업 등을 이상 비대 시켜 전력대란을 가속화 시킨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와 절전 캠페인은 전체 전력 사용량의 20% 내외(최근에는 15%)를 차지하는 가정이 절약을 주도하고, 이익은 부유한 대기업과 그 임직원들이 누리고, 천문학적 적자와 (원전 가동으로 인한) 위험은 가난한 다수 국민이 부담하는 어이없는 현실을 연출했다.
 
셋째 대한민국의 미래를 쥐고 있는 정치와 행정(관료)의 능력이다. 한마디로 환경변화에 대한 저열한 예측, 대처 능력이다. 전력대란의 뿌리는 전기요금이 시장원리도 반영하지 못하고,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는 ‘수준 높은 정치적 고려’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정치권이 ‘수준 높은 정치적 고려’를 공급하지 못한 것이 핵심원인이다. 그 결과 중장기 에너지 공급 전략을 수립하고, 전기요금을 책정해 온 행정 관료들은 힘 있는 소수, 즉 원전마피아와 전기 대량소비처(대기업)의 이해와 요구에 편향돼 왔다.

전력사용량 폭증과 원전 증설의 어려움은 몇 년 전부터 예측됐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과 근본대책을 외면해 왔다. 단적으로 지난 3월25일 산업통상자원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는 “전력수급계획상 확정된 원전은 예정대로 건설(현재 23기 → ‘24년 34기)한다”고 보고했다.

전기요금 관련해서는 “(전력) 발전경쟁 확대를 위해 공정한 경쟁 기반이 마련되도록 전력거래제도를 개선한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한국의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이 발전회사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면 정상화 될까. 

무엇보다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한 이상, 또 각종 비용이 과소 계상되어 분식된(너무 저렴하게 평가된) 원자력 원가가 확인된 이상, 2024년까지 11기의 원전이 차질 없이 건설 될 수 있을까. 게다가 밀양 송전탑 공사가 난항을 겪는 것을 보면, 장거리 고압 송전로 확보도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최근들어 전력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너무 싼 전기요금과 불합리한 요금 체계도 손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세제개편안을 원점 재검토시킨 ‘세금 폭탄론’ ‘세금체계 선 개편론’ ‘대기업 먼저 부담론’ ‘산업위축.경기침체론’ ‘절차(사회적 합의)론’ 등은 향후 나올 요금체계 개편안도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전기요금 인상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한전과 발전회사 임직원들이 누리는 처우(신의 직장)에 대한 공분도 요금체계 합리화론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런 상식적인 의문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질책을 했다거나 근본대책 마련을 주문했다는 얘기는 없다. 야당 역시 앞으로 해마다 반복될 전력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청문회를 주문했다는 얘기는 없다. 진짜 생산적인 청문회를 주도하여 책임 있는 대안세력임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저열한 응전 능력

넷째, 그런 점에서 전력대란은 우리 사회의 너무나 저열한 적응.변신 능력, 특히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한국 전기요금체계와 전력생산공급 체계의 모순은 2000년대 들어 심화됐다. 

단적으로 석유, 가스, 석탄 가격은 국제시장 가격과 환율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2000년대 들어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원가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책정된 전기요금과의 격차가 점점 커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2000년대 중 후반 들어 전력 사용량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 이유다. 한국 전기요금은 외환위기 전의 환율과 금리처럼, 지금의 의료수가, 택시요금, 수돗물 가격처럼 시장 가격과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책정되다 보니, 예외 없이 엄청난 시장왜곡, 자원 낭비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원전과 고압송전선로의 위험과 숨겨진 비용에 대한 발견도 상식의 약진에 다름이 아니다. 과거처럼 분식하거나 덮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전력대란은 충분히 예견 되었지만 정치권과 관료가 일종의 폭탄돌리기로 넘기다가 작은 폭발을 일으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행히 폭탄은 크게 터진 것은 아니다. 2011년 9월15일 1415만 가구를 덮친 순환대정전은 그 맛배기라고 할 수 있다.
 
가만히 보면 한국사회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저 출산 대란, 부동산.전세 대란, 사교육 대란, 고학력 실업 대란 등 모든 대란들의 뿌리와 구조는 거의 같다. 경직된 공적 통제.규제와 급변한 시장의 충돌을 무능한 정치가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폭발했다는 점에서.
 
선진국은 작은 사건이나 징후로부터 큰 교훈과 구조적, 제도적 변화를 끌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터진 대란을 겪고도, (을사조약에 대해서도 을사5적이나 성토하듯이) 몇몇 책임자나 찾아서 성토하고, 선거에 잠깐 이용하고 묻어버린다.
 
100여년 전이나, 분단과 전쟁을 초래한 6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짜 원흉인 ‘단견에다가 파당의 이익만 쫓는 정치시스템’에는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이기 이전에 시민이자 유권자인 100만 명이 공무원이기 이전에 시민이자 유권자인 100만 명이 유리 찜통에서 진정으로 반성하고, 증오해야 할 것은 바로 국가경영 경륜(실력)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양당 독과점 정치 시스템이 아닐까.

그 다음으로 화를 내야 할 대상은 정치의 무능을 기화로 이익집단 편향적 규제와 땜질식 정책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에너지 효율 개념과 담쌓은 유리 온실을 건축한 100만 공무원 자신이 아닐까.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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