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사범. “좌익사범(左翼事犯)은 좌익에 관련된 사상인 아나키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따르거나 전파하는 국가 전복 세력을 의미한다. 또는 단순히 전파만 하는 것도 해당한다. … 요즘 좌익사범은 일반적인 사회주의 계열 사상보다는 주사파를 의미하기도 한다.(출처 : 위키백과, 네이버)”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좌익사범은 국가정보원에 신고하라’는 익숙한 안내방송이 나왔다. 포상금도 있다(간첩선을 신고하면 최대 7억5천만 원까지 준단다). 늘 들어왔던 좌익사범.

아나키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들 사상을 신봉하여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좌익사범이라 부르는 것인데,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는 대한민국에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이들 사상을 신봉하였다는 이유로 좌익사범으로 분류되었다면 우익사범도 있을 것 같은데...

우익사범. “제목이 ‘우익사범’인 문서를 새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아래 검색 결과 내에서 비슷한 내용을 다룬 문서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출처 : 위키백과, 네이버)”

백과사전에 우익사범에 대한 정의는 없는 모양이다. 만들어 보자.

우익. “우익 정치사상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의 특징을 지니며, 현대에서는 반공주의와 개발주의, 시장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출처 : 두산백과, 네이버)”

그렇다면,

우익사범 : “우익사범(右翼事犯)은 우익에 관련된 사상인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반공주의, 개발주의, 시장주의를 따르거나 전파하는 국가 전복 세력을 의미한다. 또는 단순히 전파만 하는 것도 해당한다. … 요즘 우익사범은 일반적인 민족주의 계열 사상보다는 꼴통보수, 수구를 의미하기도 한다.(출처 : 절대적이지도 상대적이지도 않은 백과사전)”

이 정도를 우익사범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두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내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인데, 5.16 쿠데타, 12.12쿠데타가 그것이다.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에 의한 내란, 성공한 쿠데타. 전자는 처벌받지 않았고, 후자는 매우 미흡한 정도로만 처벌받았다. 그런데 이들을 보니, 국가 전복 세력이었지만 좌익사범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익사범이군.

다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좌익사범의 내란이라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몇 건 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좌익사범에 의한 내란 행위는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밝혀진 진실이다.

그런데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 중 유독 좌익사범만 신고하도록 하고 거액의 포상금을 지급하면서까지 처벌하려는 것은 국가를 전복하는데 성공한 것이 우익사범이었기 때문일까?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은 좌익인지, 우익인지를 불문하고 찾아내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만 잘못 생각하고 있나?

최근 국가정보원에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좌익사범들을 색출한 모양이다.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과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이 그것이고, 이들이 내란을 음모했다는 거다.

그런데 국정원이 입수하였다는 녹취록이라는 것의 내용을 보면,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는 몽상토크인지 한심하기만 하다.

한편,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예산을 먹어치우는 국정원이 설마 이 정도 증거 따위로 내란 어쩌구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뒤에 뭔가 큰 게 있겠거니 생각했다. 정말이다. 며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 다인가 보다. 물론 녹취록에 대해선 그 진위 여부가 다퉈지고 있다(뭐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래도 상관없지만).

3년을 내사했다고 한다. 또 문제의 발언이 있었다는 5월12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한 8월29일까지는 무려 3개월이 넘는 기간이다. 3년의 내사 기간과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검토해서 내 놓은 결론이 고작 “내란음모”. 한심하다. 그 많은 예산 중 매달 50만원만 줘도 석 달 동안의 기본 자문시간이면 내란음모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변호사의 법률자문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 국정원은 그 동안 법률 검토를 한 게 아니라 정세 검토를 한 게다.

사이버 내란. “사이버 내란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국토 참절,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행위를 말한다.(출처 : 절대적이지도 상대적이지도 않은 백과사전)”

국정원은 심리전단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서 온라인상에서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렵고 무시무시해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내용의 댓글, 게시글을 작성하고, 찬반클릭을 하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대통령선거에 개입하여 대선결과를 조작해 냈다. 지역감정을 유도해 남남 갈등을 조장했다. 그 규모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정원 정직원 외에 일반인 세포 조직을 두고 공작금도 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총선 및 대선 기간 동안 벌인 이들의 사이버 폭동은 능히 사이버 내란이라 할 만하다.

사이버 내란은 오프라인 활동으로도 이어져 정상회담 대화록인 소위 NLL대화록을 불법으로 새누리당에 유출하였고, 김무성, 권영세 등은 이를 대통령선거에 이용한 것(혹은 김무성, 권영세로 하여금 이를 대통령선거에 이용하도록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국정조사 현장에 끌려 나가 거짓말을 해야 하고, 법정에 불려 나가 판.검사로부터 모욕을 당해야 하며, 2) 종내는 조직이 해체될지 모를 암담한 상황, 더 나아가 촛불들이 대통령 하야, 대통령 퇴진까지 외치는 상황에서 국정원은, 추석을 기점으로 한 국정원 대 개입이라는 전국적인 여론 확산을 방지하고자,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하려 했던 국가보안법 카드를 조금 더 과대 포장해 내란음모로 발표한 것이다. 느낌 아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느낌이 70년대에 머문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점.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 표현의 자유도 보장한다. 국가 전복 세력은 좌익과 우익을 가리지 않는다(경험칙상 우익사범이 더 위험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좌익사범이든 우익사범이든 국가 전복 세력이라면 끝까지 찾아내 그 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 대통령이나 집권당이 아닌 국민을 주군으로 모시는 정보기관이 필요하다.

상황이 엄중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이미 실행된 내란행위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 사건을 내란음모라 자신 있게 선언했고, 이로써 대한민국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그 선언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국에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는 뻔 한 의도는 이미 읽혔다. 국정원은 공개수사로 전환할 만큼 자신 있는 모양이니 이제 검찰로 수사를 넘기고 법원의 재판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되지도 않는 피의사실 공표로 더 이상 대한국민을 기만하지 마라.

그리고 기다려라, 국민의 엄정한 처분을.

위대영 변호사 (인권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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