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은 오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 역사학자 한홍구의 글이다(2004년). 그가 만나본 전직 간첩들을 보니 만들어진 간첩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힘 줘서 말했다. 오히려 간첩이 두려운 게 아니라, 간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두렵다고.

자. 이제 지금의 한국사회를 무섭게 몰아치는 ‘내란음모사건’을 보자. 33년 만에 다시 세상에 공포의 얼굴을 내밀었다. 근데 발표 내용이나 과정을 보면 의심스러운게 한 둘이 아니다.

130여명이 모여 내란 모의를 일으켰다는 합정동 M 종교시설. 마리스타교육관이다. 본인도 거기에 1박 2일, 당일씩 해서 십여 차례 다녀왔던 공개 대관장소이다. 주말이면 두 세 팀이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이런 대중공간에서 일요일에 모여 국가 전복과 국가시설 파괴를 기도했다고? 거기에 부모와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리고 일부 분임 토의 녹취록으로다가 내란 모의라고? 

어쩜 이리도 타이밍이 절묘할까.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청와대와 국정원, 33년 만에 내란음모라는 대형사건을 터트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란음모 죄목이 달라진다. 말 그대로 해묵은 국가보안법으로는 약하니 국면전환용으로 우선 찔러놓고 보자는 심보다. 영장실질검사에서 검찰이 공개한 증거자료가 녹취록 발언과 참고인 진술서가 전부라는 것이 지금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구체성 없는 녹취록과 금전지원을 받은 참고인 진술로 국정원 대선개입 물타기가 성공한 셈이 되어버렸다.       

또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의 내란음모 조작 타이밍과도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가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겨우 승리한 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사건이 터졌고, 공안정국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무죄로 판결되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도 마찬가지. 전두환 12.12 군사쿠데타 이후 공안정국 전환용으로 희생양이 필요했었다. 역시 훗날 모두 무죄였다.    

이쯤에서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내란죄 처형자였던 최능진 선생을 얘기해보자. 일제 시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숭실전문대 체육과 교수를 하게 된다. 이후 안창호 선생과 함께 활동하면서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2년 여간 복역한다. 해방 후 일제부역자들이 경찰 간부가 되는 것을 보고, 이들을 처리하고자 그도 경찰 간부가 되었으나, 오히려 그가 쫓겨났다. 이후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펼치면서 5.10 단독선거 때 동대문에 출마해 이승만과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이승만의 방해공작으로 선거등록이 무효화되고, 단일후보로 이승만이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 해 10월 선생은 내란음모죄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자유의 몸이 되어 ‘즉시 정전, 평화통일운동’을 펼친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선생은 이승만의 지시로 일제부역자 출신 김창룡에 의해 체포되고 이듬해 총살형에 처해진다. “정치사상은 혈족인 민족을 초월해 있을 수 없다.” 주장하던 독립운동가 최능진 선생이 일제부역자 김창룡에 의해 죽게 되는 대한민국의 반쪽짜리 역사에는 늘 이렇게 ‘내란죄, 이적죄’들이 등장했었다.
 
이번 내란음모죄 사건에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안관계자가 인정했듯이 내부 협력자에게 돈을 준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함께 갑자기 외국으로 사라져버렸다. 또한 RO라는 혁명조직의 구체적인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3년 동안 수사했다고 하지만, 답변으로 나온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 조중동을 포함한 보수언론에서만 계속해서 OOO가 연락 총책이다 등의 설만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것 또한 공안기관과 언론의 긴밀한 협조 속에 펼쳐지는 공작일 뿐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죄로 잡힌 것이 아니다. 다만 만들어졌을 뿐이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진영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통합진보당을 향한 시선은 곱지 못했다. 작년 경선과 분당 사태, 그리고 조직운영 과정에서 보여준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미운 시선만을 보낼 때는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국면전환용으로 내란음모죄가 33년 만에 거대하게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국가권력은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촛불을 내란음모 동조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보수 언론과 집단들은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고 있다. 촛불문화제에 나온 시민들을 종북세력이라 한다. 어제 참여연대 창립기념식 행사장 앞에서는 이석기 동조세력 참여연대를 해체하라는 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심지어 권은희 전 수사과장에게 편지를 쓴 청소년들을 이석기 키즈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야권연대를 비방하면서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이 책임을 져야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작금의 심각한 현실을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태로만은 볼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 상식 대 비상식, 자유 대 구속의 현실로 봐야 한다. 국정원 대선개입 저항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박래군 선생이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하는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 대책위> 결성은 반가운 일이다. 과거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말이 절실히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이현정 /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부장

이 글은 시민단체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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