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천호영 기자 = 서울시 19개 자치구가 양육보조금이 바닥이 났다고 토로하면서 예견된 바 있는 9월 보육대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8월31일을 기점으로 서울시의 무상보육 관련 예산이 소진됐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며 정치권의 협조를 요구했으나 국정 정상화가 불투명한데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여당과 지자체의 입장이 팽팽한 상황이다. 급기야 지난 5일 서울시는 2000억원의 지방채 발행을 단행했다. 말 그대로 서울시가 임시방편으로 빚을 지면서 ‘보육대란’을 피한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새누리당은 지난 달 23일 박원순 시장이 버스에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한 것을 두고 ‘선거법 위반’이라며 선관위에 고발했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눈앞에 닥친 무상보육 재정 위기에 대한 대책을 앞장서 세워야 할 정부여당이 서울시의 호소를 ‘선거행위’로 여겨 시비만 건 셈이다. 새누리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5일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서울시의 지방채 발행을 두고도 ‘정치쇼’라며 맹비난하기 바빴다. 그러나 서울시의 요구를 ‘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 핵심이 ‘정부여당이 약속한 바를 이행하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13일 열린 ‘중앙부처 및 시도지사 대표 간담회’에서 이명박 정부는 “영유아보육 사업에 지방비 부담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3년 1월 전국시도지 간담회에서 당선인 자격으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올 6월 복지부는 지자체에 현실적인 국고지원비 조정이 없는 추경예산편성계획을 담은 동의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며 ‘국비지원을 확대할 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뿐만 아니라 무상보육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영유아보육비의 국비지원 비율을 50%에서 70%로, 서울은 20%에서 40%로 상향조정할 것을 골자로 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 상임위를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했지만, 이마저도 새누리당의 반대로 10개월 째 계류 중이다. 그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는 이 개정안의 국고보조율을 10%씩 내려 60%, 서울 30%로 조정하자며 ‘흥정’에 나섰다. 개정안 처리를 질질 끌던 정부여당이 뒤늦게야 보조율을 낮추는 방안을 꺼내드니 이미 빚을 낸 서울시나 지자체 입장에서 황당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기획하는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책임부담의 비중은 응당 중앙정부가 더 많이 져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분담은 5 대 5, 서울시의 경우 정부가 2, 서울시가 8로 지자체의 부담률이 높다. 게다가 정부는 이미 책정해놓은 무상보육 예산안마저 ‘추경편성에 무상보육과 관련한 분담 몫을 반영할 것’을 집행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에 서울시는 박 정부의 지자체 떠넘기기 식 복지예산 분담을 재조정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0-5세 무상보육’은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이었다. 이미 2012년 3월 0~2세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서울시는 한 차례 무상보육 재정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따라서 0~5세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놓을 때는 충분한 사전 조사와 재정확보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예견된 무상보육 재정난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올해 3월 무상보육 정책을 전면 시행했다. 결국 시행 6개월 만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이 현실화했으나, 정부는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면서 사실상 방기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책임방기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정책의 지속가능성이 훼손되는 것은 이 정부가 보육에 대한 철학과 책임의식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영유아보육법 개정안 즉각 통과 △보육공공성 확충 방안 마련 △국공립어린이집과 보육시설 공공관리체계 확충 △보육정책 재원확보 방안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행하지 않는 공약은 결국 대국민 사기와 다름 아니다. 시행 6개월 동안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재원확충방안은 미비했고,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계류됐다. 한마디로 정부여당은 무상보육 정책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정책을 이행시키려는 서울시의 노력을 ‘선거용 정치쇼’로 몰아붙일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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