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외압으로 물러가는 채동욱 총장

[트루스토리] 채동욱 검찰총장이 오늘 사의를 밝혔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채 총장에 대한 감찰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다. 이번 사의와 관련, 조선일보가 제기한 혼외자녀 의혹이 지금 법무부장관이 공개적으로 감찰을 지시할 만한 사안인가 의문부터 든다. 그리고 감찰대상이 될 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공개적 감찰 지시를 전격적으로 내린 것은 국정원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차에, 이 사안을 기회삼아 청와대의 의중을 잘 따르는 검찰총장으로 교체하려 한 것으로 의심된다.
 
채 총장이 청와대의 눈 밖에 난 것의 결정적 이유는,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서 법무부와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국정원법 위반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정창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공소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불법행위 사실들마저 더 공개하고 있는 게 청와대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채동욱 총장 흔들기는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흔들기다. 이번 혼외자식 의혹을 조선일보가 보도하게 된 배후에는 국정원이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집권세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물러나서는 안 된다. 물러나야 할 사람은 검찰을 다시 말 잘 듣는 권력의 시녀로 만들고 싶어 하는 황교안 장관과 그 배후의 사람들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지금까지의 태도에서 돌변해 집권층의 의중을 따져 국정원 사건의 공소유지를 소홀히 하거나 수사가 끝나지 않은 추가 범행에 대한 수사를 접어서는 결코 안 된다. 오늘의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이 집권층의 눈치를 보는 굴욕의 검찰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시험대에 올라서 있음을 검찰 구성원들이 명심해야 한다.
 
몇 명의 목숨이 더 필요한가
 
지난 9일 부산 금정구에서 신부전증으로 인해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오던 기초생활수급자 50대 남성이 큰 딸의 취직으로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자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이 남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본인 부담 입원비를 부답하지 않았으나, 수급에서 탈락하면서 일반 건강보험 대상자로 적용되어, 한 달에 100만원 정도의 병원비를 부담하게 되었다. 이에 병원비를 부담하게 될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핵심 요인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침에서 정한 부양 능력있는 부양의무자만 있으면 실제 부양을 받지 않고 있어도 실무상 수급자에서 제외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양산되고 있다. 또한 이번 사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현실적인 부양능력 기준으로 인해, 미약한 부양능력을 가진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의무를 지울 수 없어, 수급권자 스스로 수급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부양의무자도 수급자도 모두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며, 빈곤의 책임을 그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117만 명(2010년 기준)에 달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빈곤의 책임을 국가가 아닌 가족에게 떠넘기고, 많은 빈곤층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있다. 실제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가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의 수급권을 위해 자살, 2010년 12월 노부부 동반 자살, 2011년 7월 청주시설에서 생활하던 노인이 자녀의 소득으로 인해 수급 탈락 통보를 받고 투신, 2011년 11월 왕래 없는 자녀의 소득이 드러나 수급탈락 된 70대 노인 자살, 2012년 8월 경남 거제시청 화단에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비관한 70대 노인의 음독자살 등 모두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것이다.
 
행정 편의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사회복지 통합 관리망은 기계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빈곤층의 일부를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수급자와 부양의무자 두 가구 소득의 합이 각각 가구의 최저생계비의 130%(일부 185%)가 넘을 경우에는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법령에서 정한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실제 부양행위를 하지 않을 경우, 기초보장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에서 제외하는 불법적인 제도운영을 하고 있다. 또한 부양의무자의 소득의 일부를 수급자에게 ‘부양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즉 수급자 소득으로 ’간주‘하는 간주부양비로 인해서 수급권을 제외하거나, 수급액을 삭감하고 있다.
 
지난 10일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맞춤형 급여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하고 이를 통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현재 83만 가구에서 최대 110만 가구로 약 30%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빈곤층 하나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서, 일부 확대된 수급자 규모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생색내기는 무의미하다. 또한 이번 발표에서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는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의 안전망 없이 방치된 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급자 선정과정에서 비현실적인 부양의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 즉 부양의무자 규정은 보장비용 징수 요건으로만 활용하고 수급권자 선정조건에서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법 개정 이전에도 실제로 부양받지 못하는 수급권자에 대하여는 급여를 실시하고 부양능력 있는 부양의무자에 대한 보장비용을 징수해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 117만 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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