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발언 왜곡 사태 및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통해 본 한국정치의 현실

정치세력들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한국의 정치지형은 구조적으로 공정하지 않다. 이는 그 지형이 보수세력에는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민주진보진세력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의 지형은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할 수 있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위쪽을 점하고 있는 보수세력은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민주진보세력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경기에 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운동장의 기울기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 2년이 흐른 2013년의 지금에도 운동장의 기울기는 여전히 수평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치지형은 서구나 미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선 서구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제적 냉전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좌우의 극단적인 정당들을 주변화시키면서 주로 중도우파 정당과 중도좌파 정당이 경쟁하는 정치지형을 만들어 왔다. 미국의 경우에는 보수 정당인 공화당과 더불어 서구의 중도좌파 정당을 대신하는 리버럴 정당인 민주당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미국의 민주당이 리버럴 정당이라 하여 한국의 민주진보세력처럼 불리한 여건의 정치지형에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한국의 정치지형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될 만큼 공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원은 해방 이후 남북이 좌우 갈등 속에서 분단되고 상대방을 절멸시키려 했던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겪은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남한에서는 강력한 반공세력이 등장했고, 그것을 정당화 해주었던 반공주의가 구축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지속되었던 남북 적대의 분단상황은 남한에서 반공세력의 일방적인 지배를 가능케 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물론 분단과 전쟁의 경험 그리고 남북 분단상황은 북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그것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남북이 공유했던 이러한 상호 적대의 분단상황은 남한 내부의 정치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반공을 내세운 권위주의체제의 등장인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졌던 권위주의체제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1987년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로 인해 정당정치가 정상화되었음에 불구하고 그리고 그 직후 국제적인 탈냉전이 이루어졌음에 불구하고, 국내의 정치지형은 여전히 분단상황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세력은 자주 안보를 내세워 정치적 경쟁자인 민주진보세력을 탄압하거나 약 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남북 적대의 분단상황에서 보수세력이 안보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치적 경쟁세력을 탄압하거나 약화시키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안보의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안보정치’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사회의 각 부분을 대표하는 정치세력들에 의한 민주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는 어렵다. 반공세력 또는 보수세력이 이러한 안보정치를 이용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 하거나 약화시키려 할 때 정상적인 정치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보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를 발휘하여 공정한 정치 경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안보정치가 차기 정권을 선출하는 대통령선거에서 작동하게 될 때, 그것은 공정한 대선 경쟁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북방한계선 발언 왜곡사태 (이하 NLL 발언 왜곡사태)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대선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적 갈등은 바로 이 같은 안보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당시 그리고 대선 이후에 전개되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의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와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안보정치의 한 양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안보 문제는 당파적 이해를 뛰어넘는 국가적 아젠다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와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는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국정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것도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왜곡하는 한편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NLL 발언 왜곡 사태의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었던 이 같은 안보정치는 어떤 특징을 보여주고 있나.

첫째는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자의적인 요소가 적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행사되었던 막강한 대통령 권력의 잔재가 남아 있는 가운데, 지금도 국민 선출의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그 모든 권한을 위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위임민주주의적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통령이 그 동안 우리 정치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를 발휘해 왔던 안보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게 될 때 그것은 권위주의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는다.

첫째 왜곡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동원하여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의 정상적인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것은 그런 과정에서 새누리당에서 강경파의 목소리만을 강화시키는 한편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정원의 영향력 증대라는 후자는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국정원을 정치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셋째 이상의 요소들은 그 모든 것을 자신만의 의지대로 국정을 수행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수직적 리더십과 결합하여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권위주의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새누리당 강경파와 국정원이 그 중심이 되는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치가 보여주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의회정치의 약화이다. 우리 정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 관계는 양자가 공히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수평적이지 않았다.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지위가 우월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여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는 전통과 관행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론 지지도에서도 국회는 대통령에 비해 거의 언제나 낮은 수준의 지지를 받을 뿐이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안보정치를 통해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을 추구할 때 국회는 더욱 약화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에 의해 무력화되었던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국정조사는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견제 수단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국회의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고 여기에 국정원이 동원되어 사태의 전면에 나섰을 때 국회의 국정조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부 임기 첫 해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는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무력화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대선 패배 이후 야당은 그 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내부의 계파 갈등 속에서 매우 약화된 처지에 있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야기된 국정조사의 무력화와 이에 따른 의회정치의 약화는 시민사회의 항의시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6월 말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촛불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새누리당에 의해 국정조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민주당 역시 장외투쟁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치에 따른 권위주의적 국정운영과 의회정치의 약화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을 통해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개혁의 진전과 더불어 이제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과제에 직면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2012년 작년의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을 지배했던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복지의 의제는 바로 그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리 민주주의의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때, 박근혜 캠프와 박근혜 정부는 안보정치의 과거 유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고 우리의 민주주의는 퇴행 중이다.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위 글은 ‘2013 한국 민주주의 위기 진단과 재(再)민주화를 위한 모색’이란 주제로 최근 열린 심포지움에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의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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