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2007년 10월 4일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한 날이다. 벌서 6년이 되었다. 10·4남북정상회담은 국민들로 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10·4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국민 반응이 67%(sbs)에서 80%(민주평통)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2000년 6·15공동선언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대장전이었다면, 10·4정상선언은 남북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이정표이고 설계도였다. 총 8개항으로 구성된 10·4선언의 핵심은 남북의 균형발전과 번영을 위해 다양한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에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을 설치하여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고 경제특구를 건설하며, 경의선 철도 연결, 안변과 남포의 조선협력단지 건설, 광물자원개발 등 구체적 경제협력을 포괄하고 있다. 남북경협이 개성공단을 넘어 사실상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는 내용이었다.
 
또한 해주 인근 등 북한의 민감한 군사력 집중지역이 개성지역처럼 경제협력지대로 전환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한이 경제협력을 위해 그들 표현대로 ‘통 큰’ 양보를 한 셈이었다. 만일 남북이 10·4선언을 지속 발전시켰다면 지금쯤 한반도는 사실상 공동경제권으로 부상하였을 게 분명하다.
 
6년 사이 북방경제 꿈 사라져
 

얼마 전 새누리당의 김을동 의원은 국회입법조사처의 자료를 인용해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가 6조7000억 달러(한화 7000조 원)로 추산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의 지하자원 가치의 22배에 달한다.

세계적인 자원전쟁시대에 남북한의 자원과 기술과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는 남북경제권의 형성은 한국경제의 블루오션(경쟁 없는 새로운 시장)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 경제권의 형성은 곧 지속적인 평화 공존의 밑바탕이 될 것임은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가 보여준다. 군사적 대치와 이념의 차이에도 중국과 대만은 2000년 이후 꾸준하고 다양한 경제협력을 통해 지난해만 800만 명이 오가고, 교역액이 170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양국 전자업계에선 ‘중국과 대만이 손을 잡고 한국을 뛰어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구상했던 ‘북방경제’의 큰 그림은 그렇게 10·4선언으로 탄생했었다. 그런데 6년 사이에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가리키던 이정표는 흙탕물에 잠기고, 설계도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북방경제의 꿈은 사라지고 30조 원 가까이 강물에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이 벌어졌다. 북한의 자원도 야금야금 중국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남북 집권세력 정권 안보만 집착
 
이 시각에도 남북 간에 오가는 날선 언어들은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에 걸쳐 어렵게 쌓았던 상호 신뢰의 토대가 바닥까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비전과 철학, 전략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정권 안보와 정치적 이해타산만이 남북집권세력을 감싸고 있다.
 
남북 간의 신뢰만 무너진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나누었던 정상대화록이 집권여당에 의해 대통령 선거전에 왜곡 악용되더니, 국가정보기관이 백주에 유인물처럼 뿌려버린 상상할 수 없는 일마저 벌어졌다. 권력이 남북관계를 정략에 이용하고 남남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젠 유물이 되어 박물관 창고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던 공안통치와 안보정치가 재현되고 있다. 종북몰이라는 한국판 메카시즘이 보수라는 탈을 쓰고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 없인 민주주의 위태
 
지난 6년은 민주주의와 남북관계가 불가분한 함수임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사와 남북 관계역사가 보여주듯 민주주의 발전 없이는 남북관계의 발전도, 한반도 평화의 진전도 어렵다는 사실을 지난 6년의 남북관계가 증거하고 있다.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물은 결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인용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진보 없이 대화 없고, 보수 없이 균형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때론 좌우양측의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지만 남북관계를 대하는 실사구시적 자세였다.
 
먹구름만 잔뜩 낀 한반도 상황에서 10·4정상선언 6주년을 맞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품었던 북방경제의 비전과 설계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할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고난의 행군을 벗어나야 할 북한을 위해서도, 남북한 모두가 한걸음씩 물러나 ‘10·4선언’의 정신과 약속으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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