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민영화가 전력 대란을 불렀다

지난 여름, 각종 미디어에는 매일 같이 전력대란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관공서, 공공기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범정부 차원의 무리한 절전 캠페인에 볼멘소리도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전력공급 불안정의 주요한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 10여 년 동안 추진되어 온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하던 졸속적 전력 민영화 정책은 세계적으로 드러난 전력 민영화 정책의 폐해가 드러나고, 국내적으로 반대 여론에 부딪히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잠정 중단되었다. 하지만 전력 민영화는 대기업들의 민자발전소 사업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으로 대기업의 민자 발전회사의 설비 용량은 5개 발전공기업 설비 용량 대비 2001년 6.6%에서 2012년 19.3%까지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신규로 건설되는 화력발전 총 15,800MW 중 74%를 SK, 삼성, 동양, 동부, GS, 대우건설, SK, 현대 등 국내 재벌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어 민자발전소를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발전설비가 부족해 공기업 발전회사 뿐만 아니라 민자 발전소도 참여시켜 전력공급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2001년 전력산업 민영화 이전에 발전설비 예비율은 15%안팎을 꾸준히 유지해 전력공급에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민자 발전소의 진입 이후 설비 예비율은 전력수급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해서 2011년에는 3.9%까지 떨어졌다. 또한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로 이원화된 전력수급 체계로 통합적인 계통운영이 무너지면서 2011년 9월15일 대규모 정전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공급 예비율이 떨어진 것은 발전소 건설이나 운영을 약속했던 민자 발전소들이 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제3차 수급계획 (2010년~2013년 건설예정 발전소) 중 민간이 계획했던 민간발전설비의 82%(5,650MW중 4,650MW)가 취소 또는 6개월 이상 지연되었다. 민간 발전회사들은 이윤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할 때는, 국민이야 어떻게 되든 마음대로 사업을 중단하거나 지연한다.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의 몫이며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얘기는, 전력난 속에서 민간 발전회사가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전이 각 발전사들로부터 구매하는 전기 가격은 같은 시간대에 공급되는 전력 중에 가장 비싼 원료로 생산된 전력의 가격(계통한계가격, SMP)이다.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피크 시간대에 생산원가가 높은 벙커C유 발전소를 가동해 전력을 생산하면, 같은 시간대에 가동된 LNG발전소도 같은 가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2012년 8월에는 늘어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원료 값이 가장 비싼 디젤발전기까지 가동되자, 전력의 시장가격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전공기업의 경우 ‘보정계수’를 적용하여 이윤을 한전으로 회수하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민간 기업들은 최대가격으로 책정한 이익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실례로 2011년 공기업 자회사인 화력발전 5개사는 한전에 kWh당 92.5원으로 판매한데 비해 민자 발전회사들은 134.7원에 판매했다. 전력이 부족해 전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는 동안 민간발전소는 짭짤한 고수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민자 발전회사는 8%의 설비용량으로 6000억 원의 순이익을 가져갔으나, 발전설비의 각 10%를 차지하는 화력발전 공기업의 순이익은 고작 2900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한국전력은 6조600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고 이 적자는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되어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기요금 국민부담으로 재벌에게 특혜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정부가 택하는 가장 쉬운 대책이 바로 전기 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동안 네 차례나 전기료를 인상하여 총 인상비율이 19.6%에 이른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경우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산업용이다. 전체 전기사용량의 55.3%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의 90%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된다. 기업에만 전기를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를 권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최근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전력을 아끼는 만큼 정부가 기업에 돈을 주는 절전지원금 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지난해만 4천억 원)

재벌 대기업들은 민자 발전소를 통해 고수익을 올리고, 원가보다 싼 가격에 산업용 전력을 마음껏 공급받아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전기를 절약하면 또 절약하는 만큼 지원금을 받아먹고 있다. 이중 삼중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부담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전가되고, 한국전력의 적자를 구실로 저소득 노인층, 빈곤층의 겨울철 난방마저 단전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곤 한다. 

세계적으로 전력을 민영화한 국가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브라질은 한때 풍부한 강물을 이용한 수력 발전 때문에 싸고 풍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1995년 전력 시스템을 외국에 매각한 후 소비자들은 막대하게 오른 요금을 감내해야만 했다. 전력 시스템을 소유한 외국 기업은 이윤을 자국으로 빼가는 데 관심을 둘 뿐 새로운 발전 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는 꺼렸다.

가장 이상적인 전력산업구조개편이라고 평가 받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캘리포니아의 경우 9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구조개편의 후유증이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의 도매요금 급등, 이에 따른 대형 배전회사들의 파산위기 등으로 나타났다. 또 발전회사들의 유지-보수기간 담합과 판매회사들의 가격조작행위 등 불공정거래행위도 빈번하게 드러났다. 영국의 경우에도 2004년 여름, 런던시 사상 최초의 대정전 사태로 민영화의 부작용이 극에 달했다. 영국을 모방한 뉴질랜드 역시 민간전력회사들의 투자부족과 무리한 인력감축으로 98년 2월 오클랜드시 대정전을 경험했다. 반면 수직통합형 독점공기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유럽연합 국가들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고, 공급이 안정적인 전력산업과 수급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산업 민영화, 대기업만 웃는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더라도 민자발전소 확대방식의 전력산업 민영화는 민간발전회사의 신규설비투자 회피로 전력공급 불안을 야기하고, 전기요금의 지속적인 인상, 일부 대기업과 외국자본의 엄청난 수익과 국부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2년간 화력발전 설비용량은 32%나 늘어났지만 이를 운영할 노동자는 고작 5.7%밖에 늘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전력산업 민영화를 강제하기 위해 가장 큰 저항 세력인 발전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강제 인사이동을 실시, 복수노조를 틈타 회사노조까지 설립하였다. 이로 인해 발전노동자들은 인권유린, 노동강도 강화, 업무스트레스와 건강 악화가 심화되었다. 민영화를 위한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발전 노동현장은 외주 용역화, 그에 따른 비정규직의 확대로 노동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제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민자발전소를 대규모로 증설하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현 정부는 분할과 민영화, 시장경쟁 도입이라는 이미 실패한 정책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에너지 산업의 재공공화를 통해 재생 에너지로의 전면 전환, 공급안정 우선, 기본요금 인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에너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가스, 전기와 같은 에너지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현대 사회진보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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