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3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으로 집을 옮기면서 출퇴근 시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이 15분에서 20분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사했을 때 통행료가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외곽순환도로를 처음 이용했을 때는 요금이 900원이었던 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요금은 1000원으로 인상되었고 지금은 1100원이다. 편리함의 대가로 매일 2200원씩을 꼬박꼬박 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통행료를 내는 것에 별 저항감이 없지만 처음엔 유료도로에 대해 사실 불만이 좀 많았다. 도로는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하나인데, 공적으로 투자해서 운영해야지 왜 돈을 받느냐, 이런 반감 말이다. 물론 지금도 어쩌다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타는 경우에는 통행료를 낼 때마다 열불을 내기도 한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는 외곽순환도로처럼 민간자본을 유치해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이른바 ‘민자 사업’이 유행처럼 번졌다. 인천공항고속도로, 지하철 9호선, 우면산 터널 등등. 정부 예산을 절감하면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민자 사업은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비싼 요금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업체에 민자사업이 집중되면서 특혜의혹이 일었는가 하면 수요를 뻥튀기 해 막대한 정부 예산으로 민간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민주당 김기준 의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6년 동안 민자 사업에 투입된 돈이 2조원이 넘는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하지만 민자사업의 폐해가 이렇게 큰데도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도로나 철도, 교량을 몰수하자거나 싼 값에 매입하자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혹은 투자할 것을 강요받는 주체가 농민이나 도시 서민 등 힘 없는 개인들일 경우에는 사정이 확 달라진다. 민자 사업으로 발생 가능한 최소한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건 고사하고 공익을 앞세워 땅값을 후려친다. 사회기반시설 건설로 인한 혜택은 고사하고 건강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며 안면몰수다. 달리 방법이 없어 몸으로 저항이라도 할라치면 지역이기주의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보다 못한 주변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욕한다.

민자도로야 그것이 없으면 못살 정도로 필수적인 시설은 아니다. 불편을 좀 감수하고 다른 도로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기야 어디 그런가. 밀양송전탑을 지나갈 고압전기가 어느 지역에 얼마나 사용될지는 모르지만 전기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 필수적인 시설이라면, 공익을 위해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익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높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게 상식적인 일 아닌가. 하지만 2006년부터 시작된 밀양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보면 앞뒤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충분한 보상방안을 협의하고 그런 뒤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순서일 텐데, 급하니까 공사를 빨리해야 한다며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가 사람이 죽고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항의하니 그제야 법을 만들어 보상을 하겠단다. 기존의 법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현금보상까지 넣었으니 정부는 할 만큼 했단다.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민간자본에는 그렇게 관대하고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힘없는 농민들이 자자손손 대대로 일군 그 소중한 자산과 그들의 기여를 평가하는 데는 왜 이리 인색하고 무자비한가.

원전 비리에 연루된 한수원 직원들의 금품수수 액수가 1인당 평균 1억 원을 넘고 한전, 한수원 등 발전 공기업에서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어겨가며 공짜로 지급한 대학생 자녀 학자금이 1245억 원이 넘는다는 보도를 보며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지역이기주의라기보다는 갑의 횡포다.

이광조 CBS PD

이광주 피디의 이 글은 <인권연대> 476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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