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을 국민에게 돌려준 노 대통령과 권력의 품으로 돌아간 국정원

▲ 사진제공=노무현재단
“노무현의 비전은 원칙이 바로 선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검찰이나 국정원을 앞세우지 않고도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권력기관이 대통령의 눈치를 안보는 사회입니다.”
 
2003년 5월30일 참여정부 출범 100일에 즈음해 가진 28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검찰, 국정원을 앞세우지 않고도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사회. 노 대통령은 그 약속을 실천해나갔다.

2003년 6월20일 노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정원을 첫 방문했다. 국정원 업무보고 및 직원 오찬간담회 일정이었다. 노 대통령은 개혁을 당부하고, 국정원 개혁의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과제, 정권 아닌 국가·국민 위해 일하라”

“국정원 개혁의 첫 번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정권을 위해서는 그만하십시오. 정권이 국정원에 대해 지금 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서 여러분들이 불안해  할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이제 끝내달라는 것이 나의 뜻입니다. 개혁의 두 번째 목표는 국정원이 국가 안전을 위한 전문적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국가정보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사찰 같은 것은 당연히 폐기됩니다. 갈등조정과 국정 일반을 위한 정보, 이것도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할 일은 아닙니다. 국가안전 정보에 전념해주십시오.”

정리하면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는 끝났다, 국가안전 정보 수집·관리에 전념하라’는 요지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개혁은 밖에서 타율적으로 요구하면 일회성에 그치고 만다”며 자발적인 개혁을 강조하기도 했다. “개혁은 자기 살을 도려내는 어려운 일이자, 불편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잘 하시리라 확실히 믿고 여러분에게 다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국정원 개혁,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으로 제자리 찾기 작업이 진행됐다.
 
국정원은 2005년 1월 중장기 혁신 마스터플랜 ‘국정원 비전 2005’를 마련하고 잘못된 과거 청산과 선진정보기관 구현에 나섰다. 국정원장이 대통령과 독대하는 ‘대통령 주례 대면보고’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됐다. 정치사찰은 물론 정치와 관련된 수집활동과 보고서 생산도 완전히 중단했다.

국정원은 또 국가기관 가운데 가장 먼저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에 착수했다. 2004년 11월 출범한 국정원장 직속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3년간의 활동 끝에 2007년 11월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
 
정치중립과 대국민 신뢰 확보, 마지막까지 당부
 
2005년 1월20일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두 번째 국정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정원 비전 2005’를 보고받으며 “국민의 신뢰회복 측면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고비는 넘었다고 생각한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여 뒤인 2007년 9월21일 재임기간 마지막으로 국정원을 방문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신뢰 확보를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 거듭 치하한다”며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대국민 신뢰 확보를 마지막까지 당부했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지만 오로지 대통령의 신뢰만 받으려고 하지 말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나가야 합니다. 국민들 마음속에서 신뢰를 얻는 것이 조직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국가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해야 합니다. 상사의 명령이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나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대통령의 지시도 거부할 수 있는 ‘조직의 가치’가 필요합니다. 정보를 갖고 개인적으로 거래를 하는 일은 결국 조직에 타격을 주게 됩니다. 스스로 절제하고, 주변에서도 정치중립의 분위기를 만들고, 부당한 명령을 할 수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 수준 높은 분위기를 유지해나가기 바랍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정원 직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임기를 마치고도 국정원이 계속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정치사찰 폐기, 국정원을 앞세우지 않고도 대통령 할 수 있는 사회 구현,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 종식…. 재임 5년, 노 대통령은 이 약속을 지켰다. 아울러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상사의 명령이나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대통령의 지시도 거부할 수 있는 ‘조직의 가치’를 끝까지 당부했다.

이후 두 번의 정권을 맞은 지금, 정치개입 논란을 자초한 국정원은 돌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까지 불법 공개했다. 이렇게 묻자. 노 대통령이 지킨 약속은 무용한 것이었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이적행위였나.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 민주주의에 반하는 지시도 거부할 수 있는 ‘조직의 가치’를 당부한 것은 대통령의 월권, 혹은 부당한 요구였는가.

2013년,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적나라한 퇴행의 기록을 얻었다. 국정원은 ‘국민의 권력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실천한 대통령을 배반하고 그의 뜻을 난도질했다. 그것이 훨씬 편한 것처럼, 국민의 품이 아닌 권력의 품으로 거리낌 없이 되돌아갔다. 지금도 진행 중인 이 퇴행의 현장을 국민과 역사는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국민과 역사는 그 퇴행의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김상철 노무현재단 사료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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