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대법원 인정한 성추행 부정… “피해자 인권침해 부추기는 판결”

▲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금속노조와 인권단체,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기륭전자분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옹호하는 판결을 한 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김형석
남성 경찰관이 여성이 들어가 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도 성추행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경찰의 성추행을 옹호하고 피해자의 인권침해를 부추기는 판결을 해 분노를 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단독 재판부는 9월27일 서울지부 기륭전자분회 여성 조합원이 경찰을 상대로 성희롱과 무고, 위증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판결에서 ‘위증’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모두 기각했다.

이 사건은 이미 지난 2012년 6월 대법원에서 경찰의 성적수치심 유발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한 내용이다. 법원은 성적 수치심을 여성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고가 남성, 가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며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특히 “여성이 화장실에서 옷을 벗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남성 경찰관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면 당혹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성적 수치심까지 느낀다고 할 수는 없다”, “피고인으로서 자신을 조사하려는 경찰관에 적개심을 품을 수도 있었고, 자신이 처한 난관을 돌파하는 방안으로 생각하고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가해자인 경찰의 입장만 철저히 옹호했다.

이와 관련 금속노조와 여성단체, 인권단체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법원 판결이 전형적인 여성 폄하, 노동조합 배타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인권침해, 성희롱을 부추기는 비상식적인 판결을 한 재판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 사건은 2010년 4월 발생했다. 당시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이 서울 동작경찰서 안에서 조사를 받던 중 볼일을 보기 위해 형사계 안 화장실에 들어갔고, 이 때 김 모 형사가 화장실 문을 여는 성추행이 벌어졌다. 당시 피해자는 수치심을 느끼고 경련을 일으켜 실신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가해 형사는 오히려 피해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피해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한 상황.

형사는 “화장실 문을 열지 않았다”고 위증을 하고, “비정규 투쟁에 이슈를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술하는 등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겼다. 결국 대법원이 “피해자가 무죄”라는 판결을 하며 형사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피해자는 동작경찰서와 가해 형사에게 후속조치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으나 사과 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는 최소한의 법적 책임을 지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조영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런 판결문은 생전 본 적이 없다”며 “판사 개인의 선입견으로 소설을 쓰며 그것이 진실인양 판결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화장실 문을 연 것 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이유인데 이는 사법부가 성희롱을 바라보는 잣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가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든지 성희롱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잘못된 내용을 항소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여성이 화장실 가는 것을 남성이 따라가고, 화장실 문을 열어두는 것 자체가 인권 침해고 여성 차별이다”라며 “이번 판결은 법 질서와 보편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다. 판사가 가해자를 옹호하기 위해 쓸데없는 내용에 매달리며 내린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는 “법원은 언제든 피해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경찰서 화장실 구조를 지적했어야 한다”며 “공권력 행사시 전혀 보장하지 않는 여성 피해자의 인권 문제가 또 다시 확인된 것”이라고 분노했다. 당시 피해자가 사용한 화장실은 반투명 문으로 돼 있으며, 화장실 출입문을 항상 열어두도록 했다.

피해자 대리인인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은 “피해자는 이 사건을 돌이키는 것 만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한다”며 “2심에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피해 여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상식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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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강정주 금속노조 편집부장 /사진제공=금속노조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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