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이 흐르는 바람을 또렷이 지켜볼 수 있기를…

[트루스토리] 그때는 무얼 꿈꾸는지도 모르고 꿈을 꿨었다. 혹여나 우리가 가진 마음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땐 서로를 향하고 있었던 듯하다. 순식간이었는지, 치밀한 움직임 속이었는지 돌이켜 세어 볼 새도 없이 거센 바람이 바닥부터 불었고, ‘우리’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까지 와있다.

꿈들이라 말할 만한 감정들은 망가져버렸고, 애정과 관심이라 할 감정들은 우리 안에서 버텨내지 못했다. ‘우리’라 불리는 사람들은 ‘미래’라는 것을 들먹이는 데에 유치하다는, 또 사치스럽다는 양가감정, 폄하와 동경을 몰래 혹은 공공연히 품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자살충동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더 아파보라고 말하는 것과 이미 요동치는 땅 위에 선 사람에게 더 흔들려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그 속내를 헤아리기에는 우리가 너무 바쁜 것이다.

우리는 그때엔 어려서 전혀 몰랐다지만 부모님이 IMF 경제위기를 겪으시고, 역사적인 첫 정권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란 것이, 태풍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뒤늦게 알았다. 투기자본유치, 은행매각, 공기업민영화는 자연히 불안정한 노동환경(정리해고, 비정규직 양산)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이때에 조급하고 불안해진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재테크(주식, 부동산)였다.

우리가 조금 철들기 시작할 즈음의 노무현이란 대통령은 예전의 무서운 할아버지 대통령들과는 달리 왠지 친근하고 유머러스하셨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첫 좋은 대통령’으로 각인이 돼있다. 그의 소탈했던 미소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온다. 허나 그의 노란색 바람도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으로 태풍을 독촉하다시피 한 게 사실이었다.

한미FTA처럼 젊은 사람들의 먼 미래까지도 담보해야 하는 대기업수출위주의 큰 정책을 시작했다. 비정규직법안을 통과시켜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힘든 상황이 되고, 큰돈을 가진 사람들은 더 쉽게 돈 벌기 좋은 환경이 굳어져갔다. 우리는 큰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일하고 돈을 받아 사는 사람이 될 것이었는데, 어려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나라가 왠지 화려해지고 세련되고 ‘글로벌’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명품도 유행했다. 사람들은 양극화라 떠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때가 왔다. 부모님이 불안한 마음에 재테크에 몰입해 우리를 키워냈던 것처럼 우리는 밥벌이를 위한 스펙을 쌓는 데에 전심을 다하고 있다. 부모님들의 부동산 재테크에 부풀린 집값이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슬픈 역사다. 부모님은 우리 걱정에 밤을 지새우시고, 우리는 그 부담을 홀로 감내하려 노력하면서 내면으로 빠져들 뿐이다.

이런 우리가 비록 더 이상 ‘미래’를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라 해도, 말했듯이 그것에 대한 동경까지 오롯이 지워버린 사람들은 아니다.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가 선 땅의 요동침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데면데면 굴 때에, 우리한테 손 내밀어 준 사람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청춘콘서트. 멘토. 안철수. ‘안철수 현상’은 우리들의 피곤함과 좌절의 결과였던 ‘정치적 무기력증’을 오히려 흡수해 피어난 돌연변이 꽃이었다. 그가 결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배경에는 우리들의 아픈 씨가 곳곳에 비치는 것이다. 안철수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와 ‘경제민주화’라는 두 새로운 바람이 서로를 잘 안아낸다면, 혹시 망가진 우리의 꿈이나, 마음이나, 애정 같은, ‘삶’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우리도 스치듯 생각해 보았다. ‘경제민주화’라는 말도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어색한 단어였지만 지금은 정치인이라면 모두 “그것은 내 것”이라고 말하듯이 유행을 타고 있지 않은가. 좋은 것이 유행이라면 무엇이 나쁠까. 타라, 잘 타, 유행이든 바람이든. 정말 ‘다른 것’이 오게 될 거라면.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좀 나쁜 소식을 들었다. 우리의 안철수 대통령 후보와 두 손 맞잡은 ‘경제민주화 담당자’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소식이 나쁜 소식이 돼버린 건 그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맡아 했던 핵심관료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민주화’가 ‘핫’한 새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로 남길 바라는 지난 정부의 경제 관료가 다시 온다면, 경제민주화는 정말 ‘새로운 것’일 수 있을까?

우리의 꿈이 망가져버린 이유는, 밥벌이 할 곳을 찾기가 어려워서, 어렵게 찾으면 비정규직이거나 월급이 너무 적어서, 회사가 날 함부로 대하고 일을 너무 많이 시켜 자존심 상하고 몸이 너무 피곤해서였는데. 그래서 우리의 고민을 직접 들어주던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와 우리의 밥벌이 생활을 제일 우선으로 고려해줄 것이라고 당연히 믿었던 것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안철수의 경제민주화’는 이런 우리의 것들과 맞닿아 있었던 걸까? 우리에게 안철수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안철수 캠프는 청년들이 벤처사업을 했을 때, 능력껏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중엔 창업할 사람보다 일한 대가를 받고 출근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 환경’보다는 ‘노동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정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그래서 정규직 일자리를 나눌 수 있고. 모두가 기본적인 삶은 유지할 수 있는 ‘달라질’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완벽한 대안’은 아니라도 ‘뚜렷한 의지’ 말이다.

안철수 대통령 후보는 계속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책을 만들어가겠단 말을 몇 번씩 했다. 그도 금세 우리의 ‘과거’가 돼버리면 어쩌지? 이 ‘걱정’이 크게 번져서 이번엔 직접 우리가 시대정신이 흐르는 바람을 또렷이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 비어있는 정책이 많다. 복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야기를 들어줄까? 그렇다면 우리도 말을 해볼까? 우리의 애정이 식지 않기를.
 
이선정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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