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52) 뉴턴도 피하지 못한 버블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주가(株價)는 하늘도 모른다. 그러면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은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주가는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의 이치라는 점이다.

하늘의 이치는 간단할 수 있다. 그러나 땅의 이치는 복잡하다.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증(愛憎)으로 점철된 인간의 마음은 이론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늘의 법칙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다양한 생물체들이 살고 있는 땅의 법칙인 다윈의 진화론보다 무려 100년 앞서 나왔다는 것이 말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물리학은 이제 끝났다”, 주식에 눈을 돌린 뉴턴

만유인력을 비롯해 운동법칙을 발견해 고전물리학을 완성한 뉴턴은 “이제 물리학은 다 끝났다.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 더 이상 물리 연구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리학 연구에 손을 뗀 뉴턴은 돈을 발행하는 영국 조폐국의 국장을 지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돼 의회에 발을 들여 놓기도 했다.

그리고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주식에 손을 다시 댔다. 명석하고 두뇌, 그리고 사물을 꿰뚫어보는 안목이면 충분히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초기에는 어느 정도 재미를 봤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말년에 주식투자로 상당한 재산을 잃었다고 한다. 심지어 가산을 완전히 탕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뉴턴이 중얼거리듯이 자주 내뱉는 말이 있었다. “난 원래 우주의 원리와 삼라만상의 법칙을 터득한 사람이야. 그런데 주식을 언제 사고 팔아야 하는지, 인간의 狂氣는 도대체 잘 모르겠단 말이야, 참!”

묘하게도 우주의 원리를 마스터한 천재 뉴턴도 주식투자의 이치는 몰랐다. 사람의 변화무쌍한 심정(心情)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런던 증권거래소에 대한 그의 주식 투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뉴턴의 명석함은 어땠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는 칭호만큼이나 위대한 투자자 중 한 명은 아니었다.

사실 과학자에 걸맞게 그의 투자는 대개 신중하고 수익성이 있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거의 모든 재산을 한 회사의 주식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고 말았다.

우주의 공식을 손아귀에 갖고 있었던 뉴턴도 인간 광기에 의한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그의 말년도 비참했다.

그를 비참하게 만든 이 업체가 바로 버블의 교과서로 통하는 ‘남해회사(South Sea Co.)’다.

남해회사는 1720년경 영국의 공기업이다. 주요 업무는 남미와의 무역. 그러나 사실은 영국 정부의 부채부담을 떠넘길 심산으로 만든 기업이었다. 당시 영국은 스페인과의 왕위계승권 전쟁으로 인해 큰 부채가 있었다.

영국 정부는 부실채권과 증권 1000만 파운드를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하고, 노예무역 독점 특권을 부여했다.

영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이 무역회사는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역에 노예무역을 독점하고 영국 정부의 국채를 매입하여 돈을 벌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주식 버블’의 교과서 남해회사에 투자

주식을 국채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주가가 치솟게 되자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뉴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뉴턴은 1712년에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이후 8년 동안, 그는 저축한 것과 다른 회사의 주식을 팔아 얻은 수익금을 사용하여 더 많은 주식을 사들였다. 어느 정도 재미를 본 그는 1720년 모아두었던 국채와 연금을 모두 주식으로 바꾸었다.

뉴턴이 주식에 투자할 당시만 해도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계속돼 남해회사는 큰 이익은 없었다. 그러나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주가는 완만히 상승했다.

일단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이 복사가 되니 너도나도 돈을 들고 와 남해회사 주식을 샀다. 남해회사의 주가는 6개월 동안 10배 상승하여 1720년 1월 100파운드인 주가는 같은 해 6월 1050파운드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남해회사의 버블이 붕괴된 계기는 정부의 규제로 보고 있다. 남해회사와 유사한 형태의 회사들이 증가하며 여러 군데에서 피해가 속출하자 정부가 나서서 규제법을 만들었다. 결국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남해회사의 주가는 폭락했다.

앤드류 오디즈코(Andrew Odlyzko) 교수가 왕립학회 과학사 저널(Royal Society Journal of the History of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1720년 당시 뉴턴의 투자액은 3만2000파운드로 알려졌다.

이후 남해 회사는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뉴턴이 1727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그 주식은 결코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남해버블 사건 이후 공인회계사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뉴턴도 버블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후 뉴턴은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나는 천체의 운동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어(I can calculate the motions of heavenly bodies, but not the madness of the people)”

광기 없는 도박이란 없다.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합법적인 최고의 광기의 게임은 주식투자다. 그 광기의 게임은 한 개인, 한 업체의 생사(生死)와 흥망(興亡)을 뒤로한 채 자본주의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