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53) 다른 사람의 '노예를 납치한다'는 말에서 유래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타인의 작품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속이는 행위인 표절은 예술과 문학이 등장하면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러나 표절 행위는 인류의 문화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표절(plagiarism)”이라는 단어의 역사는 그렇게 긴 것은 아니다.

표절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흥미롭다. 그 역사는 실제로 서기 1세기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한 시인과 그가 쓴 시를 훔친 한 시인을 비난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한 시인이 쓴 시를 다른 사람이 자기 것처럼 낭송한데서 시작

납치자(kidnapper)를 뜻하는 라틴어 ‘plagiarius’ 파생어인 표절(plagiary)이라는 단어는 17세기 초인 1601년 자코비앙 시대(Jacobean Era)의 극작가 벤 존슨(Ben Johnson)이 다른 사람의 문학작품을 도용한 ‘문학적 절도’를 저지른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영어에 도입한 것이 시초다.

자코비앙 시대는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통치하던 시기(1603~1625)로 르네상스 초기 시대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훔치는 것을 의미하는 표절은 라틴어 단어 "plagiarius"(납치자)가 기원이다. 이 말은 로마의 풍자 시인 마르티알(Martial, 라틴어 이름 Marcus Valerius Martialis)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르티알은 다른 시인이 "나의 시를 납치했다"고 불평했다.

이 최초의 역사적인 "표절자, 또는 납치자"의 이름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이 사건은 불명예스럽게 살아왔고 당대 가장 잘 알려진 시인들 중 한 명인 마르티알의 이름과 명성을 굳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로마 시인 마르티알은 서기 40년부터 서기 102년, 또는 104년까지 살았다. 비록 그는 빤짝 나타난 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작품을 남겼고 서기 80년경에 자신의 성공을 즐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유명세는 인생의 훨씬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마르티알은 그 시대의 많은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을 다른 시인들이 허락도 없이 도맡아 베껴지고 낭송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기보다는 기존의 초기 작품을 다소 개작하고 낭송하고, 중계하는 것이 매우 흔한 행위였다.

하지만 마르티알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이었다. 그는 저작권법이나 어떠한 법에 대한 호소없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 그의 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표절자로 추정되는 피덴티누스(Fidentinus)를 포함해 자신의 시를 표절한 ‘흉내쟁이’(copycats)들을 겨냥해 몇 편의 시를 썼다.

“피덴티누스, 다름 아닌 당신이 바로 내 책을 당신의 책인 것처럼 해서 군중들에게 내 책을 암송했어요! 그 시들이 내 것이라고 기꺼이 밝힌다면 내 시를 무료로 그대에게 주리다. 그러나 그 시들이 당신 것이라고 불리고 싶다면, 내 것이 되지 않도록 이것을 사세요!”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눈에 보인다. “내 작품을 돈을 주고 산다면 그에 대한 저작권(당시에는 이러한 법이 없었지만)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다.

“내 작품을 당신 것으로 읊고 싶다면 돈을 주고 사시요!”

아마 당시에도 오늘날 대필(代筆)에 준하는 작품활동으로 돈을 버는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심지어 마르티알도 대가를 받고 문학 사기의 공모자가 되려고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쨌든 마르티알이 그의 시에서 라틴어 단어 "plagiarus"를 사용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문학적 도둑’을 묘사했다는 것은 고대 로마시대에서도 이러한 표절행위가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역사상 최초의 표절사건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풍자시인 마르티알. [사진=위키피디아]

“납치”를 의미하는 이 용어는 당시 특히 노예를 납치하거나, 또는 자유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과 관련해 사용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마르티알은 표절자가 한 행동을 마치 "나의 노예들을 훔치는 것"과 비슷하다는 투로 지적했다.

노예가 사유재산임을 염두에 둔다면 그는 분명히 표절을 작가의 톡장성이라는 사유재산의 침해 행위로 간주했다는 뉘앙스를 준다.

그러나 마르티알의 표현은 재산권 침해라는 의미보다 자신의 독창성을 훔쳐간 것에 대한 분노에 의해 즉흥적으로 표현한 표절자에 대한 모욕을 주었다는 해석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납치를 뜻하는 표절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번역되기까지는 거의 15세기가 걸렸다.

"표절"이라는 용어가 정확히 언제 영어권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15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를 중심으로 많은 논쟁이 있다.

영어권으로 들어온 것은 16세기경 독창성을 중요시한 계몽주의 시대

1601년 벤 존슨이 모방 범죄를 묘사하기 위해 "납치범(표절자, plagiaris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 단어가 표절이라는 의미로 사전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한 세기 반 후인 1755년이었다.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저작권에 초점을 맞춘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Statue of Anne)은 1710년에 제정되었다. 표절이 영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40년 앞서 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표절"이라는 단어의 행위와 중요성의 상승은 모두 창조적인 작품에서 독창성에 훨씬 더 높은 가치를 둔 계몽주의 시대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단어들이 그렇지만 "표절"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의미에서도 "납치"를 의미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좀 더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확대한다면 표절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납치하는 행위다.

최근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대학 논문 표절이 정치 논쟁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여파는 좀처럼 끝나지 않고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

진실과 학문을 추구하는 일부 상아탑의 대학들도 본래 모습을 지키지 못한 채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끝없는 허영심의 극치 ‘배니티 페어(Vanity Fair)’를 동경하고 추구하는 끈질긴 욕심이 만들어낸 영혼을 납치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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