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은 두차례의 독극물 사건을 겪으면서 이를 숨기거나 변명하기 않고 즉각적인 시정조치에 나섬으로써 신뢰 회복 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사진=타이레놀 홈페이지]
타이레놀은 두차례의 독극물 사건을 겪으면서 이를 숨기거나 변명하기 않고 즉각적인 시정조치에 나섬으로써 신뢰 회복 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사진=타이레놀 홈페이지]

【뉴스퀘스트=안치용 ESG연구소장 】요즘이야 아무 약국에 들어가도 쉽게 살 수 있지만 한때 타이레놀은 귀한 몸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해열제 타이레놀은 물건이 달려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존슨앤존슨의 대표 상품 타이레놀은 1982년 9월 29일 큰 사고에 휘말린다.  미국 시카고에서 독극물(청산가리)가 들어간 캡슐형 타이레놀 ‘Extra-Strenth Tylenol’ 을 복용했다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망 사고는 한사람에 그치지 않고 이후 10월 1일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타이레놀을 복용했던 시민들 7명이 더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고가 세상에 알려진 직후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고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 또한 35.5%에서 7%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캡슐 형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으로 존슨앤존슨의 주가 역시 사건 발생 후 9일만에 약 29%가 하락해 시총이 23억달러나 감소했다.

위기에 직면한 존슨앤존슨은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연방수사국(FBI)과 시카고 경찰, 식품의약국(FDA)등에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과 함께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아울러 범인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0만달러의 현상금도 걸었다.

독극물이 들어간 문제의 캡슐은 펜실바니아와 텍사스 두 곳에서 제조됐으며 매장의 판매용 선반에 제품이 진열된 후 캡슐이 변조됐다는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졌다.

존슨앤존슨이 이처럼 신속하게 대응에 나선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큰 사고에 휘말릴 경우 이를 감추거나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존슨앤존슨은 그러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후 존슨앤존슨은 흔히 위기에 처한 기업이 그러하듯 해명이나 변명을 하지 않았고 사건의 진상이 다 드러나기도 전에 회사는 아는대로 사고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선제조치에 나섰다.

존슨앤존슨는 이어 자회사이자 타이레놀 제조사인 맥네일사(McNeil Consumer Products)을 통해 사건발생 다음날인 9월30일 제조번호(로트번호) MC2880 타이레놀 캡슐 9만3000병(470만 캡슐)과 제조번호 1910MD 17만1000병(850만 캡슐)의 리콜을 발표했다.

당시 존슨앤존슨을 이끌던 제임스 버크 회장은 타이레놀 생산라인을 즉시 폐쇄하고 타이레놀 광고를 중지했다. 또 한술 더 떠 사건발생 일주일만에 전국 모든 매장에 진열됐던 타이레놀을 전부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또 시중에 깔려있는 모든 캡슐 형태의 타이레놀 제품을 정제형으로 교환해 주기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 전역에 배포돼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캡슐 형태의 타이레놀 2200만 병은 그때 시가로 약 8000만달러에 달했다. 이후 실제로 존슨앤존슨이 회수한 타이레놀은 3100만병으로 폐기에 들어간 비용은 1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들도 가만히 앉아서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맥네일사의 경영진들은 각 방송사의 나이트라인 등 뉴스프로그램에 출연해 사건을 조속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타이레놀 제품의 변조방지 포장재가 마련될 때까지 타이레놀 캡슐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공표했다.

존슨앤존슨은 이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까지만해도 외부에 나서거나 미디어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을 되도록 삼가는 수동적인 홍보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극물 첨가 사건이 발생하자 존슨앤존슨은 언론취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실시간으로 관련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한편 결과도 오픈했다.

존슨앤존슨은 수사가 진행과 일련의 보상조치와는 별개로 최고 경영자인 버크 회장을 비롯 임원진 7명으로 위기대응팀을 구성했다.

당시는 요즘과 달리 특별한 위기관리 안내서가 없었기 때문에 존슨앤존슨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회사의 철학이 담긴 ‘우리의 신조’를 기준으로 위기관리 대응에 나섰다.

존슨앤존슨의 사시이기도 한 ’우리의 신조‘는 ’우리의 첫 번째 책임은 환자와 의사, 간호사와 아버지와 어머니들, 그리고 우리의 상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라고 믿는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주웍에 위치한 존슨앤존슨 본사에 새겨진 '우리의 신조'[사진=존슨앤존슨]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주웍에 위치한 존슨앤존슨 본사에 새겨진 '우리의 신조'[사진=존슨앤존슨]

'우리의 신조'는 존슨앤존슨의 창립멤버이자 1932부터 1963년까지 회장을 지낸 로버트 우드 존슨이 1943년 직접 만든 내용으로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전에 스스로 책임을 정의한 사례로 언급된다.

'우리의 신조'는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시작으로 비즈니스파트너, 직원,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명시하고 마지막으로 주주에 대한 책임으로 끝낸다.

우리의 신조에 근거해 존슨앤존슨은 핫라인을 설치해 언론과 소비자의 질문에 일일이 답하면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했다. 또 언론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 소비자가 추가적인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실제 존슨앤존슨은 사건 발생 후 바로 모든 캡슐을 수거하는 등 신속한 후속 조치덕에 추가적인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수거한 캡슐을 검사한 결과 독극물이 함유된 타이레놀을 모두 75개에 달했다.

존슨앤존슨은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비슷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포장재 개발에 나섰다. FDA와 협력하여 1982년 11월 11일 존슨앤존슨은 타이레놀 소매 판매용으로 3중 밀봉의 변조방지 포장재(병)를 새로 출시했다.

존슨앤존슨의 변조방지 포장재 개발은 1년 후 미국 의회에서 식품 및 의약품 포장을 변조하는 것을 연방범죄로 규정하는 타이레놀 법안 통과를 이끌었다.

이에따라 식품 및 의약품 포장의 변조를 시도한 사람은 최소 2만5000달러에서 최대 10만달러의 벌금과 최대 10년의 징역 상해피해자 발생 시 최대 20년의 징역 사망 피해자 발생시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게 됐다.

당시 존슨앤존슨의 철저하고 신속한 대처는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사건을 은폐하고 무마하기 보다는 정직하게 그리고 적기에 발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대중과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타이레놀의 진통제 시장 점유율은 사건이 발발하고 7%로 하락한 후 약 8개월 만에 1983년 5월에 종전 수준이 35%를 회복했다.

1986년 2월 존슨앤존슨은 또다른 사망사건에 직면한다. 이번에는 미국 뉴욕 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용커스에서 청산가리가 등 타이레놀을 먹고 한 여성이 사망했다.

1982년 사건으로 변조방지 포장재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타이레놀 캡슐이 변조방지 병에 투입돼 소매점으로 배송되기 전에 독극물이 주입되어 변조방지 포장재를 무력화 시킨 사건이었다.

버크회장은 다시 한번 더 대규모 리콜을 단행했다. 사건이 발생한 우스트체스터 지역의 모든 타이레놀을 회수하고 전국 소매점에서 타이레놀 판매를 보류했다.

전국의 소비자가 보유하고 있던  캡슐 타이레놀을 반품하면 정제알약이나 코팅 정제 알약으로 교체하거나 전량 환불 할 것을 약속했다.

두번의 독극물 사건을 겪은 존슨앤존슨은 차제에 위험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캡슐 형태의 타이레놀 제조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1976년의 정제알약과 1983년의 코팅 정제 알약은 캡슐과 병행 유통되었는데 1986년 두번째 청산가리 투입사건이 발생하면서 캡슐형태 제조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독극물이 들어갈 수 있는 길목을 막는 근본적인 조치였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타이레놀이 탄생했고 우리가 모르는 캡슐은 두 번의 사건 너머로 사라졌다.

정제분말을 넣은 캡슐 형태의 타이레놀 제품 제조를 전면 중단한 존슨앤존슨은 1988년에 ’Extra Strength TYLENOL Gelcaps’ 라는 캡슐과 비슷한 형태의 제품을 다시 선보였다.

그러나 이 제품은 목 넘김이 쉽도록 정제형 타이레놀 제품을 젤라틴으로 코팅한 것이어서 이전 분말 캡슐과는 다르다.

2005년에는 섭취 후 더 빠른 효과를 위해 고안된 ‘Extra Strength TYLENOL Rapid Release Gels’를, 2008년에는 캡슐에 액체 약물을 넣은 ‘TYLENOL PM Rapid Release Gels’을 출시했다

이같은 제품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자동화 등으로 과거와 같은 독극물 투입 기회를 원천 차단했기에 가능했다.

안치용 ESG연구소장
안치용 ESG연구소장

존슨앤존슨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은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레로 각종 경영학 서적에 인용된다.

위기 및 리스크 관리이자 윤리경영이며 ESG 경영의 고전적 사례다.

참고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투입한 범인은 몇몇 용의가가 있긴 했으나 아직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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