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 완료” 말하는 전기밥가마 없어서 못팔아

거주지 외곽에 형성된 북한의 장마당. [사진=연합뉴스]
거주지 외곽에 형성된 북한의 장마당.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겨울로 접어들면서 북한 주민들은 월동준비에 부산하다. 식량 비축에 김장, 땔감 마련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경제난에 대북제재,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닌 때문이다.

빈사 상태의 북한 경제에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는 게 있다. 1990년대 중후반 노동당에 의한 배급체계가 붕괴되면서 주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모여든 곳이 장마당이다.

본래는 텃밭이나 뙈기밭 같은 곳에서 기른 야채나 잉여농산물을 거래하던 농민시장에서 음식과 생필품까지 파는 종합시장 형태로 확산된 것이다.

최근에는 거래 품목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과자와 비누, 칫솔, 샴푸 같은 생필품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매대 아래쪽에는 한국산 제품도 은밀하게 거래된다고 한다.

개성공단 가동 때 북한 노동자들이 계를 할 정도로 좋아했던 초코파이와 믹스커피, 천하장사 소시지 등도 여전히 거래된다.

일부 시장에서는 한국 가전제품도 거래된다. LED TV와 냉장고, 세탁기까지 부유층을 상대로 은밀하게 팔린다는 것이다. LG마크에서 앞글자를 떼네 ‘쥐(G) 냉장고’란 은어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말로 “취사가 완료됐습니다”라고 안내하는 전기밥솥도 북한에서 ‘전기밥가마’로 일컬어지면서 없어서 못파는 물건이 됐다고 탈북민들은 전한다.

북한 당국이 승인한 시장은 400개 정도로 파악된다. 통일연구원은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 공식 시장이 2016년 411개에서 현재는 3개 늘어난 414개”라고 밝혔다.

김정은 체제 들어 큰 변화 없이 400개 수준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 이뤄지던 주기적인 단속도 거의 사라졌다. 경제난으로 노동당이 주민들을 배급으로 먹여살리기 어려우니 장마당 숨통마저 조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코로나는 장마당에 직격탄을 안겼다. 지난 5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북한은 일시적으로 폐쇄조치까지 취한 것으로 파악된다.

평양 룡흥시장은 5월 12일 이후 한 달 간 폐쇄했고, 낙랑구역 통일거리시장과 모란봉구역 안흥시장 등은 이틀에 한 번씩 개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평북 평성의 옥전시장은 주 3일가량 시장 개장이 허용됐다.

북한은 코로나가 진정세에 접어든 6월 이후 장마당 통제를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중 접경 지역의 경우는 여전히 장마당 가동이 어렵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양성화하면서 자릿세 형태의 세금도 걷어 들인다. 매대 면적에 따라 징수하다보니 관리 당국은 시장 규모를 늘리려 안간힘을 쓴다. 북한 시장 가운데 최근 들어 38개소가 규모를 늘렸는데, 전체 시장 면적은 여의도의 3분의 2가량인 194만㎡로, 2016년에 비해 10만7000㎡ 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시장 숫자나 규모는 북한 당국이 공식 발표하는 자료가 아니다. 관계 당국이 인공위성 등을 이용해 사진 촬영해 분석하는 추정치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이나 장마당 외에도 비공식적인 시장이나 물건을 팔다가 단속이 나오면 보따리를 싸서 도망칠 수 있는 메뚜기 시장도 번성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에 올인하면서 민생은 내팽개친 듯한 김정은 체제에서 시장은 주민들의 삶을 책임진다. “노동당은 우리를 못 먹여 살리지만 장마당은 다르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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