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종류별 음악과의 궁합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음악 장르에 따라 어울리는 와인이 있을까? 박자에 따라 어울리는 와인이 달라질까?

음의 높낮이에 따라 와인이 풍미가 달리 느껴질까?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악기의 종류에 따라 궁합이 맞는 와인이 있을까?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것을 소재로 실제로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실험을 통해 의미있는 결과를 발견한 연구들이 있는 이상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도 곤란하다.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우리도 갖고 그들이 발견한 세계로 들어가서 우리의 궁금증을 한번 풀어보자.

4가지 와인 맛 스타일에 따른 어울리는 음악 찾기에 관한 연구

2012년에 아드리안 노스(Adrian North) 박사는 화이트 와인(Chardonnay)과 레드 와인(Cabernet Sauvignon)을 각각 강하고 무거운(Powerful & Heavy), 섬세하고 세련된(Subtle & Refined), 활기차고 신선한(Zingy & Refreshing), 부드럽고 그윽한(Mellow & Soft)으로 표현되는 4가지 유형의 맛과 향(풍미)으로 분류하고 이런 4가지 유형에 맞는 음악을 선정한 후 각각의 음악이 나오는 방과 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은 방에 실험 대상군을 두 와인 중 한가지를 들고 들어가게 했다.

이때 각 대상군은 각각 25명씩(남자 12명, 여자 13명 또는 그 반대로 구성된 팀)으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음악을 전혀 들려주지 않은 실험군과 비교했을 때 각각 매칭되는 음악과 와인을 마셨을 때 화이트 와인은 26~40%, 레드 와인은 25%~60%의 차이가 날 정도로 음악에 따라 와인 맛도 유사하게 느꼈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음악을 전혀 듣지 않은 그룹대비 동일 유형의 맛으로 느낀 비율 결과표
음악을 전혀 듣지 않은 그룹대비 동일 유형의 맛으로 느낀 비율 결과표

이 표를 보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은 각각의 품종의 특색에 대해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즉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은 음악 없이 마실 때보다 40%가 더 활기차고 신선하고 상큼하다고 느끼고 까베르네 쇼비뇽 레드 와인은 60%나 더 강하고 무겁게 느껴지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가족들과 이 음악을 들으면서 한번 실험해보면 어떨까?

와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뭐 굳이 그렇게 까지야 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급 명품와인 선택과 음악과의 관계

2013년 스펜스(Spence) 등 4인의 연구팀은 고급 명품 와인(Fine Wine) 선택과 음악과의 관계를 연구했다. 

먼저 실험 참가자들에게 특징적인 4종류 명품 와인(Fine Wine) 각각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8종류의 클래식 음악을 제시하고 이 중에서 서로 어울릴 것 같은 것을 찾게 했다. 

그리고는 어울린다고 선택한 음악을 들으면서 해당 와인을 마시게 한 결과의 평가점수와 음악이 없이 같은 와인을 마신 경우의 평가점수를 비교했다. 

결과는 전반적으로 자신이 어울릴 것이라고 추정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마셨을 때 더 달콤하다고 느끼고 또한 그 때 그 와인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근데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 와인을 마시면 음악 없이 마실 때보다 당연히 더 맛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의 선택에 대한 방어심리도 있고 자기 합리화가 기본인 것이 사람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장 음악의 존재 유무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클래식 음악 스타일별로 어울리는 와인 찾기

보다 구체적으로 와인의 맛과 향과 클래식 음악의 스타일과의 관계를 연구한 것도 있다.

2014년에 옥스포드 대학의 실험 심리학과에서 행해진 연구(Qian(Janice) Wang과 Charles Spence)가 그것이다.

이 연구는 2014년 11월 28일 클래식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되는 가운데 와인 테이스팅이 이루어지는 이벤트 현장에서 참석자 80명을 대상(응답을 한 사람은 64명)으로 어떤 특정 와인과 음악의 조합이 어울리는 지 여부와 조화롭다고 느낄 경우 그 음악이 와인의 테이스팅 요소, 즉 과일향(fruitiness), 산도(acidity), 탄닌감(tannins), 풍부(만)함(richness), 복잡성(complexity), 마신 후의 여운(length), 그리고 와인이 주는 즐거움(pleasantness of the wines)들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분석하는 것이었다.

실험은 두 가지 종류의 와인과 두 가지 종류의 클래식 라이브 연주를 정하여 사전에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되는 와인과 음악을 연구자들이 미리 정하고 한 그룹에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와인과 음악을 들려주고 

다른 그룹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와인과 음악을 들려주면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실험참여자의 선택은 배제한 상태인 것이니 좀 더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때 사용한 와인은 확연한 차이가 있게 하려고 하나는 화이트 와인으로 프랑스 루아르 산 2013년 쇼비뇽 블랑 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디엄 바디 레드 와인으로 아르헨티나 멘도사 산 2013년 말벡 품종의 와인이었다.

화이트 와인과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빠른 템포와 높은 음(Pitch)이 신맛과 시트러스 향과 연관이 있다는 기존의 연구(Bronner, Frieler, Bruhn, Hirt, & Piper, 2012; Mesz, Trevisan, & Sigman, 2011)를 참고하여 높은 음에 빠른 템포들(분당 약 150 비트)이 있는 드뷔시의 비오는 날의 정원(Debussy’s Jardin Sous la Pluie (https://www.youtube.com/watch?v=XrlL6pJ4_HA)을 선정하였고 레드 와인은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 연주법(legato articulation)과 협화음의 멜로디(constant melody)가 달콤함 맛과 풀바디에 어울린다는 앞에서 언급한 기존의 연구를 참고하여 느린 템포(약 분당 80비트)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Rachmaninoff’s Vocalise (https://www.youtube.com/watch?v=SVyza9jzw18))를 선정하였다. 

연주자는 런던 황실 음악 아카데미의 두 거장 (Lucia Brighenti와 Irene Ortega Albaladejo)이었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각각 한 잔씩 나누어 주고 먼저 드뷔시의 비오는 날의 정원을 피아노 독주로 들려주고 난 후

두번째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피아노와 첼로의 듀엣곡으로 연주하게 하면서 한 그룹에게는 드뷔시의 음악 연주시에 화이트 와인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연주시에 레드 와인을 마시게 하고(매칭그룹), 다른 한 그룹에게는 그 반대로 마시게 하여(비매칭그룹) 각각 평가를 하게 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식으로 실험이 진행되었다.

결과는 쇼비뇽 블랑의 화이트 와인과 드뷔시의 비오는 날의 정원 연주를 들을 때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연주를 들을 때보다 더 어울린다는 응답이었고, 

말벡의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연주를 들을 때가 

드뷔시의 비오는 날의 정원을 피아노 독주로 들을 때보다 더 어울린다는 응답이었다.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서 드뷔시의 피아노 독주곡을 들었을 때 라흐마니노프 곡의 연주를 들을 때보다신맛을 더 느낀 반면 레드 와인을 마시면서 라흐마니노프 곡의 연주를 들을 때는 드뷔시 곡을 들을 때보다 

신맛을 덜 느낀다는 평가가도 나왔다. 

즉 산미를 느끼고자 할 경우 와인의 종류에 상관없이 빠른 템포의 높은 음이 섞인 곡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상큼 신선한 것은 어찌 보면 날카롭고 신경을 곤두세우게도 하니 이들 끼리 통한다고나 할까?

과일향의 경우에는 와인의 종류에 상관없이 라흐마니노프 곡을 들을 때가

드뷔시 곡을 들을 때보다 더 풍부하게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덧붙여 화이트 와인만 놓고 볼 경우에는 어느 음악이든 음악이 있는 상황하에서 과일향을 더 느낀다는 평가가 나왔다.

즉 화이트 와인은 무조건 음악과 함께 마시면 과일향을 더 풍부하게 느끼고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주된 이유인 산미를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좀 빠른 템포의 높은 음들이 들어간 곡을 들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드 와인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연주곡과 함께 마셔야 과일향은 풍부하고 산미는 덜 느끼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레드 와인의 경우도 산미를 제대로 느껴야 하는 경우에는 부드러운 음악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기도 하고. 

이 연구결과를 보면 그래서 이탈리아 칸소네가 전반적으로 좀 템포가 빠른 걸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의 경우 첼로가 들어가서 그 부드러움 때문에 과일향이 더 나게 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마신 후의 뒷맛의 여운은 레드 와인의 경우 드뷔시의 곡을 들었을 때가 화이트 와인 보다 더 길게 느낀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레드 와인도 긴 여운을 느끼고 싶으면 좀 빠른 템포의 높은 음들로 구성된 곡을 들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오히려 부드럽고 느린 곡을 들었을 때 더 여운이 길게 느껴질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니 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느낌 때문일까?

풍부(만)함(richness)에 관해서는 어떤 음악이든 음악이 있는 상황하에서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상의 실험들은 와인을 대접하는 사람들이나 판매자들에게는 음악까지도 배려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기는 한편 와인 판매자들에게는 고객이 와인 맛과 향이 좀 이상하다고 할 때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그 와인을 마셨냐고 어울리지 않는 음악과 함께 드셔서 그랬던 것 아닐까요 라고 말할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하기도 할 것같다.^^ 

와인을 더 민감하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좋은 와인, 어울리는 음식과 좋은 동반자 이외에도 그 와인에 어울릴 만한 음악을 찾아서 그걸 배경 음악으로 하면서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이 일련의 연구들이 보여준다고 해석하면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이 될까?

여하튼 음악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예술 장르이고 와인 또한 식음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기에 그 둘의 궁합을 생각한다는 것은 문화를 융합적으로 즐길 준비를 하는 것이기에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공감각은 타인과의 공감의 범위를 넓혀주는 요소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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