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시에선 남한드라마 본 대학생 2명 “징역 15년형”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12일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원생들과 만났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청년세대의 사상교양 중요성과 충성을 강조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월 12일 평양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해 원생들과 만났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청년세대의 사상교양 중요성과 충성을 강조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겨울나기 준비에 한창인 북한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고 있다.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요를 호기심에 접한 북한의 청소년들이 공개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있다는 얘기다.

대북 전문매체들이 이달 들어 전한 뉴스만 봐도 평양의 고급중학교(고등학교) 학생 4명이 체포됐고, 남포에서는 대학생 2명이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평양 대성구역의 고급중 학생들의 경우 북한의 어머니날인 지난달 16일 한 학생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며 남한 가요를 틀고 춤을 춘 혐의다.

초대받지 못한 친구들이 고발을 했는데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화・가요가 담긴 메모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몇 편 본다고 중형을 선고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북한이 그만큼 남한 드라마와 영화・가요를 경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12월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란 걸 만들어 북한판 한류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단순 시청만 해도 징역 5~15년 형, 영상물을 복제하거나 유포한 경우는 무기형이나 사형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최근 북한이 청소년・학생까지 무차별적으로 적발해 공개재판을 하고 중형을 내리는 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2주년을 맞아 단속의 고삐를 죄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탈북민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아랫동네 것 몇 개 봤니”라는 말로 자신의 ‘한류 내공’을 뽐낸다고 한다.

‘남조선’이란 말도 쓰기 어려우니 ‘아랫동네’라는 은어를 써가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본 경력을 과시한다는 얘기다.

최근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같은 경우는 ‘시착’이란 줄임말로 불린다고 한다.

한 20대 탈북여성은 “처음에는 다 꾸며낸 장면이라 생각했는데 10편 20편 보다보면 ‘속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저기 가서 한번 살아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젊은층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샤워하는 모습을 말한다. 수도꼭지만 틀면 따뜻한 물이 쏟아지고 아침, 저녁으로 온수에 씻을 수 있다는 게 북한 생활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란 설명이다.

그러면서 ”우리 비누는 품질이 엉망인데 남조선 건 몇 번 문지르기만 해도 거품이 잘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한 탈북민은 귀띔했다.

한류 문화의 여파도 만만치 않다.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각각 ‘남친’, ‘여친’으로 부르고, 연인을 ‘오빠’라고 부르는 현상이 번지자 북한은 “썩어빠진 남조선 말찌꺼지”로 비판하면서 단속까지 나섰다고 한다.

또 부르기 쉽고 세련돼 보이는 남한식 이름을 아이들에게 지어주는 게 유행인 점을 의식해 북한 당국이 “아리와 소라・수미・가희 같은 이름을 혁명적으로 고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북한 내부 소식통의 전언도 흘러나온다.

한류의 파고가 거세지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까지 나서 단속을 강화하고 청소년・학생들에 대한 교양 사업을 제대로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해 38세인 김정은 자신이 MZ세대란 점에서 한류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데 따른 움직임으로 보인다.

북한도 관영 선전매체를 총동원해 사상 교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류 문화라고 제대로 지칭하지도 못한 채 퇴폐적 외부문화에 대한 경계를 촉구하면서 “이대로 두면 물 먹은 담벼락처럼 체제가 허물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동신문도 지난 13일 보도에서 “청소년들 속에 썩어빠진 부르주아 사상・문화를 침투시키려는 적들의 책동을 혁명적인 사상・문화로 압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이런 강력한 처벌이나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MZ세대(20~30대)와 청소년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한류 문화를 막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변화에 민감한 젊은층들이 이미 외부문화에 눈을 뜬데다, 핵과 미사일에 올인하면서 민생을 파탄에 빠트린 북한 정권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의 배급이나 배려가 아니라 장마당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성장한 신세대들의 의식 변화도 김정은 체제가 감당하기에는 한계를 넘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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