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 중국의 올 한해는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험난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정책을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대가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자연스럽게 타격을 입을 경제적 상황도 거론해야 한다. 정부 당국에서는 5%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면서 정책을 펼 것이 확실하나 목표 달성은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이외에 미국과의 신냉전, 이른바 ‘백지 혁명’에서 확인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흔들리는 리더십까지 더할 경우 중국 앞에 놓인 국내외적인 시련은 정말 간단치 않다고 해야 한다.

이 문제들은 어쨌거나 당정 최고 지도부가 풀어야 한다. 당연히 시 주석을 보조할 권력 2인자인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만약 총리가 산적한 국내외 현안들의 원만한 해결에 힘을 보태지 못한 채 헤맨다면 시 주석의 권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늦어도 2035년까지는 미국을 넘어 G1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장기적 발전 목표도 흔들리게 된다.

각종 어려운 난제에 직면한 중국의 새 총리가 될 리창 정치국 상무위원. 현안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실패한 총리라는 오명을 남길 수 있다.[사진=신화(新華)통신]
각종 어려운 난제에 직면한 중국의 새 총리가 될 리창 정치국 상무위원. 현안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실패한 총리라는 오명을 남길 수 있다.[사진=신화(新華)통신]

과거 겪어보지 못했던 난제들에 직면한 중국의 운명을 시 주석과 함께 짊어져야 할 바로 이 총리 자리가 올해 봄에는 바뀔 예정으로 있다.

정말 중요한 시기에 새 총리가 등판, 중국을 위기에서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바로 상하이(上海)시 서기를 지낸 리창(李强. 64)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현임인 리커창(李克强. 68) 총리와 이름이 흡사한 그는 저장(浙江)성 루이안(瑞安)시 출신으로 노동자 생활을 하다 1978년 저장농업대학 닝보(寧波)분교 농기계과에 입학, 졸업했다.

학교 문을 나선 후에는 1년 동안 잠깐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1983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들어가 간부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했다. 1998년에는 저장성 융캉(永康)시 서기로 승진, 출세가도를 달릴 조짐도 보였다.

2004년에는 운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치적 운도 찾아왔다. 저장성 정부의 비서장에 임명되면서 당시 성장과 서기로 재직했던 시 주석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미래 최고 권력자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정치적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2012년 11월 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정치적 대부인 시 주석이 총서기에 취임하면서 그의 정치적 복도 대폭발하기 시작했다.

바로 저장성 성장과 서기를 역임한 다음 2016년에는 인근의 장쑤(江蘇)성 서기로도 이동할 수 있었다. 2017년 10월 시 주석의 후광을 등에 업고 25명 정원의 정치국 국원이 신분으로 상하이 서기로 이동한 것은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2022년 10월 제20차 당 대회에서 대망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력으로 볼 때 그는 누가 뭐래도 이른바 시자쥔(習家軍. 시 주석 핵심 측근 파벌)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총리에 내정된 것은 무엇보다 이 사실을 잘 말해준다. 당연히 막강한 힘을 가지는 실세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능력도 나름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그가 장쑤성 서기로 일할 때의 일화를 하나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당시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60) 창업자와 긴밀히 교류하고 있었다. 알리바바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성과도 엄청나게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 창업자가 2016년 자신의 저서에서 그를 가장 좋아하는 대화 상대 중 한 명이라고 적은 것은 분명 괜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상하이 서기 시절에는 외국 자동차 기업의 단독 설립을 불허하는 상황에서도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을 허가해주는 신의 한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전기자동차 산업은 그야말로 질주하게 됐으니 이렇게 단언해도 괜찮다. 주변에서 그를 실용주의 경제 관료의 표본으로 부르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약점도 많다. 시 주석에 절대 충성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예스맨 기질이 강하다는 사실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예스맨이 가질 수밖에 없는 소심함, 추진력 부족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에 코로나19가 창궐한 상하이를 무려 2개월 동안 봉쇄시킨 원죄(原罪)까지 더할 경우 그에 대한 너무 과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의 앞에는 국내외의 무수한 현안들 외에도 당장 풀어야 할 숙제도 엄청나게 많이 놓여 있다. 우선 중국을 중진국 함정에서 구해내는 숙제가 간단치 않다.  만약 제대로 풀지 못하게 될 경우 중국의 G1에 대한 꿈은 진짜 신기루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1조9700억 위안(元. 362조 원)의 엄청난 부채에 허덕이는 헝다(恒大)그룹 사태에서 보듯 붕괴에 직면한 부동산 산업도 되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부동산 산업이 중국 GDP(국민총생산)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현실을 상기할 경우 진짜 그렇다고 해야 한다.

지난 3년여 동안 추진한 빅테크에 대한 무차별 규제를 적절하게 완화하면서 업체들의 기를 살려줘야 하는 것도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평소 성향으로 볼 때 이 문제만큼은 다른 현안들과는 달리 조속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현안들과 숙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할 경우 그는 퇴임할 때 성공한 총리라는 평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고 권력에 아부한 예스맨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가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실세 총리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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