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재를 ‘산업의 쌀’로 내세우며 확보 안간힘
핵・미사일 찬양 기사 옆에 고철수집 촉구 글
대북 경수로 현장 철근・장비 북 군인이 털어가

새해 들어 철강재 생산을 촉구하기 위해 등장한 북한의 선전 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
새해 들어 철강재 생산을 촉구하기 위해 등장한 북한의 선전 포스터.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북한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뭔가 심각한 불균형의 체제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세금이 없는 지상낙원을 주장하지만 그런 혜택을 누리는 건 극소수의 노동당 간부와 그 일가족 등 특권층뿐이다. ‘평등’을 내세우지만 대다수 주민에겐 그림의 떡이란 얘기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핵 개발에 성공해 ‘핵 보유국’ 지위에 올랐다고 선전하고, 미국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성공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주민의 40%인 1100만 명이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유엔 기구의 통계가 나온다.

새해를 맞은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서도 이런 모습은 드러난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선전매체는 연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 발언으로 도배질을 하며 “총비서 동지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지난 한 해 닥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김정은이 핵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한 ‘핵 무력 법령화’ 조치나 11월 ICBM화성-17형 시험발사는 빼놓을 수 없는 레퍼터리다.

그런데 이런 기사 바로 옆에는 다소 모양 빠지는 보도가 등장한다. “거름을 많이 생산해 협동농장과 농촌 지역에 보내야 한다”거나 “파철 수집에 집중해야 한다”는 캠페인이다. 퇴비와 고철 모으기를 촉구하는 이런 내용은 핵 강국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핵・미사일을 내세운 체제 선전과 최고지도자 띄우기 바로 옆에 실린 퇴비와 고철 기사는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올인하는 바람에 파탄 나버린 북한 경제와 민생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북한은 고철 수집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일 “금속공업 부문에 대한 전 사회적인 지원 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강원도, 함경남도, 양강도, 남포시에서 많은 파철을 수집하여 철 생산기지들에 보내주었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처럼 고철에 집중하는 건 철강재와 금속생산을 위해서는 고철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북한의 내부 자원은 완전 고갈된 상태다. 고철이나 플라스틱, 고무 등 재활용 자원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기・통신선으로 이용되는 구리선을 절취해 가는 도둑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건설현장 뿐 아니라 심지어 군부대의 철조망이나 군용차량이나 대포 등 장비를 빼내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전선 절취나 군용물 절도의 경우 사형에 처하는 등의 극단적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는 게 탈북민들의 전언이다.

통일부 전직 간부는 “과거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줄 때 우리 건설업체들이 가져간 철근과 자재, 중장비 등을 주민이나 북한군이 몰래 훔쳐가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아예 한국의 경비업체를 함남 신포 현장에 파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로 인해 고철 수입 등이 어려워진 북한은 최대한 내부에서 이를 조달하기 위해 학생과 주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탈북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김정은이 핵・미사일 외에 민생 분야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게 건설・건축 분야”라면서 “올해에도 이를 차질 없이 진행하려면 철강재의 정상적인 생산이 꼭 필요하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김정은도 금속공업 분야를 ‘산업의 쌀’이라고 강조하면서 차질 없는 생산 목표 달성을 주민하고 있다. 노동신문이 지난 12일자 보도에서 ‘황철이여! 강철로 당을 받들어온 빛나는 전통을 살려 오늘의 난관을 박차고 강용히 전진하라’는 기사를 실은 것도 북한의 대표적인 철강 생산 시설인 황해제철소에 분발을 촉구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은 7일 대남 비방매체를 통해 우리 군을 비방하면서 군사훈련에 동원된 한국형상륙돌격장갑차(KAAV)를 겨냥해 “쓰다버린 파철과 다름없는 병쟁기를 휘두르며 같잖은 허세를 부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K-9자주포와 K-2전차 등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K-방산에 대해 헛주먹질을 해댄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연일 고철 수집을 닦달해야 하는 북한 노동당의 간부와 엘리트들이 50배 이상 벌어진 남북한의 경제격차(GDP 기준)를 절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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