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58)
번아웃으로 사의 표명한 정치인 부지기수... 일반인도 많아
WHO, 이미 2019년 가장 위험한 정신적 증상으로 꼽아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지난 20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사의 표명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스캔들에 연루되거나 자신의 실정(失政) 때문이 아니다.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에 총리직을 수행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던 총리는 기자 회견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직무를 수행할 에너지가 고갈돼 의욕과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그러면서 이같이 말했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이런 총리직이라는 특권적인 역할에는 적임자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알아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연료탱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번아웃’으로 사의 표명한 정치인들 많아

아던 총리의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을 계기로 격무에 시달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삶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영국 BBC는 22일 아던 총리처럼 정신적 육체적 탈진을 의미하는 '번아웃(burn out)'을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각국 지도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겪은 극심한 직무 스트레스를 조명했다.

그러나 번아웃은 비단 정치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노출돼 있다.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현대인의 가장 위험한 정신적 증상으로 ‘번아웃증후군(burn out syndrome)’을 꼽았다.

사전적으로 볼 때 번아웃은 열심히 일하다 보니 너무 지쳐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일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이다.

단어에 의미처럼 어떤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기운이 완전히 소진되고 녹초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소진 증후군’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WHO, 현대 직장인의 가장 위험한 증상으로 ‘번아웃증후군’을 꼽아

BBC는 "정치인들이 번아웃 된 상태를 인정하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한 나라를 이끄는 일의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많은 특권을 지니고, 이를 행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다는 이유 때문이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9년간 뉴질랜드를 이끌었던 헬렌 클라크 전 총리는 BBC 인터뷰에서 과거 재임 시절을 떠올리며 "매일 업무 시간이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그 역시 아던 총리처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근거지를 두고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인 수도 웰링턴을 계속 오갔는데, 이런 장거리 이동이 피로를 가중했다고 설명했다.

아던 총리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번아웃을 호소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공직자들은 적지 않다.

2020년 3월 네덜란드 보건장관이었던 브뤼노 브라윈스는 의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받다가 쓰러진 뒤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그는 코로나19에 맞서 방역 정책을 지휘하면서 격무에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안쇼버 보건장관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그는 2021년 4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과로에 시달렸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당시 "임기 15개월이 마치 15년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번아웃은 성공적이며 일에 대해 완벽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들에게 많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업무 능력이 저하되고 열정이 식는 현상이다.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자신의 직무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아마 앞으로 직장인의 병가 휴직의 가장 큰 사유가 바로 이러한 정신적 질환 때문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번아웃증후군은 성공적이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증상으로는 면역력 약화, 고혈압, 긴장성 두통, 고혈당, 속쓰림, 우울증, 그리고 불면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어스닷컴]
번아웃증후군은 성공적이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증상으로는 면역력 약화, 고혈압, 긴장성 두통, 고혈당, 속쓰림, 우울증, 그리고 불면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어스닷컴]

증상으로는 면역력 약화, 고혈압, 긴장성 두통, 고혈당, 속쓰림, 우울증, 그리고 불면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압력, 그리고 다양한 다른 삶의 스트레스와 함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이러한 장기간의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인해 가정과 직장에서 일반적인 피로와는 다른 지속적인 피로, 정서적 무감각, 그리고 혼란을 특징으로 하는 심각한 번아웃을 초래하게 된다.

성공적이며 완벽주의자들에게 많이 생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의 기분 장애 전문가이자 블랙 도그 연구소(Black Dog Institute) 설립자인 고돈 파커(Gordon Parker) 교수는 번아웃에 대한 전문가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보통 업무 관련 스트레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번아웃의 영향은 훨씬 더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파커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번아웃이 업무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라고만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번아웃의 바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파커 교수는 "우리의 분석에 따르면 번아웃은 특히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 완벽주의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신뢰할 수 있고 양심적이기 때문에 보통 훌륭한 근로자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자신의 능력에 대해 비현실적이고 끊임없는 높은 기준을 설정하기 때문에 번아웃을 느끼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파커 교수는 최근 공동 출간된 “번아웃: 번아웃과 회복 경로를 식별하기 위한 가이드(Burnout: A Guide to Identifying Burnout and Pathways to Recovery)’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번아웃을 극복하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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