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경 화가의 소녀초상(59-51 1978년 3월)
김주경 화가의 소녀초상(59-51 1978년 3월)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흐릿한’, ‘자욱한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유래한 '스푸마토' 기법. 이 기법은 반투명한 유약을 겹겹이 겹쳐올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초로 창안하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후 많은 후세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중 바로크 시대에 활약했던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윤곽선 없이 부드러운 색조의 변화로 묘사한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낸 모나리자와 닮았다고 하여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린다.

페르메이르(베르메르) 특유의 미묘한 빛의 표현, 단순하지만 조화로운 구성,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고 빛의 효과를 사용하여 두 번 이상의 붓터치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김주경의 '소녀초상'을 보면 다빈치나 베르메르의 스푸마토 기법을 충실히 적용하였고, 커다란 눈망울과 볼륨감을 강조한 볼터치와 턱선, 깊고 묵직한 바탕과 대비되는 노란색의 셔츠는 굵고 단순하지만 구김의 덩어리감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또한 나무액자와 스탠드 등의 세부 표현들은 굉장한 묘사력을 뽐내고 있다. 기본 색조와 작업되어져 가는 전체적인 양식미 또한 바로크 시대의 대표작들과도 매우 흡사한 수작 중에 수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 그림은 김주경의 초상화 형식 그림 중 가장 중후하고 기품있게 그려진 말년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고귀한 공주를 그려도 이 보다 더 청순하고 이지적이며 소박하면서도 옹골찬 이미지를 형상화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실제 모델의 주인공 소녀가 어떤 성인으로 자라나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자못 궁금해지고 머릿속에 그려진다. 사실 유사한 인물화의 분위기를 띠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 견주어 볼 때, 김주경의 초상화 속 소녀가 비추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내적인 덕목과 품격이 훨씬 더 상위적인 고상함을 갖추고, 외적인 차림새와 그림의 전체적인 조화로운 아우라도 거의 완벽한 이상형에 가깝다.

추억 속으로 흡인하는 향수미를 자아내는 노오란 호롱 불빛 같은 등불은 은은하고 잔잔하게 스며들 듯 방안의 온기를 휘감으며, 소녀의 진노랑 셔츠와 색감의 조응과 어울림을 환상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한편 소녀의 군청색 교복 색감이 노란 색상을 가벼워 보이지 않게 잡아끄는 진중한 중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소녀의 밝은 심성과 함께 심중한 성격의 이미지를 은연중 돋구워내고 있다. 소녀의 양 손에 쥐어진 초록색 지우개는 소녀의 다부진 향학열과 함께 때묻지 않은 고결성을 상징 처리하고 있다.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 언급된 김주경의 젊은시절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회상과 비판어린 논조가 혼용된 평론을 살펴본다. “해방 이전의 김주경 풍경화 <산속의 아침>(1942), <산골의 첫 가을>(1944) 등 작품의 주된 주제는 봄, 가을 절기에 따라 변하는 우리 나라의 자연 풍경이며 인물주제인 경우 풍속 생활이 기본이다.

주제의 제한성은 그의 세계관의 미숙성과 관련된다. 그는 이 시기 국내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던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 운동과 련계를 맺고 있지 않았다.

일제의 격화되는 침략 책동과 식민지 예속화 정책을 반대하여 투쟁에 나선 로동계급의 진출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의 작품은 선진계급의 리해관계를 반영할 수 없었다. 그의 창작 경향은 주로 1920년대 우리 나라 문단에 진하게 흐르던 빼앗긴 조국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감상적인 작품들의 테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풍경화, 풍속화들에서는 김소월, 리상화 등 비판적 사실주의 작가들의 시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빼앗긴 조국과 고향산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짙게 깔려 있다.”

조선역대미술가편람의 저자 리재현의 상기 비판적 관점은 상당히 협량한 사실주의적 관점에서의 비판에 그치고 있음을 본다. 남한의 파격적 인상주의 유화가를 북한의 초대 평양미술대학 학장(김주경)으로 영입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세계적인 미술 조류의 흡수와 더불어 남한의 명망 있는 조선화가들을 초빙하여 북한의 사실주의 미술가들과의 경쟁적 육성과 다양성의 조합을 통하여 북한 미술의 치열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던 북측 지도부의 원대한 구상이 숨겨져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주경(1902-1981)은 누구인가?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 김주경의 해방 전 작가활동 시기에 대한 비판적 논평 대목을 살펴보자. “조국산천에 대한 그리움은 연분홍, 연록색 등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유연한 색들에 의하여 더욱 야릇한 향수를 자아내게 하였다. 그는 당시 류행하던 인상주의 미술의 영향을 받았던 관계로 색채 구현에서 주관주의적 현상을 나타내였다. 현실에 대한 관조적 태도와 표면적인 조형적 효과에 치중하는 경향성은 1930년대 후반기 이후의 작품들에서 더욱 우심하게 발로되였다.

유화 <>, <부녀자들의 들놀이> 등 일련의 그림들에서는 민족적 및 계급적 모순에 대한 사회적 문제에서 더욱 멀리 벗어져났고 대상의 형태와 세부를 무시하면서 사물을 색채적으로만 고찰하여 광선의 효과를 노린 후기 인상주의 경향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따라서 이 그림들에서는 대상의 립체감, 현실감 보다 자극적인 색들을 마구 화면에 발라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오며 따라서 보여주려는 내용이 조형적 형상을 통해 전달되지 않고 있다.

창작에서 발로된 이러한 현상은 일제의 발악적 책동과 사회현상에 대한 그의 관조적 태도와 관련된다. 그의 이러한 미적 견해는 론문 <미와 예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울에서 8.15 해방을 맞이한 그는 민족미술을 건설하는데 힘과 재능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초기 조선미술건설본부에 들어가 양화부위원장으로, 그후 조선미술가협회의 주요인물로 활동하였다.”

바로 이러한 북한 토백이 화가와 평론가들의 융단폭격 같은 공격적 논조로 인한 위축의 영향으로 북으로 간 월북화가 중 가장 자신의 색깔을 말끔히 탈색과 변색시키고 자신의 기존 정체성을 접은 듯하게 활동한 화가가 김주경이었다.

그 자신이 평양미대 초대 학장으로 사회주의 미술 아카데미즘의 선봉장이 되어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가르쳐야 하는 관계로 자신의 고유성 보다는 당시 북한화단의 보편적 흐름의 전파가 목적 지향성의 선도적 활동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북에서 그린 풍경화와 인물화는 사회주의 미술의 교본이 될법한 아카데미즘의 전형적 그림 일색이다. 그의 중후하고 차분하고 세밀한 풍경화는 인물화에도 그 화법이 일관성 있고 안정되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리석호가 자신의 몸에 배인 화법과의 일시적인 이탈로 보여준 취향과는 다르다. 리석호는 그의 추상주의적 몰골화법에 대해 북한의 선후배 화가들이 범접하기 어려워서 그의 그림 실력에 대한 이의나 전통적 보수성의 고수로 비춰지는 시비를 제기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대해, 그가 세화기법의 대작이자 걸작으로 그린 소나무 작품(1968년작)은 그런 논란을 일거에 잠재워버렸다.

남한에서의 대표적 인상파 화가 김주경이 아닌,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된 북한에서의 사실주의 화가 김주경의 화풍과 대표적인 풍경화에 대한 품평을 인용해본다. “그는 새로운 현실이 요구하는 적극적인 주제를 반영하는 것과 함께 사실주의적 형상 방법, 우리 인민의 민족적 감정과 정서에 맞는 인민적인 미술형식에 기초한 건전한 유화창작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방 후 창작한 작품들 특히 1958년 이후 창작한 많은 풍경화들은 정서깊은 부드러운 색조, 대상의 특징을 추구한 섬세한 세부, 통속적인 구성으로 진실하고 생동하며 친근감을 자아내고 있다.

<묘향산>(1958년작)은 천하제일 명산으로 불리우는 묘향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가을의 계절적 계기에 맞추어 생동하게 형상한 우수한 작품이다. 화면에는 향산천을 중심에 두고 기슭을 서로 물에 잠그고 마주 서 있는 겹쌓인 산발과 산천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 세월의 눈비에 씻기여 다듬어진 바위들과 그것을 감돌아 흐르는 구슬같은 물줄기가 묘사되여 있다.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단풍계절의 묘향산 절경을 평이한 구도 속에 다채로운 색깔로 부드럽게 형상한 것은 이 작품의 예술적 품위를 돋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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